나는 나물 채취에 소질이 없고 별 관심도 없다. 전라도로 시집가서 30년 넘게 다녀도 자발적으로 나물 채취를 시작한 적이 없다. 음력 1월 말쯤 시아버지 제사를 드리러 내려가면 서울과 서산에서 시누님들도 내려온다. 나물 채취에 가장 관심이 많은 셋째 형님은 냉이를 한 소쿠리쯤 캔다. 나는 냉이랑 비슷하게 생긴 거랑 헷갈려서 냉이 채취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창이 고향인 동서도 냉이가 헷갈린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정말 좋다. 내 생각에는 아무 풀이나 뜯어서 무쳐도 맛있는 거 같았다. 결혼하고 첫 여름에 시댁에 갔을 때 시어머니 따라 강 건너 밭 위쪽으로 나물을 캐러 갔다. 우리 시댁은 섬진강 옥정호 끝자락에 있어서 넓은 강을 볼 수 있는 풍광이 좋은 곳이다. 어머니 몸빼를 입고 고무 신발을 신고 논둑 길을 걸어 산길을 올라간다. 어머니가 농사 짓는 밭 위쪽 끝에 올라가니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가 있었다.근처에는 돌나물이 미나리밭 농사지은 듯이 지천이었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한 웅큼씩 뜯어서 금새 비닐 비료포대에 가득 찼다.
"어머니 그만 들어가요. 뱀 나올거 같아요."
으슥한 숲속이 무서웠다. 어머니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고 하시면서 무서우면 저 밖에 나가 있으라 하셨다. 하지만, 갓 시집온 며느리가 시어머니 혼자 두고 도망나올 수는 없었다. 두리번 거리면서 작은 손으로 한 웅큼씩 뜯었다. 일단 뜯고 집에 가서 다듬는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돌나물을 무쳐주셨다. 나는 고추장 보다 된장을 좋아하는 것 같다. 된장 소스 비빔밥도 맛있게 먹은 적 있다. 우리 어머니가 무쳐 주시는 나물은 이름을 몰라도 다 맛있다. 나는 경상도 출신이고 우리 시댁은 전라도다. 나는 시집온 다음에 우리 친정에서 요리사로 인정받을만큼 음식 솜씨가 일취월장했다.
딸아이는 시골 할머니 음식 생각이 난다고 할 때가 있다. 특히 할머니표 고들빼기는 해마다 한번 씩은 말한다. 딸아이는 할머니가 해주신 돌나물 무침을 잘 먹는다. 크게 어렵지 않아서 나도 해마다 한번 쯤은 해먹는다. 유일하게 내가 하는 채취가 '돌나물'이다. 남편과 봄에 등산을 가다보면 햇살 좋은 곳에 귀엽게 생긴 돌나물이 모여 피어있다. 그럴 땐 둘이 쪼그려앉아 한 줌을 뜯어 등산가방에 넣는다.
어제 집앞 숙지산에 갔다. 여기저기 봄 기운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로 내려오는데 어? 돌나물이 피었다. 벌써.
오가는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쭈그려앉아서 한 줌 뜯었다. 담을 것이 없어서 목에 둘렀던 손수건에 싸서 집에 왔다. 딸아이에게 돌나물 무침을 해주겠다고 신이 나서 말했다. 저녁에 해주려고 했는데 딸아이가 먹고 싶다는 마라상궈랑 꿔바로우를 먹었다. 결혼기념일 미리 선물로 집업후드를 받아서 저녁식사는 내가 샀다. 제주 여행가서 커플로 입으시란다. 센스있는 딸아이다. 때와 시간을 잘 맞추는 게 센스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아빠 생신 선물로 집업 후드를 사드렸는데, 아빠가 분실했다. 애타게 찾았지만 결국 나타나지않는다. 딸아이가 다시 사드리냐고 묻더니 겸사겸사해서 결혼기념일 선물로 미리 사준 것 같다.
오늘은 수업준비를 하느라 노트북 앞에 오래 앉아있었다. 남편이 움직이라고 성화해서 숙지산에 갔다. 네 시가 다 되어서 출발해서 바람이 불고 쌀쌀한 기운이 돌아서 빠르게 걸었다. 내가 좋아하는 햇살언덕 옆길로 내려오는데 다육이처럼 예쁜 돌나물이 눈에 띄었다. 저기에?
하루 종일 해가 잘드는 곳이라 돌나물이 통통하고 예쁘다. 줄기식물처럼 땅 위에서 줄기를 타고 예쁘게 달렸다. 제법 큰 걸로 한 줌이 안되는 양을 뜯었다. 어제 뜯은 것도 있으니까 한 끼 무쳐먹으면 될 거 같았다. 집에 와서 딸아이에게 한 줌 되는 돌나물과 사진 찍은 것을 보여줬더니 꽃 아니냐고 묻는다. 진짜 모르는 사람은 다육이 식물인 줄 알만큼 예쁘다. 요 작고 예쁜 걸 뜯었다.
요 작은 것이 뭐 먹을게 있다고 뜯었다. 먹고 살자고 뜯은 건 아닙니다. 딸아이와 추억을 먹고싶어서 뜯었습니다.
전라도식 돌나물무침 레시피,
1. 돌나물을 깨끗이 씻는다.
2. 채반에 담아 물을 뺀다
3. 무를 채썬다. 조금 두껍게 썰어졌지만 씹는 맛이 있었다. 무채를 재보니 320g이다.
4. 된장 한 스푼과 고추장 반 스푼을 기본 간으로 한다.
5. 얼린 마늘 조각 작게 잘라서 한 개 넣고 참치액 반 숟가락 넣는다
6. 조물조물 무친다. 무만 무친 다음에 돌나물을 넣어 휘리릭 버무려야 돌나물이 뭉개지지 않는다
7. 참깨 한 숟가락을 곱게 갈아서 넣고 매실청 반 숟가락과 참기름 반 숟가락을 넣어 무치면 완성이다.
어쩌면 전라도식이 아니라 우리 엄니식인지도 모릅니다.
겨울 무나 제주 무는 무 자체가 시원하고 달다. 무를 채썰어서 된장과 고추장을 적당히 넣어 무치다가 돌나물을 넣고 참깨 참기름 매실액을 넣어 버무리면, 된장찌개 한 숟가락 넣고 보리비빔밥을 해먹어도 아주 맛있다. 재료가 좋고 양념을 순하게 하면 뭐든 안 맛있겠는가. 거기에 추억 한 숟가락이 더해지면 정말 행복해지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