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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양푼이 Feb 01. 2022

그렇다면 나는 갱스터인가?

할리우드 문화에 지배당한 자

몇 년 전부터 미국 관련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서 강의하고 싶단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올해만은 결코 해내리!


그래서 2019년에 사놨던 책을

다시 꺼내 보다!


#영화로 보는 미국 역사


#설 연휴라고 #영화를 보며

시대상황을 살펴보고자 했는데

이게 웬걸...


대공황 그 이후

1930년대 은행 털이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두 편에서


궁금했었던

미국 사회 모습에 대한

영감보다도


영화에서 보이는 것들이

현재 나에게 형성된

관념과 삶의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음에

생각이 많아진다.


1930년대는 문제가 들끓었던 시대이다.

어찌 보면 코로나로 정체되고 있는

현시점과 비슷하다면 비슷할 것이다


다른 점을 하나 꼽자면

은행털이범들이 국민들에게

시대 저항의 아이콘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은행털이범들에겐

시대에 대한 반항과

영웅적인 사명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사회적으로 불리한 신분으로 태어난

홍길동이란 인물을 통해서

대의가 있더라면

도적질도 정당화되는 스토리를

들어오며 자라서 그런지

사명과 목적의식이 결여된

범죄 스토리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에 영화는

다른 포인트로

나에게 여운을

남길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은행털이범들의

비극적인 사랑이었다.


개인이 노력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미국 사회의 주류 담론 속에서

사랑이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버리는

아주 쓸데없는 것이다.


적자생존 경쟁적 현실에서

승리를 거머쥐고자 한다면

사랑이란

배격해야 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낭만적인 것이 허용되지 않는

갱스터 세계에서의

은행털이범들에겐

특히 더 그렇다!


결국 영화 속 갱스터들은

그들을 부드럽게 해주는

로맨스를 추구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영화의 의도가 궁금했다.


왜 영화는 범죄자들을

로맨티스트로 미화시켰을까?


영화의 상업적인 요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영화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갖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일까?


내 기억의 저편에는

맥컬리 컬킨의

나 홀로 집에 라는 영화가

사촌들과 함께

극장에 가서 처음으로 봤던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바로 전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다 같이 보러 간 영화 중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타이타닉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 가장 기억 남는 영화는

나를 처음으로 좋다고 해주던

남학생과 보러 갔던

니콜 키드먼의 물랑루즈였다.


대학교 들어가서는

친구랑 정말 많은 영화를 보러 다녔었는데

그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 것은

브레드 피트의 트로이였다.


생각해보면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

길들여진

내 삶을 설명할 때


미국 문화라는

거대 담론을

배제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퍼블릭 에너미 (2009)


#보니 앤 클라이드 (1967)

이 두 영화는

1930년대 갱스터인

은행털이범들에게

로맨스를 부여했다.


기존의 갱스터 영화에서는

여성은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남성들의 소유물 중에 하나로

묘사되기 일쑤였는데,


이 영화 속 은행털이범들은

사랑 앞에서 부드러웠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들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

사랑으로 부드러워져선 안됐다!


약육강식 세계 속에서

더욱더 강해져야만 했다!


갱스터는 갱스터여야만 하지

로맨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내 인생에 반문해본다!


그렇다면 나는 갱스터인가?


왜 갱스터도 아니면서

갱스터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 삶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로맨스 없는 현재의 생존 방식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이것이 전적으로 미국 때문이다라고

말한다면 논리적 비약이 상당하겠지만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얻어낼 수 있다는

성공신화를 주류 담론으로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이데올로기가 내 생각과 태도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무조건 내 의지와 내 노력으로만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욕망을 강화시키는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몇십 년 동안이나

내 개인적인 욕망이

종속되고 있었던 것만 보아도

현재 나라는 사람은

문화라는 것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부산물일 뿐이었다.


#지식 크리에이터

#미쓰 양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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