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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결혼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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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07. 2021

절약수업

지금보다 더 적게 벌었던 신입사원 시절엔 내 쇼핑 장바구니는 지금보다 가득 차 있었다. 고민 없이 전체 선택 후 결제를 했고, 내 자취방에 일주일 이상 뜯어보지도 않던 택배 상자가 쌓일수록 오히려 마음이 풍요로웠다. 물론 내 통장은 빈곤했고, 매달 신용카드 값을 메꾸느라 월급은 한 번도 온전히 내 것인 적이 없었지만. 결혼을 결심하기 전에 나는 모아둔 돈이 거의 없다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네가 나랑 결혼하자고 했으니 지금 내 잔고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고. 남편은 오히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니 잘 모으면 된다고, 괜찮다며 자신을 믿어보라며 손을 내밀었다. 어찌 됐든 잘 살고 싶었고 믿음직스러운 남편의 손을 잡았다. 왠지 그를 따라 하면서 살면 나도 달라질 거 같았다.


어떻게 만들어 온 내 물욕인데, 내 안의 낭비벽과 사치벽이 나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신혼집을 위한 소비는 우리 둘만의 첫 공간에 하나씩 채워가는 건 기쁨이었다. 밥그릇과 커피 잔은 예쁠수록 맛있는 법, 나는 남편의 맛있는 끼니를 위해 장바구니에 담고 또 담았다. 세상에 돈을 안쓸 이유보다 쓸 이유가 훨씬 많았으니까.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 쇼핑 장바구니에서 차마 전체 선택을 하진 못했다. 장바구니의 부분 선택이라는 것은 나에겐 가슴아픈 노력이었지만 남편은 물욕을 줄이려는 의지박약, 심신 미약으로 여겼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 휴대폰의 장바구니를 볼 때마다 내 능력 밖의 일이 되어가는 게 마음이 아팠다. 내 지출로 다투는 날엔 앞으론 남편 자기가 하나도 안 쓸 거라며, 평균을 맞추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쓰지 말자, 아끼자는 직접적인 말보다 더 불편한 말이었다.


누군가가 떠올랐다. 공과 사 구분 없이 회사 탕비실에서 종이컵과 커피를 훔쳐가시던 장대리님, 내 남편이 마치 나를 잘못 만난 죄로 장대리 아저씨 같은 그런 인생을 선택할까 봐 남들 눈에 그 과장님이나 다를 바 없는 짠내 나는 아저씨가 되는 건 아닐까? 나와 내 동료는 짠하다는 이유로 장대리님의 횡령을 눈감아주며 쉬쉬했었다. 내가 돈을 못쓰는 것보다 남편이 남들에게 쉬쉬하는 대상이 되는 게 더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남편이 안 쓰겠다는 그 말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려와는 달리 남편의 절약은 남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대신 나에겐 맘놓고 피해를 끼치며 실천했다. 내 앞에서만 간이 커지는 남자였다. 남편의 절약 방법은 철저했다. 말과 행동이 틀린 적 없이 절약 습관이 일치하는 건 아마 아버님의 투철한 조기교육이었을 거라 추측이 된다. 본인의 절약 신조는 '아낄 수 있는 것은 아끼고 쓸데는 쓴다'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본 바로는 아버님과 남편은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끼고, 쓸데도 아낀다'였다. 물론 아껴서 나쁜 건 없었다. 결혼 때 양가의 큰 도움 없이 시작했고 그에 비하면 만족스러운 자산을 모았다. 부끄럽지만 남편과 살면서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걸 처음 경험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점점 그의 절약에 믿음이 갔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의 절약 정신을 응원하고 있었다. 내 돈은 내 돈이고, 남편 돈은 우리 돈이니까.


대신 하루 한번 이상은 남편이 진행하는 절약 수업들어야 했다. 어떤 날은 했던 말을  하고  하는 반복교육을 했고, 어떤 날은 이론 없이 몸으로 직접 실습을 진행하는 명강사였다. 나는  절약 수업이  재밌었다.   풍족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심지어 나보다 1 연하남인 남편이 나를 가르쳐 보겠다고 핏대를 세우는  가소롭기도 했다. 절약을 논할  87 생이 마치 47년생 할아버지 같았다. 그의 강의 내용과 효과는 이미 통장에 쌓이는 잔고를 통해 입증이 되었다 보니 듣기 싫은 말이라 해도 수업을 빼먹을 수가 없었다. 특히 요즘같이 월급만 빼고  오르는 서울에서 살아가려면 뭐라도 아껴야 하는  맞으니까 열심히 들었다. 듣기만   문제지만.


남편의 절약 수업의 반복되는 내용들이 있다. 글로 정리하면서 내 남편이 대단함을 다시한번 느끼며, 남편의 절약 Tip을 10개로 추려보았다.


(1) 술마시고 싶을 땐 필ㄹㅇㅌ (명절, 월급날 제외)

우리 남편에겐 캔맥주는 2017년 필 XX트 출시 전과 후로 나뉜다. 남편에게 술은 어차피 술이고 많이 먹으면 취하는 게 술이었기 때문에 천 원대의 맥주는 축복 같은 존재였다. 나는 어쩌다 한번 2~3천 원대 맥주로 사치를 하기도 하지만, 지금도 우리 집 분리수거함에는 필XX트가 가득하다.

(2) 배달 대신 포장하면 훨씬 더 맛있다.

배달료 2천 원 3천 원도 5~6번 아끼면 치킨 1마리 값이라며 포장하고 직접 찾으러 가는 편이다. 거리가 많이 멀면,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나는 궁색이라고 표현했고 남편은 운동이라고 했다.

(3) 치킨은 뼈만 남기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치킨을 먹을 때마다 아주 탐탁지 않아했다. 왜 네가 남긴 치킨 뼈에는 살이 많이 남아있냐 는게 문제였다. 치킨과 밥을 먹지 말고, 치킨 뼈에 남은 살까지 다 먹으면 배가 불러서 밥은 필요 없을거라고 깨끗이 먹을 것을 요구했다.

(4) 아플 땐 약국 말고 병원으로 가라.

병을 키우는 게 더 큰돈이 드니 병원에 가서 확실히 주사를 맞거나, 제대로 약을 처방받는다. 그리고 감기 따위로는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쌍화탕을 먹고 땀을 빼면 다 낫는다고 했다. 나와 달리 약을 먹는걸 거의 본 적이 없다.

(5) 한번 외식하면, 세 번 집밥 먹어라.

신혼 때를 제외하곤, 연속 외식은 하늘이 두쪽 나는 일이었다. 한번 외식을 하면 꼭 집에서 밥을 먹었다. 쉽게 말해 주말엔 한 끼만 외식이다.

(6) 가장 좋은 살균은 햇빛이다.

이 말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로 받아들이기보단 건조기를 사주기 싫은 핑계로 받아들이면 된다.

(7) 식기세척기보다 깨끗한 게 사람 손이다.

위에 (6) 번과 마찬가지이다.

(8) 내비게이션도 믿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은 더 빠르고, 정확한 길로 안내해 주는데 대신 통행료가 비싼 구간도 종종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네 XX 지도, ㅌ맵을 주로 켜보긴 하지만 정체구간만 확인하는 용도로 쓴다.

(9) 커피는 Grande로 한잔, 나눠 먹어야 맛있다.

지금까지도 내가 질색 팔색 하는 남편의 습관이다. 커피 전문점에 가면 꼭 내 뒤에서 소심하게 읊조린다. ‘하나 큰거 사서 나눠먹을래?' 그렇게 먹어야 맛있다는 어이 없는 말을 하는데, 나는 10번 중에 9번은 거절한다.

(10) 술에 취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남편은 술 약속이 있어도 지하철이나 택시가 끊기기 전엔 돌아왔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대중교통이 끊기면 택시를 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는 것 같다. 알콜의 힘보다 아낌의 본능이 더 쎘다.

(별첨) 고기를 먹을 땐, 고기만 먹어라

남편 따라 시댁에 처음으로 인사 간 날, 그 당시엔 예비 아버님이셨는데 소고기를 사주셨다. 나는 고기만 먹으면 느끼해서 밥이랑 같이 먹는데 고기를 먹을 땐 고기만 먹는 거라며 음료도 밥도 계란찜도 어느 것 허용되지 않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아끼더라도 고기 먹을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평소 많이 아끼다가 고기 먹을 때만큼은 허세를 부리고 싶은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밥과 함께 먹는데 고기를 먹는데 말은 안해도 적게 먹으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몸을 혹사 시키기도 하고, 고생을 사서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절약에 대한 지능적인 전략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절약 수업에 힘을 보태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우리 엄마다. 박서방이 돈을 아끼는 모습을 보면 지독스럽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고, 알뜰살뜰한 모습에 기특해하기도 했다. 남편은 장모님과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나와 살아보니 내가 아낄 줄 몰라서 어머님이 참 맘고생 하셨겠다는 거다. 그리고 안부전화가 어느새 내 험담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머니, 저 분리수거하고 왔어요
택배 상자가 너무 많아서
현관문이 안 열리더라고요.

어머니, 배가 너무 불러서
운동하고 와야겠어요.
먹지도 않을 음식을 하도 많이 시켜서
제가 다 먹었어요.


엄마와 남편은 한편이 되어서 나를 욕 했지만 나는 둘 사이가 내덕분에 가까워지면 참 좋은일이라 생각했다. 서울에서 살면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하는데, 혹시 자기 딸이 정신 못 차리고 박서방의 절약 계획에 누를 끼칠까 봐 걱정이 많으셨단다. 하지만 나도 달라지고 있었다. 남편의 절약수업은 주입식 반복 교육이라 나도 짠내로 물들어 가고 있다. 남편이 염전밭이라면, 나는 아직 약간의 소금 한스푼 정도의 하수지만. 물론 남편처럼 만큼은 아니지만 내 방식대로 아끼려고 했다.


엄마는 결혼하자마자 애당초 돈 관리는 남편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도 동의했다. 결혼한 지 두 달 후, 나는 내 통장에 돈이 남아있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고 천원까지 박박 다 긁어 써대는 비상한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싶어 그때부턴 월급 세후 기준으로 60%는 남편에게 보냈다. 그리고 남은 40% 안에서 맘껏 소비했다. 세상 도움 안 되는 비싼 소품도, 그릇도,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내 기분을 풀어줄 만한 달달한 커피까지 그 안에서 썼다. 나는 지낼만했는데 가끔 나를 측은하게 쳐다볼땐 이때다 싶어 남편의 지갑을 열었다. 언제 지출때문에 또 잔소리를 할지 모르고 사고싶은게 생길지도 모르니 조금씩 조금씩 나만 아는 쌈짓돈을 모아두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월급의 70%를 보내는데, 하다보니 어느새 남편의 강의에 열혈수강생이자 모범생이 되어 있었다.


작년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집을 사야겠다는 아주 큰 결심을 했다. 나는 남들도 집을 사는데 구색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였고, 평생 전세 주의자였던 남편도 집값에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결정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긴급히 자산 점검을 해 본 2020년 4월의 어느날 밤,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깜짝 놀랐다. 나는 생각보다 우리 자산이 늘었다는 것에 놀랐고, 남편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 때문에 놀랐다. 은행에 빌려야 할 돈이 우리가 모은 돈보다 많았지만 남들도 다 그렇다 하니 위로가 되었고,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보단 남들이 사는 만큼 우리도 따라가고 있음에 한숨 돌리며 숨고르기를 할 수 있었다. 아낄 때만큼은 소태 같은 이 유별난 남자와 같이 살지 않았다면 남들만큼은 커녕 평생 월급은 손에 쥐어 볼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이 집엔 은행의 지분이 더  많지만 이 남자 손을 잡고 간다면, 언젠가는 다 우리 자산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나는 덜 쓰고, 남편은 저렇게 살며 앞으로 10년, 20년 지내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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