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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결혼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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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an 19. 2021

손가락 부부

부부이기 전에 우리는 뚜렷한 나와 선명한 너였다.
그땐 나와 네가 만나 더 뚜렷하고 선명한 '우리'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 후, 우리가 되기보단 오히려 너라는 사람과 나라는 사람만 명확해졌다.



 가족,  가족
 ,  
 ,  (   하면  될까?)

연애 때는 그가 내민 손을 덥석 잘도 잡았다. 비단 손뿐만 아니라 뭐라도 다 내줄 수 있었다. 그땐. 결혼 후엔 달라졌다. 이젠 손가락 하나 정도 겨우 내어 준다. 이 사람의 손을 덥석 잡아버리기엔 당장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쉽게 해 줄 수 있는 동의조차 머리를 굴리고, 굳이 세 번씩 생각해보며 태클을 걸고 근거와 명분을 찾아가며 반대한 적도 있었다. 이건 분명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맞다.

나 자신에게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내가 신중에 신중,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같이 살고 싶어 박박 우겨 결혼까지 한 이 남자랑 왜 머리를 굴려가며 살아야 할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결혼의 발단부터 조목조목 되짚어보기로 했다.

직장생활 4년 차에 나는 새 직장으로 이직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은 그땐 온전히 내편이었다. 성실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착하고, 인내심이 강한 남자. 이 남자의 모습은 내 인생에 귀감이 되어줄 것 같았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완벽한 동반자라고 생각했다.  맞다. 사실 그 모습이 변한 건 아니다. 지금도 나에게는 살짝 인색하지만, 타인에게는 선하고, 직장에선 꽤 인내심이 있고 상냥한 남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선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이 남자와 결혼이라는 선택을 또 했을지도 모른다. 맙소사!

뭐가 문제였을까? 그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불편한 대화가 오고 간 것의 시작점은 상견례 직후였다는 사실을.

상견례는 점심에 진행되었다. 결혼식을 시댁이 있는 지역에서 진행하는 대신, 상견례를 친정 가까이에서 진행하기로 미리 합의가 끝난 상황이었다. 형식적인 양가의 만남이 끝나자마자 나는 결혼 청첩장을 돌리려고 미리 약속한 선배를 만나기 위해 그와 함께 이동 중이었다. 평소와 달리 시무룩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는 그에게 대체 왜 한숨을 쉬냐고 물어보았다. 세 번은 물어본 것 같은데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궁금한 건 못 참는 나는 기를 쓰고 대답할 때까지 물어보았다. "아니라면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불편하게 하냐고" 결국 폭발한 나는,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우리 가족이 멀리서 왔는데, 너는 네 선배 만나는 게 중요해?"
"그럼 중요하지. 약속을 했잖아."
그 후, 큰소리가 오갔고 선배와의 약속시간이 다 되어서야 진정하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다시 비슷한 사건으로 언성이 높아진 건 신혼여행 직후였다. 그날이 우리의 시작점이 될 줄이야. 너희 집이 중요하니 우리 집이 중요하니의 문제로 하루가 멀다 하고 끝나지 않은 꽤 수위 높은 싸움을 이어갔다. 딱히 결론도 없고 남는 것도 없는.. 피만 흘리지 않았을 뿐 우리 부부 역사의 희대의 혈투로 기억된다.

늘 싸움만 반복한 것은 아니었다. 직장생활의 고단함도 서로가 있어 버틸 수 있었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다시 힘을 내보자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맛있는 걸 먹으며 발전적인 이야기도 하며 우린 정말 코드가 잘 맞다며 그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볼 때마다 나 역시 내가 선택한 이 결혼과 내 인생을 열심히 잘 살고 있노라며 합리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답 없는 불편한 주제의 대화가 시작되면 수포로 돌아갔다.

우리 둘의 행복만 생각하면 될 줄 알았다. 실상은 우리 둘만 생각하기엔 불편한 요소들이 많았다. 의도치 않게, 그 불편한 요소들과 연관 지어 자꾸만 삐딱하게 생각하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내가 생각한 결혼은 부부가 두 손 포개어 맞잡고, 같은 방향으로 힘차게 걸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비록 현실에 부딪힐 때가 있더라도 부부라는 어른이기 때문에 참게 될 줄 알았다. 정작 우리는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은 채,  손가락 하나씩 잡는 방법부터 맞춰나가야 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쿨하게 받아들이기엔 우린 각자가 너무나 뚜렷하고 선명한 개인이었다.

부부가 된 지 오래되었다고 서로의 두 손을 맞잡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보단 남편이 훨씬 중심을 잘 잡아주기 때문에 길을 잃을 때마다 방향도 곧 잘 제시한다. 이상한 오기이지만, 그가 가자는 대로 그의 손을 선뜻 잡으면 내가 흐릿해질 것 같아 망설일 때도 있다. 우리는 지금도 그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과정들이 익숙해져 전에 비해 덜 불편해지고 있다.

내 것은 어느 하나 다 놓치기 싫어 손에 한 움큼 움켜쥔 적도 있었고, 어느 순간 다 내려놓고 싶어 손에 힘을 푼 적도 있었다. 정작 힘이 들어가야 할 때와 힘을 빼야 할 때를 몰라서 이렇게 빨리 올 수 있는 길도 한참 돌고 돌아올 때가 많았다.

결혼 8년 차, 지금도 승자 없는 싸움은 지속되고 있다. 다만 이전보단 빨리 돌아오는 법을 익혔고 제법 부부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슬아슬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그리고 최소한 각자의 방식대로 결혼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생각보다 불편함도 많지만 의외로 괜찮은 부분도 있다.

내 남편은 지금도 불만투성이인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나는 그 손을 살짝 잡는다. 두 손이 포개질 정도는 아니더라도 손가락 하나 정도는 내어주며 따라가다 보면 어쨌든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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