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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빈 Dec 23. 2022

하루 아침에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 날

나는 현자를 찾아왔다.

6개월 동안 남자친구와 함께 일할 걱정 없이 먹고 놀며 전세계를 여행하고 모두의 부러움을 한 눈에 받을 줄 알았는데, 나는 지금 직장도, 남자친구도 잃은 채로 고국에 돌아와있다.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던 시점, 내 마음 속에서 강한 귀향본능이 눈을 떴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여러 나라를 전전한 지라 향수병은 느끼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느껴도 부정하는 것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약 한 달간 잠 못드는 밤을 보낸 뒤 머릿속에서는 아주 강한 지령 같은 것이 들려왔다. "집으로 가야한다."


매일 매일 찬란한 햇볕과 야자수,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은 해변을 볼 수 있는 스페인의 섬에서 그날 역시 잠을 자지 못해 새벽 3시부터 거실에 나와 TV를 켰다. 그리고 5시가 되어서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걷는 듯 뛰는 듯, 애써 밝은 노래를 듣다가, 그리고 슬픈 노래를 듣다가도 눈물도 나지 않는 내 모습에 더 불안해졌다. 


나는 아파트에 돌아와 가지 않는 시간을 보내려 누웠다가, 앉았다가, 핸드폰을 보았다가, TV를 보았다가 집 안을 맴돌았다가 테라스에 앉았다. 9시 반 쯤 남자친구가 일어났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 한국에 가려고 결심했어. 여기에서는 나을 수가 없을 것 같아. 나 혼자서는 할 수가 없어".


그 뒤로 여러 마디 말이 오갔지만 남자친구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니가 한국에 간다면 우리의 관계는 이걸로 끝이야."


이 말은 나를 울게하지 못했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면서는 눈물이 많이 났다. 나는 위기의 상황에 발휘되는 또렷한 정신을 이용하여 짐을 싸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하룻밤을 더 자고, 남자친구와 무미건조한 인사를 나눈 뒤 떠났다. 


그리고 나는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첩첩 산중의 현자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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