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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빈 Dec 23. 2022

맛있는 것을 먹어야 힘이 난다.

현자의 가르침 1

내가 찾아온 그 날부터 현자는 나에게 먹일 음식에 엄청난 정성을 기울였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국인의 원기 충전을 책임지는 곰국을 미리 끓여놓은 것은 물론, 닭발, 돼지 껍데기, 막창과 같이 나 같은 MZ 세대를 위한 술안주까지 없는 게 없이 준비해두었다. 


스페인 섬에서 모든 음식이 목에 너무 까칠하게 느껴져서 목에 음식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입맛이 없었다. 먹는 행복을 크게 느꼈던 나에게 너무 낯선 나의 이런 모습이 나를 더 기죽게 했었는데, 현자의 음식은 목넘김이 아주 부드러웠다.


사람은 맛있는 것을 먹어야 힘이 난다. 


누가 해주는 밥이 아닌 내가 지어 먹는 밥을 먹은지 근 10년이 다 되어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이 잘 안넘어가는 체질이어서 스트레스 상황일 수록 끼니를 대충 때웠다. 매 끼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나의 자존감과도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나에게 먹인다는 것은 나를 돌보는 행위이다. 내 바깥의 많은 것들이 나를 무너뜨려도 나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더군다나 나의 입맛을 잘 아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준비한 음식이라면 그 사랑까지도 같이 먹게 되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누구나 입맛에 딱 맞는 맛있는 것을 먹게 되면 눈이 반짝 빛나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순간의 행복을 언제든 나에게 허락하는 것은 일상 생활 속에서 가장 쉽게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식탁에 소주가 올라온다. 대학 시절 취하려고만 먹었던 소주여서 직장인이 되고부턴 냄새도 맡기 싫었다. 그런데 현자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홀짝 홀짝 기울이는 소주는 달기만 하다. 마치 이 순간에는 내가 모든 일을 옳게 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산중의 겨울 밤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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