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에 간다
겨울에 아이에게 첫 해외여행을 시켜주기로 했다. 서랍장을 뒤져보니 여권이 보이지 않았다. 만기돼 버린 모양이다. 여권을 만들기 위해 사진부터 찍어야 했다. 찾아 보니 여권 사진이 저렴한 곳은 15000원, 일반적으로는 20000원을 받는다고 했다. 헉, 그럼 아이와 내 것까지 합해서 4만 원이잖아. 너무 비싼 걸. 또 찾아 보니 요즘엔 셀프로 많이들 찍는다고 한다. 셀프로 찍으면 인화비, 배송료까지 합해도 7000원가량이란다. 오케이, 그걸로 도전한다.
증명사진 앱 같은 게 있어서 설치하고 실행시켰다. 핸드폰 중앙에 동그라미가 보여 나는 그 안에 얼굴을 넣었다. “얼굴선을 맞춰주세요,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기계음이 들리고 잠시 후 완성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울 뻔했다. 비대칭 얼굴형에 깊은 팔자주름이 너무도 선명하다. 내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까지 못 생기고 늙진 않지 않았어?” 야구를 시청하고 있던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더니, “아니, 딱 니 얼굴 그대로야.”라고 대답한다. “아니라고, 이거 앱이 좀 이상해, 이럴 순 없어.” 나는 현실을 몹시 부정하고, 남편에게 벽에 서 보라고 했다. “하나 둘 셋 찍습니다.”
“그래, 뭐 좀 이상하네.” 남편은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더니 갑자기 태세가 변했다. “뭔 소리야, 딱 오빠구만.” 나는 고소한 마음에 신나게 놀려준다.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며 두어 번 더 찍어봤다.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건 내가 아냐.
나는 사진관으로 가기로 했다. 돈 좀 아끼려고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을 붙인 여권을 10년 동안 갖고 다닐 순 없잖아. 아이와 같이 동네 사진관에 갔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얼마만인지 몰랐다. 화사하게 흰 공간 공간에 앉아 커다란 조명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그 사이 남편은 셀프로 찍은 여권 사진을 제출했다가 두 번의 빠꾸를 받았다. 처음엔 배경이 완전히 희지 않다는 것, 그 다음엔 목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남편은 완전히 흰 배경을 위해 다이소에 가서 커다란 종이를 사 왔고, 스탠드 머리를 이리저리 조절해 가며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었다. 한 사나흘은 방에 들어갈 때마다 사진과 씨름하고 있었다.
“나 영화 전공한 사람이야. 이건 자존심이 달린 문제라고.” 그는 절대 사진관에 갈 수 없다고 했다. 그가 3x4cm 사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동안 나는 그를 놀리고 낄낄거렸다. 당신 시간 대비 노력으로 따지면 이십만 원은 들었을 거고, 다음 번 반려 이유는 ‘못생겨서’일 거라고. 남편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턱을 당기고 사진을 찍다가 나를 불러 찍어 보라고 했다. 혼자서는 역부족인 듯했다.
“오케이, 이걸로.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 그가 내가 찍어준 사진을 컴퓨터에 띄워놓고 잡티를 제거하면서 말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 남편 언제 이렇게 늙었지.’ 스물셋부터 보던 얼굴이라 딱히 세월의 흐름을 느끼진 못했는데, 그렇게 얼굴만 딱 잘라서 인공적인 처리를 하지 않은 사진을 보니까 정말 나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름, 기미, 탄력 없음, 이마도 꽤 드러나 있었다.
사진관에 가서 내 사진을 찾았다. 봉투에서 꺼낸 사진을 마주한 나는 몹시 당황했다. 이유는 너무나 매끈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얼굴형은 오각형이다. 볼이 좀 통통하고 턱이 발달한 편이다. 그리고 오른쪽이 더 튀어나온 비대칭이다. 그런데 사진에서는 완벽한 계란형이 되어 있었다. 팔자주름도 전혀 없었다. 눈은 1.5배 커졌다. 나라고도, 내가 아니라고도 하기 애매했다. 하지만 예쁘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나는 집에 가져와서 남편에게 자랑했다. “어때, 잘 나왔지?” 그러자 남편은 말했다. "헐, 출국 못할 것 같은데. 완전 다른 사람이잖아.” 그는 진지했다. 사진관에서 여권 한두 번 찍는 것도 아닐 테고 어련히 알아서 잘해줄까 싶은 생각이 드는 한편, 정말 그러면 어쩌지? 싶기도 했다. 확신이 없을 때는 언제나 짜증이 난다. 제 발이 저리는 것이다. “다들 이 정도는 한다고!!” 나는 빽, 외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언니들과 엄마랑 함께 하는 단톡방에 올리니, 이 정도 포샵은 괜찮다고 다들 한다고 안심시켜줬다. 구청에서도 별 말 없이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이후 나는 사진을 한번씩 들여다 보았다. 확실히 그 사진을 보면 기분 전환이 되었다. 매일 보던 거울 속의 추레한 내 얼굴이 아니라 도자기처럼 매끈한 얼굴을 보며, 정말로 이 얼굴이 내 얼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만 어디 시술받고 보정받으면 이렇게 되는 거 아냐? 라는 생각도 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헤어 메이크업받고 바디프로필도 찍는가 보았다.
그러나 점차 그 사진을 보면서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사진 속 그 인물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넌 대체 누구야? 조금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생각해 봤다. 만약 내가 자고 일어나서 거울을 봤는데 그 얼굴이 되어 있다면 나는 좋을까?
결론은 아니, 였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나는 슬프고 두려울 것 같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내 얼굴에는 내가 나와 나눈 대화, 지나온 시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몇십 년 동안 거울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오른쪽이 왼쪽처럼 좀 갸름하면 좋을 텐데, 눈이 좀 더 크고 눈동자가 선명하면 좋을 텐데, 팔자 주름이 너무 선명한 편이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일지언정 그것은 거울을 보며 ‘내가 나’임을 인지하는 의식이고 루틴이었다.
예를 들면, 화장을 하거나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나의 단점들을 생각하고 그걸 커버하고자 한다. 어떤 조명 아래서는 팔자주름이 좀 안 보인다고도 생각하고, 눈화장은 못해도 뷰러라도 쓰자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대칭인 사람은 없을 걸, 지구도 조금은 기울어져 있는 걸,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이 나이 돼서 쌍커풀 수술을 하는 건 웃긴 일일까? 라면서 물어보기도 한다. 결국, 나의 단점들은 나의 자존감을 깎은 요소임과 동시에 나를 인지하는 수단, 나와 나누는 무수한 이야기의 소재, 그리고 시간의 흔적이다. 어느 순간 그것들이 단번에 사라진다면, 조잘조잘 잘 떠들던 친구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절교하자고 말하는 기분이랑 비슷하지 않으려나.
남편은 세 번만에 합격, 판정을 받았다. 그의 여권에는 40대 중반의 모습 그대로 구불구불하고 주름지고 잡티가 많은 얼굴, 매끈하진 않지만 스스로에게 한 점 부끄러움이나 의아함이 없는 사진이 박혔다. 이제 보니 그런 사진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그런 얘기를 남편에게 했다가는 또 ‘그러니까 내가 찍어준다고 했잖아’라며 의기양양하게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속내를 숨기고 이렇게 말했다. “뭐, 심사대에서 의심받진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