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어둑한 월세방, 2층 침대에 앉아서 나는 빠져들듯이 책을 읽었다. 언니와 좁은 방을 같이 쓰며 매일 청소 문제로 크고 작은 다툼을 하던 때였다.
아르바이트로 어찌어찌 학비를 내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남들처럼 대학 생활의 낭만이나 즐길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언니가 믿는 하나님이 있다면 나에게 이렇게까지 가혹할 수 있을까 항상 의심스러웠다.
신도 믿지 않는 나에게 (연금술사의 주인공인) 양치기 산티아고가 찾아 떠나는 '자아의 신화'는 어찌 보면 좀 더 의지할 만한 이야기였다.
가혹한 현실이라도 내 삶도 무언가는 목적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비록 신은 힌트조차 주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각자의 자아의 신화가 있으니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해서 일단은 살아보라는 희망고문 같은 그 이야기를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자아의 신화'를 찾겠단 의지가 있으면 온 우주가 나를 돕겠다니 어둑한 월세방에서 길을 헤매는 젊은이에게 이 보다 좋은 미끼는 없었다.
"그것은 자네가 항상 이루기를 소망해 오던 바로 그것일세,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 모두를 꿈꾸고 소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신화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 주지."
내가 찾는 자아의 신화는 어느 한순간도 명료했던 적이 없었다.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서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했지만 실패하고 남들보다 뒤늦게 직장생활을 하며 적은 월급이지만 집안 살림에 보태며 근근이 살았지만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월세방에서 탈출하고픈 마음에 도망치듯 결혼을 하고 운 좋게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지만 거기에도 나만의 '자아의 신화'는 없는 것 같았다.
남편에 대한 의리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평온한 일상을 보냈지만 나만의 온전한 자유는 없었다.
지칠 때 하늘 한번 쳐다보며 나에게도 어딘가에 있을 '자아의 신화'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 길을 온 우주가 응원해 준다고 자위하며 하루를 또 살아낼 뿐이었다.
"아버지는 축복을 빌어주었다. 소년은 아버지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세상을 떠돌고 싶어 한다는 걸.
물과 음식, 그리고 밤마다 몸을 누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때문에 가슴속에 묻어 버려야 했던. 그러나 수십 년을 한결같이 남아 있는 그 마음을."
20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읽은 '연금술사'는 지금의 '자아의 신화'는 무엇인지 묻는다.
20대 청년에겐 보물을 찾아 떠나는 산티아고가 가슴 뛰게 만들었다면,
40대의 지금은 낙타몰이꾼이 말하는 현재의 만족과 기쁨이 안심스럽고, 크리스털가게 주인의 풍족한 생활이 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만약 당신이 영원히 현재에 머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린다.
온 우주가 달려야지만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3킬로... 5킬로... 10킬로... 를 달린다.
산티아고가 미래를 예측하고 연금술로 바람을 일으키고 보물을 찾아낸 것처럼 대단한 무언가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이제는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달려서 '자아의 신화'를 찾으라며 온 우주가 돕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지금의 자아의 신화는 들판을, 강변을 달리는 것일까?
그렇게 달리다 보면, 인생의 끝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을까?
몇 킬로든 달릴 수 있는 다리와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오감과 풍경을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 ’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것일까?
각자의 자아의 신화는 무엇이고 온 우주는 지금 무엇을 도와주고 있을까?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나는 달리지만 집을 떠나지는 못한다.
순례길을 찾아 나섰다 정착해서 더 이상 순례길을 떠나지 못하는 클리스털 가게 주인처럼 떠나지는 못한다. 예술도 이상도 땅에 두 다리를 붙여야만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바람을 느끼고 풍경에 빠져 정신없이 달리느라 손에 들린 숟가락의 기름을 잃지 않도록 자유와 정착의 그 어디쯤에 있으려고 한다.
내가 찾는 보물이 지금 여기 있는지, 또는 아직 그 중간치에도 도달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 보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아. 사람들이 보물을 더 이상 찾으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만 얘기하지. 그리고는 인생이 각자의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아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이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은 험난한 그 무엇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낮은 소리로 말하지. 아예 침묵하진 않지만 우리는 우리의 얘기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기를 원해. 그건 우리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고통 스러 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지"
마크툽 -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씌어있다는 말이다. 즉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