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입니다.
H마트에 갔더니 '냉동송편'이 있네요?
마지막으로 송편을 먹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H마트가 잊었던 추억까지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그것도 무려 55% 대폭 할인한 가격에 "저 좀 데려가세요~" 하고 있는데 안 살 이유가 있나요?
알록달록한 송편이 그 색도 예쁘고,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깨소가 들어있고, 거기에 말랑말랑 쫀득쫀득 식감도 훌륭해서 앉은자리에서 몇 개를 집어 먹었는지 몰라요. 떡을 좋아하는 남편도 맛있다며 잘 먹었고요.
하지만 사실 추석 따위 제겐 아무 의미 없는 날이 된 지 오래입니다.
캐나다 이민 17년 차, 어디 추석뿐이겠어요?
한국 최대 명절이라는 설날이나 추석은 물론, 한국에서 살며 20년 이상을 기념하거나 기리던 모든 공휴일도 그저 딴 나라 얘기가 된 지 오래네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편과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만나
캐나다라는,
너의 나라도, 나의 나라도 아닌 곳에서 살다 보니 너의 명절도, 나의 명절도, 이곳의 명절도 모두 어느새 크게 의미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설날에 먹던 떡국이나 추석에 먹던 송편 같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음식들은 남편한테 아무 의미가 없고, 저 역시 남편의 추억이 담긴 음식에 별 감흥이 없으니, 굳이 찾아먹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이 나라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칠면조 요리를 하기엔... 어휴, 그 큰걸 둘이 언제 다 먹나요.
10월 6일 추석이 지나고 나면, 10월 13일 캐나다에는 'Thanksgiving Day'가 옵니다.
두 날 모두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겠지만, 다만 추석에는 일하고 Thanksgiving Day에는 하루 쉴 수 있다 보니, 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Thanksgiving Day를 더 기다리게 되겠지요. 그뿐입니다.
그렇게 명절이 사라진 자리를 일상이 채웠습니다.
문득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잊히고 변하고 또 그 새로운 삶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거겠지요.
모두 즐거운 추석 맞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