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로저스의 역사적인 첫 내한
1979년 “디스코 폭파의 밤” 같은 아찔한 사건도 일어났지만, 성 소수집단의 전유물에서 범 대중으로 부피감을 키울 만큼 디스코의 파급력과 위력은 커졌다. 도나 섬머 같은 솔로 뮤지션부터 쿨 앤 더 갱과 케이시 앤 더 선샤인 등 그룹 단위의 팀들이 신을 쥐락펴락했다. 심지어 롤링 스톤즈나 키스 같은 백인 록 밴드도 각기 ‘Miss You’나 ‘I Was Made for Lovin’ You’ 같은 디스코 풍 록 음악으로 시류에 영합했다.
앨범의 시대이자 대중음악 황금기였던 1970-80년대에 주로 싱글 단위의 흥밋거리 위주로 소비되었던 디스코가 “대중음악=예술품”으로 간주하던 마니아들에게 인정받을 리 없었고, 숱한 명반을 배출하던 70년대 클래식 록과 달리 비지스의 1977년 작 < Saturdy Night Fever >나 글로리나 게이너의 < Never Can Say Goodbye >(1975)같은 몇몇 수작만이 간신히 체면치레했다.
바로 여기서 쉬크와 나일 로저스의 가치가 발생한다. 싱글 중심의 디스코에 명반 딱지를 붙인 것이다. 시작부터 완성도가 준수했던 1977년 데뷔작 < Chic >의 A면과 B면 오프닝엔 같은 디스코 클래식 ‘Dance, Dance, Dance (Yowsah, Yowsah, Yowsah)와 ‘Everybody Dance’ 가 포진했고 이는 “우린 음반으로 가겠어!”라는 포고와도 같았다.
연주와 프로듀싱에서 빛을 발한 나일 로저스(기타) – 버나드 에드워즈(베이스) – 토니 톰슨(드럼) 막강 트리오의 압도적 능력치는 1978년 소포모어 앨범 < C’est Chic >과 이듬해 나온 < Risque >에서 ‘Chic Cheer’와 ‘Le Freak’, ‘I Want Your Love’, ‘Good Times’와 ‘My Feet Keep Dancing’, ‘My Forbidden Lover’같은 디스코 금자탑을 건설했다. 디스코란 이유로 경시하기 힘들 음악성이었다.
쉭과 그 연장선과도 같은 ‘We Are Family’와 ‘He’s the Greatest Dancer’의 시스터 슬레지 이외에도 나일 로저스의 제작 활동은 활발했고 장르도 무한 번식했다. 마돈나의 메가 히트작 ‘Like a Virgin’과 ‘Material Girl’부터 데이비드 보위에 상업적 성과를 안겨준 ‘Let’s Dance’와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MO Money Mo Problems’가 샘플링한 다이애나 로스의 ‘I’m Coming Out’까지 쾌속 질주했다. 이 밖에도 제프 벡과 비피프티투스 로 빼곡히 채운 협업 목록은 르세라핌과 제이홉 같은 2020년대 케이팝까지 손을 뻗쳤다.
2022년 핑크팝 페스티벌과의 차이점은 비욘세의 ‘Cuff It’이었다. 나일은 “최근 몇 년간 그래미가 호의적이었다. 다수의 상과 후보 지명을 받았다. 지금부터 ‘Get Lucky’와 ‘Lose Yourself to Dance’의 다프트 펑크와 비욘세 등 그래미 세그먼트를 진행하겠다”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고 보면 2022 핑크팝 페스티벌과 2024 블루 노트 도쿄 페스티벌, 얼마 전 내한 콘서트에서 모두 자신의 업적을 늘어놓았다. 맞는 말이기에 자만 아닌 자부심을 읽었다.
중후반부쯤 화면에 흐른 나일과 뮤지션들의 사진도 화려한 경력과 일맥상통했다. 마돈나와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에 이어 듀란듀란의 프론트퍼슨 사이먼 르본 등장에 듀란듀란 팬으로 보이는 이들이 꺄악 소리 질렀다. 이들은 듀란듀란 ‘Notorious’에 < Notorious >(1986) LP 흔들기로 화답했다.
역사적인 첫 내한 공연에서 나일 로저스는 상기한 따옴표 속 명곡을 모두 연주했다. 어찌 이 공연이 지루할 수 있겠는가? 당최 의자에 앉아 있기 힘든 리듬감이었고 감사하게도 관객과 뮤지션의 합의로 공연 초반부터 모두 일어나 몸을 흔들어 재꼈다. 2022 핑크팝에서도 함께 했던 베이스 주자 제리 반스와 드러머 랄프 롤, 보코더로 다프트 펑크를 모사한 재치 있는 키보디스트 러셀 그럼 같은 수준급 연주자들과 킴벌리 데이비스, 오드리 마텔스의 보컬이 두루 빛났다.
일명 “쨉쨉이”라 부르는 처킹기타가 좀 무뎌졌어도, 쉭 오가니제이션의 메인 보컬인 킴벌리의 보컬 애드리브가 때론 과하게 느껴지더라도, 백드롭 등 무대 연출이 살짝 촌스럽더라도 공연의 전체적인 퀄리티는 절대 퇴색지 않았다. 기타 플레이어와 밴드 리더, 프로듀서의 꼭대기에 오른 이 대중음악사 거인을 영접하기 위해 한데 모인 뮤지션과 음악 평론가, 레코드 펍 사장님들은 하나같이 “역시 최고였다”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