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슈퍼스타 빌리 오션의 런던 로얄 알버트 홀 콘서트
1871년 완공된 런던 사우스 켄싱턴의 유서 깊은 공연장 로열 앨버트 홀은 고풍스러운 자태로 시선을 압도했다. 전설적인 트리오 크림과 영국 국민가수 로비 윌리엄스 등 대중음악계 거목들이 이 곳을 거쳤다. 악틱 멍키스와 더스티 스프링필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등은 아예 “Live at the Royal Albert Hall”이란 이름으로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한번쯤 꼭 방문하고 팠던 이 명소를 2025년 6월 25일 “대중음악계 작은 거인”의 콘서트로 만나게 되었다.
“작은 거인”. 체구와 달리 특정 분야에서 걸출한 활약상을 남긴 이들에게 붙이는 칭호다. 대중음악계에도 신장 이상의 아우라를 분출하는 이들이 몇 있다. 수많은 여성을 홀렸던 섹스심벌 프린스와 1980년대를 풍미했던 듀오 홀 앤 오츠의 존 오츠, 교복차림으로 무대를 휘저었던 에이씨디씨의 기타리스트 앵거스 영과 레인보우와 블랙 사바스를거쳤던 불세출의 보컬리스트 로니 제임스 디오까지.
지금부터 소개할 뮤지션이 이 대열에끼리라곤 사실 공연을 관람하면서야 알았다. 한 번도 작으리라곤 예상 못 했던 트리니다드 토바고계 영국 가수 빌리 오션은 일흔다섯 고령이 무색할만큼 기력 넘치는 모습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1980년대 히트메이커답게 쉬지 않고 관객들의 열창을 끌어냈다. 실질적 데뷔작인 1976년도 셀프타이틀 < Billy Ocean >에서 싱글로 선발되어 영국 싱글차트 2위까지 기록한 ‘Love Really Hurts Without You’에선 특유의 흥겨운 리듬과 긍정주의를 설파했다.
빌보드 103위로 차트 성적은 미미했으나 유려한 가창과 베이스, 기타 등 요소요소가 매력적인 ‘Nights (Feel Like Getting Down)’과 마이클 잭슨의 누이 라토야 잭슨이 리메이크한 ‘Stay the Night’로 쾌활한 분위기를 지속했다. 코러스와 타악기 연주자 등 호흡 잘 맞는 대규모 밴드가 풍성함을 더했다.
밥 말리가 그의 영웅이었을까? 평화와 화합의 상징인 ‘No Woman No Cry’로 같은 카리브 해 연안 국가 출신 세 살 위 레게 영웅에 대한 헌사를 바쳤다. ‘One World’와 ‘No Woman No Cry’
베스트 앨범 < Here You Are: The Music of My Life >에 ‘Judge Not’을 수록했을 정도니 존경심이 얼마나 깊은지 헤아려 볼 수 있다.
1988년에 발표되어 오션에게 세번째이자 마지막 빌보드 넘버원을 안겨준 ‘Get Outta My Dreams, Get into My Car’ 속 경쾌함과 호방함을 지나 애절한 발라드 ‘Suddenely’가 들려왔다. 대부분의 곡을 직접 쓰는 오션은 독창적이고도 명료한 훅에 강한데, 그가 21세기의 케이팝 송라이터였어도 잘 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록과 신스팝이 절묘하게 교차한 ‘Loverboy’는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이지만 의외로(?) 객석 반응은 덜했다. 종종 내 팔을 툭툭 치며 흥을 일깨웠던 뻐드렁니 여관객, ‘Carribean Queen’을 안 맞는 음정으로 지독하게 불러대던 그녀도 ‘Loverboy’에선 침묵. 미국 2위와 영국 15위의 차트 성적 차이로 인한 것일까? 15위도 물론 높은 순위지만.
정규 11집 < One World >에 실린 트로피컬 넘버 ‘Daylight’와 (No More Love on the Run)이란 부제가 달린 최대 히트곡 ‘Caribbean Queen’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알렸다. 들을수록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이 떠오르긴 하지만 워낙 잘 알려진 넘버다보니 모두가 따라불렀다. 텀은 길지만 지속적으로 정규작을 발매해왔고 공연에서의 모습도 너무나 정정했기에 내년이나 후년쯤 12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기대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p.s. 로얄 알버트 홀 앞 매대에서 ‘Suddenely’와 ‘Carribean Queen’, ‘Mystery Lady’가 실린 1983년 대표작 < Suddenely > 싸인 LP와 프로그램 북을 구입했다. 오션의 미소를 담은 앨범 아트를 보며 뿌듯함과 긍정 에너지를 얻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