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라이브홀에서 열린 토리 켈리 첫 번째 내한 공연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왔던 토리 켈리가 뇌리에 각인된 건 2016년 BET어워드에서 스티비 원더와 꾸린 프린스 트리뷰트 무대 'Take Me with U' 였다. 스티비가 연주하는 하르페지(기타와 피아노의 교배종 격인 작은 악기)에 맞춰 너무나도 손쉽게 고음을 올리는 모습에 “저 사람 뭐야…” 했던 기억이다.
< Purple Skies Asia Tour >의 일환으로 열린 8월 27일 내한 콘서트 관람의 계기는 2024년 4월 발매작 < TORI. >였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 차트인 못할 만큼 상업적으로 처절하게 실패했으나 개인적으론 좋게 들었다. 폐혈전을 겪은 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High Water’가 인상적이었다. 질감은 다르지만 허(H.E.R.)의 ‘Hard Place’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기분 좋은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이 조화로운 그런 곡 말이다.
내내 감탄사 연발이었다. 유치하지만 “내가 본 가수 중 보컬 테크닉으로 탑 5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줄곧 생각했다. 흥분한 어투로 “걍 씨디를 삼켰다”란 어느 관객의 총평과도 일맥상통했다. 아마 공연장을 찾은 많은 실용음악과 학생이 약간의 좌절감과 경외심을 함께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실용음악과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보컬 지도하는 지인도 “악기 연주하듯 피치가 완벽했다”며 “노래 접어야 할 것 같다”고 탄식했다.
< TORI. >를 즐겨 들었기에 이 음반 위주의 셋리스트도 좋았다. 음원에선 르세라핌 김채원과 함께한 ‘spruce’의 감각적인 일렉트로니카와 드러머와 키보디스트의 매력을 고루 드러낸 ‘diamonds’에서 정통 알앤비 이외의 부면을 탐색했다. 관객들의 호응을 적극 유도한 ‘shelter’도 흥겨웠다.
목소리가 최대 무기다 보니 그것만으로 온전한 순간도 많았다. 어쿠스틱 기타와 노래를 곁들인 ‘oceans’에선 폭발적인 가창력을, 2012년 싱글 발매된 ‘Confetti’에서 감미로운 완급 조절을 들려주었고, 육성 하나로 승부한 ‘Bridge Over Troubled Water’에선 사이먼과 가펑클 듀오를 잠시 잊게 만들 정도였다.
음악가가 감동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끝장나는 연주로 귀를 마비시키거나, 존 케이지 풍 극한의 전위성을 통해 신세계로 안내할 수도 있다. 8월 27일 밤 명화 라이브 홀에서 토리 켈리는 절정의 가창으로 청중을 홀렸다. 주인공 토리와 오프닝 액트 메이시 케이(Maisy Kay) 심지어 주위 관객까지 다들 노래를 잘했다. 공교롭게도 나와 동갑인 삼십대초반의 걸출한 보컬리스트가 십 년 후 또 와인처럼 잘 숙성한 모습을 들려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