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질문은 내 기준에서 가장 난도가 높다. 너무 많아서, 떠올리기 괴로워서, 바보 같아서 입술만 옴싹달싹하게 만든다.
요 근래 나는 '왜 살아야 할까' 같은 문제를 놓고 매일 고민했다. 의사 선생님은 철학을 공부하길 권하셨다. 인간 너머의 높은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그러지 않고선 답을 찾기 어렵다고 하셨다.
학원을 그만두면 어떨까. 쓸모없는 감정 소모부터 멈추자.
나와 그가 함께 문제를 고민하면서 떠올린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둘 다 알았다. 삶의 이유는 학원을 그만둔다고 생기지 않는다. Be Humble. 우린 매일 주문을 외쳤다. 특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자주 되뇌었다. 넋을 놓고 즐거워하는 순간, 나쁜 일은 찾아오니까. 그때 가장 빈틈이 많다는 걸, 그래서 훨씬 빨리 무너진다는 걸 세상은 알고 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학원에 출근하고, 차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학부모와 이야기 나누고, 밤이 되면 집에 가는 삶. 달리 방법이 없었다. 최근엔 잠마저도 오지 않았다. 자기 전 먹는 약이 새로 추가되었다.
언젠가 학원 서랍에 둔 필요시 약을 모두 꺼내어 한 번에 먹은 적 있다. 저학년 수업을 앞두고 불안할 때 먹던 약이었다. 수십 개의 알약을 삼키고 수업을 하는데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그때 기뻤을까, 안도했을까.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좌절했을까. 어지러움만 머릿속을 차지했다. 내 감정은 항상 나에게만 거리를 두었다. 도저히 읽히지 않았다. 내가 '나'가 아닌 채로 태어나, 제삼자로서 나를 마주 보고 설 수 있었다면 알아차릴 수 있을 텐데.
수업 하나가 끝나면 강의실에 설치된 CCTV 사각지대에서 커터칼로 그었다. 깊지 않게, 적당히 피만 비칠 정도만. 퇴근하고 들어가면 유서를 썼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부엌 싱크대 밑에서 과도를 꺼냈다. 또 팔목을 그었다. 이때도 깊은 상처는 내지 않았다.
숨이 턱 막힐 만큼 슬픔이 아득했다. 불 꺼진 방에서 내일을 그리기도 지겨웠다. 일말의 빛도 눈에 보이지도 않아 허무했다. 그 시간의 감정보다 힘이 센 감각이 고통이어서, 나는 또 나를 상처 냈다.
"죽고 싶어요. 그래서 지난주 주말에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울었어요."
나와의 마지막 수업에서 한 아이가 말했다. 정확히는 마지막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반으로 옮겨갈 뿐이었다. 순간 가슴이 무너졌다. 열두 살 남자아이의 죽고 싶은 마음이 내 몫보다 무거웠다. 수업 끝나고 잠깐 남아보라 했다. 무엇을 말해주어야 하는 지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기다리라 했다.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감이 오지 않았다. 나도 요즘 죽고 싶어서 커터칼로 팔목을 좀 그었다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고, 약도 많이 먹는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다. 만약 아이가 학부모에게 전하고, 그 학부모가 다른 학부모에게 말을 옮긴다면 소문이 퍼질 것이다.
아이는 상담을 거절했다. 나는 퇴근하는 길에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어른이 된 나는 나름의 해결 방법을 찾았지만, 네 나이에는 어려울 수 있어. 그럴 땐 언제든 찾아와서 이야기해 줘.]
거짓말이었다. 어른이면서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나는 아직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후에도 몇 밤 동안 줄곧 아이를 생각했다.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아이가 자기 삶을 기꺼이 붙잡을까. 반복되는 생각은 예상치 못한 곳까지 닿았다. 내 주변 이들이 나의 삶을 붙잡는 마음이었다. 왜 다들 내가 살아있기를 바랄까. 왜 날 곁에 붙들어 둘까. 내가 아이를 붙드는 마음과 같을 텐데, 그 마음이 무엇일까.
나는 요즘도 충동이 든다. 이전에 한 실수를 다시 반복하고 싶다. 나를 망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아이에게 해줄 말을 고르던 나를 떠올린다. 그때 내 마음이 곧 내 주변 이들의 마음일 테니. 그래서 난 오늘까지 기어코 살아남았다. 그리고 다시 속으로 외친다. Be Humble. 내일에게 틈을 주어선 안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