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네가 좋지는 않은데.
점심시간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한 달에 한 번 나가서 식사를 할까 말까 하는 내가 점심시간에 늦게 복귀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니 머릿속에는 물음표 가득이다. 이런 유치한 감정, 생각은 애초에 졸업했다고 믿었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옹졸하고 치졸한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하, 미쳐버리겠구먼.
이런 감정에는 짧지 않은 히스토리가 있다. 작년, 나는 최악의 회사생활을 견뎠다. '보냈다.'라는 표현대신 '견뎠다.'라는 서술어를 쓴 데에는 정말 견뎠기 때문이다. 어쩌면 못 견뎠을지도 모를 일이고. 예고 없는 업무 파트너의 퇴사가 만들어낸 나비효과가 너무 컸다. '퇴사'는 누구에게나 예고는 없는 것이니 그것을 원망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 이후로 6년째 몸 담고 있던 회사 체계에 넌더리가 났다. 이 구조 안에서는 내가 나를 지킬 수 없구나, 판단했다.
두 사람이 해도 벅찼던 모든 일이 나에게 몰려왔다. 회사는 직원 사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별 탈 없이 '회사'라는 조직이 굴러가길 바랐던 것 같다. 나는 몰려오는 업무의 파동을 작디작은 내 두 손으로 막고 서 있었다. 단순하게 하나씩 쳐내면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운이 좋으면 그전에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자리에 잘 안착할 것이라고 믿었다.
참 순진했다. 조금만 버티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던 그때의 내가.
한 달 하고도 며칠이 지나, 처음 그 자리에 뽑혔던 사람은 처음부터 '일을 하기 싫다.'라고 했다. 빌어먹을, 그런 말은 속으로 해라. 할 건 하고 놀던가. 가타부타 따지고 드느니 어차피 나갈 인간, 내가 일을 하고 말지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한 달을 채웠던가. 안 그래도 한 달간 한 일이라고는 엑셀에서 데이터를 ctrl+C/V 밖에 없던 인간은 그렇게 퇴사를 했다. 건강보험 상실을 꼭 해달라고 하면서. 빌어 처먹을 인간아, 닥쳐.
그렇게 또 모든 직원들이 나만 바라보며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를 시작했다.
나는 정신의학과에 다니기 시작했고 하루에 두 번, 약봉지를 뜯고 간헐적으로는 약을 추가 복용했다.
아팠고, 억울했고, 부당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견디고 버티다 병가에 들어가기 하루 전 날에는 눈물이 고인 채로 손을 떨고 안면 경련이 일어났다. 그런 나를 친한 선배가 데리고 나가는 길에도 어떤 직원은 내 이름을 불러댔다. 지금은 아니라고 가로막고 서도 '내일이면 없으니까 지금 말해야 해.'라며 막무가내로 굴었다. 그만큼이었다. 내가 했던 업무, 내가 감당하던 무게, 내가 할 수밖에 없었던 인내가 나를 갉아먹었다.
3주를 쉬고 돌아왔지만 더하면 더 했지 바뀌는 건 없었다. 때때로 손을 떨었고 심장이 쿵쾅거렸고 나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발작을 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견딜 수밖에 없었던 회사 구조 때문에 나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것이 부당하고 공정하지 못한다고 느껴지자 참을 수 없어서 팀장의 자리로 직진했다.
그 이후로는 뭐, 예상하시는 그대로.
히스토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모를 테다.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고 아무렇지 않게 함께 식사할 수 있으며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업무보고를 할 수 있다. 이것이 직장인의 현실이라는 것도 애석해 죽겠는데 한 달, 30일 중 29일을 나가지 않고 탕비실이나 자리에서 점심을 먹는 나에게 점심시간에 늦지 않게 복귀하라니. 그럼 그동안 더 자주, 더 늦게 들어온 다른 팀원들에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인지. 그저 그날 빈자리가 많아 눈에 튀었다고 대답하려나. 그렇다면 팀장이란 자리는 그렇게 말이 앞서기만 하면 되는 곳은 아니니 한 번 더 고민하고 입을 열거나 메일을 쓰길. 팀원에게 '차별'이라는 무드를 풍길 수 있는 발언과 행동은 자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오늘 당장 점심시간을 넘겨 들어온 다른 팀원에게는 경고를 주기는 했는지.
회사 내 인정, 호의, 친절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 다정한 감정은 개인적 관계에서 느끼면 그만이다. 그저, 부당함을 느끼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일하는 만큼 보상받는 것이 당연한 곳에서 일과 보상 외 공정하지 못한 사사로운 일로 감정 낭비를 하지 않길 간곡히 바라본다. 제발, 그리고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