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무던 Aug 27. 2023

회사에 친구 만들려고 온 거 아니잖아?

점심을 혼자 먹는 이유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 앞서 본인은 적당한 내향인으로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음을 밝힌다. 더불어, 굉장한 '독고다이' 삶을 살고 있으며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주변인들의 말은 적당히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밝히는 이유는 내가 회사에서 보이는 행동 양상이 분명 쉽지 않은 친구들이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Q. 혼자서 점심을 먹는 이유?
A. 회사에 친구 만들려고 온 거 아니잖아?



    회사에서 사회적 태도를 보이지 않은 지 2년이 조금 더 됐다. 직접 선택하지 않은 인간관계는 원천 차단한다.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이 버거운 일을 피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에너지 낭비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그런 인간관계가 나에게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돌보기 위해 함부로 관계를 넓히지도 마음을 베풀지도 않는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나를 갉아먹는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냐고?

    인생 38년 차, 굳이 직접 겪거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하나 둘 생긴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인간관계는 분명 거추장스러워진다.


  



    처음 점심시간을 탕비실에서 보냈던 계기는 인사발령이었다. 인사발령 자체는 대수롭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위가 운동을 하지 않았다. 평소와 동일하게 식사를 했을 뿐인데 퇴근까지 점심에 먹었던 음식물이 그대로 몸 중앙에 멈춰있었다. 인사발령을 받은 팀 특성상 점심시간은 딱 지켜야만 했고 업무시간 동안 움직임은 제로에 가까웠다. 나의 위장장애는 단순 활동량의 문제인 것 같았지만 60분 내 광화문 언저리에서 식사를 하고 만족할만한 산책을 할 시간은 나질 않았다.


    12시에서 1시 사이 광화문 주변은 모든 직장인이 점심을 먹기 위해 쏟아져 나온다. 툭하면 웨이팅, 툭하면 원하지 않는 메뉴였다. 위가 제대로 움직이는 것이 기적이었다.


    혹시나 했던 위 내시경 결과도 지극히 정상이었다. 결단을 내릴 때였다. 팀원들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 점심을 함께하던지, 그저 나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할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뻔하지 않은가.


    혼자 먹는 점심식사는 만족감이 꽤 높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준비해서 원하는 속도대로 씹는 동안 온전히 나 자신을 보살피는 기분이었다. 준비해 온 음식을 다 먹고 나면 지체 없이 탕비실을 벗어나 꼼꼼하게 양치를 했고 신고 있던 가벼운 크록스를 운동화로 갈아 신고 회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층 빌딩이 많은 만큼 초록도 많은 동네에서의 산책은 부족함이 없었다.


    매번 똑같은 길이었지만 복식호흡에 집중해서 걸으면 요가원이었고, 씩씩하게 팔을 휘휘 저으며 걸으면 등산로였고, 어제 읽었던 책을 상기하며 걸으면 도서관이었다. 무엇이 부족했겠는가?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었었다. 위장장애 극복은 꼬박 1년 반이 걸렸지만.


    위장장애 극복과 바꾼 것은 무엇이었냐고? 쓸데없는 스몰토크. 또래 팀원들과 소소하게 했던 취향 나눔. 후자는 조금 아깝고 전자는 감흥이 없다. 사무실을 벗어나면 눈 마주칠 일 없을 사람들의 재정상태나 가족사를 귀 담아 들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내 이야기를 희생해서 시간을 메꿀 필요도 없고 말이다.


    혼자 점심식사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장점뿐인데, 특히나 회사 내 이런저런 가십에 내 귀를 오염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하다.   




    위장장애를 극복하고도 꾸준히 점심을 혼자 하는 이유는 시간 활용 때문이다. 요즘은 주로 관심 있는 책을 읽는데 식사 후에는 산책(*필수)을 해야 하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일찍 복귀하는 직원들이 사무실에 모이기 때문에 책을 읽기에는 다소 소란스럽다. 하여, 음식물 섭취와 책장 넘기기를 동시에 하는데 생각보다 집중도가 매우 높다. 고작해야 2-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인데 퇴근 후 피로감으로 인해 미루고 미뤘던 책을 해치우는 쾌감에 사로 잡혔다. 덕분에 아직 독서 목록에서 지우지 못한 책이 밀린 숙제가 아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내 삶을 바꿔놓으리라 확신한다.










 

나보다 연차가 적은 직원에게는 꽁꽁 숨겨둔 친절을 기필코 낭비한다.

  



     회사에서 사회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 나에게도 예외 규칙은 존재한다. 회사 특성상 근속연수가 매우 높고 퇴사율이 적다 보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새 나보다 연차가 적은 직원들을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가 됐다. 감정 없는 표정으로 꼼짝없이 앉아 일만 하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그들이 내 앞에서 조심스레 입을 열면 최대한 눈을 접어 웃는다. 허튼소리가 아닌 업무 관련 요청이라는 가정 하에.


    실제로 친한 동료는 왜 쟤한테만 친절하냐고 물었다. 사실은 '쟤'가 아니라 나보다 연차 적은 직원들에게 보이는 사회적 태도였다는 걸 그 동료는 알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팀장이 나를 싫어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