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내 인생은 즐거워
2023년이 이거라고? 미쳤구나. 회사 어르신 너 나와. 말이든 힘이든 내가 이길 것 같은데 회사 밖에서 하나하나 따져보자고!
직속 상사의 평가가 염병할 일은 아니었다. 조금은 “왜?” 라는 의문이 들지만 두발자국 정도 물러나면 납득할만도 하다. 물론, 물러서고 싶지 않은 것이 진심이긴 하다.
그러나 다른 어른의 평가는 전혀 납득할 구다리가 없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어?
네가 꿈을 펼치려고 쓰는 그 돈을 누가 관리하는지 인지는 하고 감히 네가 나를 평가한거냐고,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안 풀릴 분이 켜켜히 쌓여갔다.
그럼에도 내가 한 일은 면담을 신청하고 감정이 없는 것 처럼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접어버린 것이다. 바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아니고 섬광처럼 다가온 순간 덕분이었다.
고과평가, 그게 뭐?
회사에서 나쁜 평가를 받으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나? 아니. 난 그냥 훌륭한 사람인데?
회사에서 좋운 평가를 받으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되나? 아니. 그 전 부터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고과평가에 따른 성과급과 승진이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후벼팔지는 몰라도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다.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동생과 크나큰 입 씨름을 하는 것에 내 마음을 더 찢겨놓을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정해지는 평가는 가혹한 처단 같이 느껴질지라도 따지고 보면 매우 수동적인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인간관계 속에서 나는 딱히 무언가를 하지 못한 채 때가 되어 받는 점수, 그 뿐이 아니던가. 그게 ‘나’를 혹은 ‘내 인생’을 대표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잊기로 했다. 면담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지각 횟수를 줄이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니 그거나 해야겠다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나도 사람이라 문득 문득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럴 땐 조금 더 어렸던 때를 생각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만 하다 넘겨버렸던 때를 말이다.
이제는 부당하게 느껴진다 말을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 요청할 수 있고 그 때 보다 쿨하게 정리할 수 있게 자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인생을 산다.
어차피 즐거울 내 인생이니까,
내 점수가 뭐든 내 알빠가 아닌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