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고비들이 찾아왔다
마음이 아주 강한 부모이시라면 이 글이 별로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러나 수면교육을 성공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이의 울음에 한없이 약해지는 부모이시라면 조금은 공감되고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저의 수면교육 성공 그 이후의 이야기도 조금 들려드려 볼까 합니다.
수면교육을 시작하기 전 수면교육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했을 때만 해도 성공만 한다면 앞으로 쭈욱 별 탈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아이가 성장을 하면 할수록 더 큰 고비들이 계속 찾아오더라고요. 그 특성들을 '재접근기'라고 하는데 저희는 아이가 6개월에서 7개월 사이 엄마를 인지하기 시작할 때 즈음 첫 번째 고비를 맞이했습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아이를 재우는 일은 늘 당연히 엄마인 저의 몫이었는데, 이러다간 정말 아이가 다 클 때까지 혼자 외출도 못하겠다 싶어 주말 이틀은 아빠가 재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죠. 당연히 아빠랑 자러 들어가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빠가 재우는 날에는 아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라온아 이제 자야 할 시간이야.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잘 거야.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 잘 자고 내일 보자.' 방으로 들어가기 전 아이와 작별인사를 합니다.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때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아빠 품에 안겨있지요. 그러나 잘 자~ 안녕~~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면 그때서야 '아 오늘은 엄마와 함께 잘 수 없는 거구나' 깨닫고는 큰 소리로 울기시작하며 아빠 품에서 버둥버둥 발길질을 차기 시작합니다. 그런 아이를 아빠는 양팔로 꽉 안고서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때부터 아이의 강성울음은 집안 곳곳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아빠품에서 벗어나 엄마에게 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벗어날 수 없게 되자 마음이 불안해졌는지 손가락을 사정없이 빨며 진정하려고 노력하더라고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아이가 엄마랑 자러 들어갈 때는 책도 읽고 장난도 치며 굿바이 인사를 하는데 아빠랑 자러 들어갈 때는 침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눈을 감고 손을 빨며 잘 준비를 합니다. 이미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오늘은 엄마와 굿바이 인사를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모든 걸 체념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아빠랑 자는 날에는 바로 잠에 들려고 해서 육퇴가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되기는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밖에서 캠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수면교육을 처음 시행했을 때의 기억과 감정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그리고는 '아이가 많이 힘들어서 우는 걸까, 딱히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재울걸 그랬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처음 그랬던 것처럼 죄책감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나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곧 아빠랑 자는 것도 익숙해질 거야. 언제까지나 나만 재울 수는 없잖아.'라고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며 자꾸만 올라오는 미안한 마음을 열심히 삼켜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고서는 최대한 제가 재우려고 하고 있답니다. 미안한 마음과 책임감이 아무리 자기 합리화를 하려 해도 작아지지가 않더라고요. 아이와 즐겁게 책을 읽고 노래를 불러 주고 대화를 하는 길어봤자 20분 밖에 안 되는 그 즐거운 시간을 우는 시간으로 바꿔버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혼자 잠에 드는 그 시간이 부디 마음 편하고 행복해서 예쁜 꿈을 꾸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나 크네요. 엄마 마음은 다 똑같겠죠?
그러다가 제가 외출할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아빠가 재우는 날에는 똑같이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러 들어가는 순간부터 울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내 스스로 잘 진정하고 금방 잠에 들더라고요. 역시나 아이는 늘 제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견뎌내 줍니다. 이렇게 첫 번째 고비가 지나갑니다.
두 번째 고비는 아이가 9개월쯤 됐을 때였어요. 엄마! 아빠! 단어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아빠를 더 확실히 구분하고 인지하기 시작했죠. 그동안은 정말 육퇴가 세상에서 제일 쉬울 정도로 “잘 자~ ” 인사만 하고 나오면 혼자 책을 읽거나 놀다가 잠에 들곤 했는데 갑자기 어느 날부터 아이에게 ”잘 자~ 내일 보자~“ 인사를 하면 제 다리를 붙잡고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책을 더 읽자며 책을 가리키기도 하고 인형을 가지고 오며 관심을 끌기도 하고. 확실히 인지가 더 높아지니 잠을 안 자려고 아주 별의별 수를 다 쓰더라고요. 그 손길을 뿌리치고 단호한 목소리로 ”아니. 라온이 이제 자야 할 시간이야. 잘 자고 내일 보자. “라고 인사를 건네면 뿌앵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합니다.
이후에도 더 놀자고 제 몸 위로 올라타고 무릎에 얼굴을 대고 눕고 가랑이 사이로 파고 들어왔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아이의 그 사랑스러운 몸짓을 뿌리치고는 재빨리 방을 나섰습니다. 그때부터 또 아이의 강성울음은 시작됐죠. 조금 잦아들었다가 또 울고 괜찮아졌다가 몇 분 뒤에 또 울고. 이 날은 이렇게 자는 데까지 1시간 정도 걸렸던 거 같아요.
이게 첫날이었고 일주일정도 이런 상태가 계속 됐어요. 첫날은 1시간, 둘째 날은 30분, 셋째 날부터는 20분 그다음 날은 10분, 5분,,, 그렇게 일주일을 버텨내니 또 금방 잘 적응해서 스르르 별 탈 없이 잘 자더라고요. 사실 이때는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인 처음 수면교육을 진행했을 때 보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러나 그동안의 아이와 우리의 노력이 한순간에 숲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처음 그대로 단호한 목소리와 일관된 태도로 무사히 잘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외출을 할 때마다 고비가 찾아왔어요. 외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짧은 외출인데도 이상하게 외출만 하고 집에 온 날이면 밤에 아이가 영문 모를 짜증도 많이 내고 잘 때 많이 울더라고요. 특히나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 때. 이 고비는 적응까지 3일 정도 걸리는 거 같아요. 길면 5일. 첫날은 똑같이 1시간을 보채기도 합니다. 그다음 날은 20분, 그다음 날은 5분. 그래도 아이가 커가면 커갈수록 적응하는 시간도 금방입니다. 언제 완전히 적응하고 괜찮아질지는 모르겠어요. 돌이 지난 지금도 시댁에 다녀온 날 밤에는 그렇게 짜증을 많이 내고 자는 시간이 정말 전쟁이거든요.
아마 낯선 환경에서 긴장을 했어서 그 피로가 조금씩 쌓여 표출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 어른들도 집에 있다가 회사에 출근을 하거나 낯선 곳에 가면 조금씩 긴장을 하고 있듯이 아이들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편한 환경에만 두면 좋겠지만 벗어나지 않는 게 또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아 우리 아이가 오늘 낯선 환경에서 조금 긴장했구나, 그래서 많이 피곤해서 이렇게 힘들어하는구나.‘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며 한 번 더 토닥토닥 더 꽉 안아주며 그 고비를 넘치는 사랑으로 잘 넘겨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침 저번 주말에 그 고비가 저희에게 또 찾아왔었어요. 어머님 생신기념으로 시댁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잘 놀고 잘 먹고 낮잠도 아주 잘 잤죠. 그리고는 집에 와서 똑같이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하고 책도 읽고 노래도 불러주고 '잘 자~ 내일 보자. 사랑해.' 굿 나이트 인사를 하고 별 탈없이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있다가 짜증 섞인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울다가 진정을 하려고 손을 또 막 빠는데 손을 빠는데도 잠에 드는 게 힘든지 더 큰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엄마! 엄마!' 저를 계속 찾았죠.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일단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소리를 들어보니 계속 울어서 그런지 코가 막혔더라고요. 코가 막혀서 또 짜증이 난 거죠. 코뻥을 들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코뻥을 하기 싫다고 난리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죠. 거기서 또 엄청난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발버둥이 더 심해져 그냥 코뻥을 포기하고 아이를 있는 힘껏 꽉 안아주었습니다. '오늘 라온이가 많이 힘들었구나. 너무 수고 많았어. 그런데 지금은 자야 할 시간이야. 잘 자고 내일 보자.' 단호한 목소리와 일관된 태도로 수면 위로만 하고 방에서 바로 나왔습니다.
아이는 제가 나오자마자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을 바라보며 계속 울기 시작했어요. 계속 지켜보다 20분이 흘렀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아빠가 수면위로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빠가 들어가니 엄마를 찾으며 더 크게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빠가 아이를 한 번만 토닥토닥 안아주며 짧고 빠르게 수면 위로를 하고 나오길 바랐는데 갑자기 안아서 재워보려 하는 거 같더라고요. 일단 밖에서 조금 지켜보다가 시간이 길어지는 거 같아 '내려놓고 빨리 나와!' 소리를 질렀습니다.
스스로 자버릇하는 아이는 누군가 갑자기 안아서 재우려고 하며 그게 더 불편할 수 있거든요. 스스로 잘 줄 아는 아이는 스스로 진정하는 방법도 이미 터득을 한 거라 그런 짜증 나고 불안한 상황에서 오히려 스스로 진정하는 걸 더 좋아하고 편안해합니다. 그래서 라온이도 힘들어하는 상황이 올 때면 안아주기보다 바닥에 내려놓고 스스로 손을 빨며 진정을 하고 있으면 곁에서 그저 등을 쓸어주거나 머리를 쓰담쓰담해주면 훨씬 더 빨리 진정하더라고요.
그걸 몰랐던 남편은 아이를 안아서 달래고 재우려다가 오히려 아이가 조금 더 불편해하고 힘들어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이의 이런 부분도 잘 파악해서 진행해 주시면 될 거 같아요. 저도 이번 기회로 남편에게 라온이의 특성에 대해 미리미리 더 잘 설명해 줘야겠구나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던 거 같아요. 고비 둘째 날이었던 어제는 저 혼자서 수면위로를 진행했는데 진정하고 잠에 드는데 까지 5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휴.. 아마 앞으로도 이런 고비들은 계속 찾아올 겁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도 많이 흔들리실 거예요. 저도 이젠 수면교육을 성공한 지도 꽤 됐고 분리수면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서 어떤 상황이 와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이런 고비들이 생길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가 않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뭣도 모르고 혼자 잤는데 이제는 아이가 혼자 자는 게 정말 너무 힘든 건 아닐까? 이제는 엄마도 확실히 알아보니까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닐까?' 또 별의별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도 하고요.
우리는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하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죄책감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그러나 죄책감에 갇혀있는 것보다 거기서 빨리 벗어날 줄 아는 게 더 중요할 거 같아요. 그럴 때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먼저 심호흡 한번 후~ 내쉬고 마음을 가다듬어 보세요. 그리고 머릿속에 이 말을 되내어 보세요. '처음부터 다시 하면 돼. 처음부터 다시 하면 돼'. 어쩌면 처음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마음가짐을 이렇게 갖다 보면 아이의 울음으로 소용돌이치던 마음이 금방 차분해지면서 인내를 할 수 있게 되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짧으면 3일! 길면 5일입니다. 끝까지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금방 아이와 함께 또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오늘도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오늘 하루도 우리 아가와 함께 성장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남은 시간도 웃음 가득한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