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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링엄마 Feb 10. 2023

눈이 자꾸 마주친다는 건
좋아한다는 거구나

시선의 의미 

 “뭘 봐?” 


 눈이 마주친 순간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든지 할 말을 잃을 것이다. ‘우연인데? 라고 잡아떼거나, ‘네가 예뻐서’라며 치켜세우는 상황보다는 ‘어?그게...’ 또는 ‘그냥’이라며 얼버무리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만약 눈이 마주친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이유로든 의미 있는 타자라면 훨씬 더 당황스러울 것이다. 본다는 것은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기 에 이유를 묻는다면 당황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그저 눈길이 숨을 쉬듯 그곳으로 갔을 뿐.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수학 학원에 가면 자꾸만 눈이 마주치던 남자애가 있었다. 그 애는 늘 강의실 맨 뒤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는데, 성장의 폭풍을 혼자서만 온몸으로 맞고 있는 사람처럼 그 나이 때의 다른 소년들에 비해 키가 크고, 체격이 다부졌다(그에 반해 나는 성장의 가랑비도 맞지 못한 사람처럼 잘 봐줘야 또래 정도의 키와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늘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던 나는 어느 날인가 친구에게 샤프심을 빌리려고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가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애의 안경 너머의 눈과 분명히 마주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 애와 눈이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시계를 보려고 뒤를 돌아봤다가, 시험지를 뒤로 넘기다가, 강의실 맨 뒤에서 두 번째 줄에 앉은 그 애의 시선과 맞닥뜨렸다. 당시 나는 의외로 순진해서 시선의 의미 같은 건 생각지도 못하고 ‘왜 자꾸 눈이 마주치지’ 정도의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애와 자꾸 눈이 마주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같은 학원에 다니던 발 넓은 친구로부터 그 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왜 자꾸 눈이 마주치지’라고만 생각했던 그 애의 시선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 눈이 자꾸 마주친다는 건 좋아한다는 거구나. ’      


 그날 이후 내 머리 위에는 조명이 하나 달리게 되었다. 그 조명은 마치 연극에서 주인공만을 비추는 핀 조명처럼 한동안 내 머리 위를 비췄는데, 나는 마치 내가 학원 어디에 있든 그 애의 눈과 귀가 나를 향해 있다는 귀여운(?) 착각을 시작하게 됐다.      


  대충 질끈 묶고 다니던 머리는 풀어 헤치고, 촉촉하고 생기있는 입술을 위해 약간 붉은빛이 도는 립밤을 늘 교복 앞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도 내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지 그 애가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학원 선생님이 나에게 복잡스러운 수학 문제를 나와서 풀어보라고 했고, 결국 내가 그 문제를 틀렸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창피하고 억울한 마음에 학원 선생님을 며칠 동안이나 원망했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애는 내가 수학 문제를 틀렸다고 해서 나를 비웃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내가 학원 어디에 있든 그 애가 항상 날 지켜볼 리가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 애가 날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 애가 늘 나만 바라보고 있을 만큼 한가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사춘기 청소년의 앙큼한 착각이었을 것이다. 교육심리학에 ‘상상 속의 청중’이라는 말이 있다. 청소년기에는 누구나 내가 무대에 주인공이며, 모두가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착각은 어른이 되면 대부분 자연스레 사라진다. 각기 고유한 정체성이 형성되어 더이상 남들의 시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인생의 떫은맛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마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런 착각을 종종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어디에서나 환대받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나는 때로 그때 그 시절의 시선과 착각이 그리운 생각이 든다. 그때 그 애의 그 시선. 관심과 호기심이 가득 하지만 결코 때 묻지 않은 싱그럽던 그 시선.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난 착각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던 어리고 순진한 나. 야속하게도 어른이 되어 버린 지금은 느끼지 못할 그 순간과 감정들.      


 시선은 눈이 가는 길이다. 누군가의 순수하고 강렬한 눈길 끝에 있는 것이 나라는 사실이, 그 길의 목적지가 나라는 사실이 꽤 짜릿하지 않은가. SNS를 통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화면 속 누군가와 찰나의 시선과 관심만을 주고받는 인스턴트 시선의 시대이기에 더욱더 말이다.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나는 오늘 소중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시선을 주었는가. SNS 속 찰나의 누군가에게 찰나의 질투, 찰나의 선망만을 보내지는 않았는가. 가끔은 사춘기 때의 모습으로 조금 더 순수하고, 강렬한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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