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너 진짜 상당히 거슬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나는 정말 힘이 드는 날이다. 기운이 한없이 축 쳐지는 거 이겨내고 방문을 나서니 한결 에너지가 넘치는 여자가 나를 신나게 맞이한다
“언니 나 오늘 진짜 일찍 일어났어”
“왜 이래 기운 펄펄 넘쳐”
“난 이런 날씨가 좋아”
아침형 인간인 동거여자와 저녁형 인간인 나, 우리는 에너지의 방향이 반대로 흐른다
이미 일어나서 상쾌하게 명상, 일기, 글쓰기 등을 마친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밥을 먹자고 했다. 아침에 잘 먹어지지도 않는 나와는 달리 여자는 잘만 먹어댔다
나는 오후 1시부터 조금씩 세상 살아갈 맛을 느끼며 3_~4시에 가장 컨디션이 좋고 집중도가 높은데 여자는
4시가 되면 에너지가 고갈된다. 그때 우리는 간식을 한차례 먹는다
먹고 조금 더 일 하다가 요가를 다녀왔다. 요가 끝나는 시간은 8시 반쯤 되는데 그때 되면 몸이 힘들긴 하지만 내 기분은 최상이 되고 여자는 더 이상 말 할 수 없는 고장만 로봇이 되어버린다.
차 안에서 우리는 계획을 세웠다
“언니가 씻고 있는 동안 내가 면을 삶을게, 그다음 내가 씻는 동안 언니가 요리를 완성하는 거야”
“좋아”
씻고 나왔더니 펜네 삶는 물에 새우 같이 넣어져 삶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펜네 빨개진 거 내가 새우 넣어서 그런 거야?”
“응”
그렇지만 우리가 해 먹은 그동안의 모든 요리들 중 가장 맛이 좋았다 이렇게 해보지 않았던 경험들 안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는 일들을 하나씩 모아 보면서, 우리 터키에 가보는 건 어떨까 또 다음 여행지를 상상했다.
아무튼 내일은 요가 끝나고 고기뷔페를 가서 대패 삼겹살을 많이 먹자고 약속했다 우리 둘 다 몸져누워서 오늘 밤은 매우 고요하다. 여자는 침대에 꼭 붙어서 이상한 자세로 핸드폰을 부여잡고 있고 나는 밤 12시에 못다 한 일이 하고 싶어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간다. 이렇게 다른데 이렇게나 잘 맞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거 매번 신기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