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치는 딱따구리]
팩트로 뼈 때린다는 말이 있다.
반박하지 못할 만큼 너무 사실인 말이라,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화만 삭히게 되는 경우이다.
남들은 아직 한창 젊을 나이라고 말하는 고작 스물여섯이지만,
올해로 회사생활이 8년 차가 된 나는 반박 못할 팩트에 아파한 적이 참 많았다.
"언제쯤이면 1인분 할 수 있어?"
"아직도 이런 것도 못해?"
등등 지금은 무뎌질 만큼 잊은 말들이지만, 19살 어린 나에게는 참 아픈 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들어간 회사는 생각보다 나에게 더 힘들었고 현실적이었다.
무시 못할 학력에 대한 벽을 느꼈으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티 내는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부족함을 내가 더 느끼고 있었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회사를 마친 후에는 밤에는 대학교를 다니며
내가 나의 부족함을 지우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이 그 채워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4년 동안 열심히 학교를 다닌 덕에 좋은 성적으로 졸업까지 마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나에게 부족함을 채우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드디어 회사에만 오로지 집중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자 무언가 다른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때 전공했던 회계, 세무 전공을 살려서 세무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세무사와 같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을 때는 비로소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을 이뤄냈기에 그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렇게 회사가 끝나면 토익학원을 가서 공부를 하고, 밤에는 세무 강의를 듣고 아침에는 다시 출근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의 꿈은 도대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더 잘 살고 싶어서 시작했던 모든 것들이 나에게 짐이 되어버렸고
버틸 수 없을 만큼 눌렀다.
무엇보다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할 수 없었다.
평소에는 직장인이었으며, 퇴근한 후에는 학생이었고, 늦은 밤에는 세무사를 준비하는 세시생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깨달았던 것은 내가 계속 느껴오던 나에 대한 부족함은
나의 어떤 노력을 해도 사실 채울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이뤄온 어떤 것에도 나는 나의 실력으로 이뤄진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나의 실력보다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지금까지 이뤄왔던 것들은 남들도 흔하게 이뤄온 것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사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손 놓았던 공부였지만, 고등학교부터는 정신 차리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겠다는 단순한 목표가 있기에 꾸준하게 공부를 했었고, 나름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해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스펙에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방학에도 노력했고
군대에서도 밤에 따로 공부를 해 자격증을 취득하고는 했다.
매일 10시는 돼야 끝나던 야간 대학교도 일주일에 4번 이상을 나가며 열심히 공부했고
4점이 넘는 학점으로 조기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노력을 야속하게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내가 채워야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 인생을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인정해주어야만 했다.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열심히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것은 신뢰를 주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기로 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 나름의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 기준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더 높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나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노력들을 노트에 적어나가다 보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자신을 인정하고 지금까지의 노력을 알아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