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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Sep 06. 2022

아버지는 취미가 없다

회사를 8년간 다니면서 느낀 것이 있다. 적당히 스트레스를 해소할만한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운동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취미활동으로도 가능하다.

회사가 너무도 가기 싫어 스트레스가 쌓이는 날에는 새로운 취미를 찾고 몸을 움직임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다.


누구나 취미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취미활동을 시작하는 데 접근성이 쉬워졌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대피처를 사람들은 하나씩 만들어 놓곤 한다.

취미활동은 그저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된 삶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취미가 없다.

집에서 독립하기 이전에도 아버지와 같이 살았지만 아버지는 취미가 없었다.


아버지의 취미에 대하여 떠올려보면 나와 동생이 어릴 때, 아버지는 주말이면 산에 데려가곤 하셨다.

조그마한 발을 한 발씩 내디뎌 결국 정상에 오를 때면 기념사진도 남기곤 했다.

산에 가지 않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근처 호수에 놀러 가기도 했다.

우리와 함께 돌아다니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취미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더 이상 아버지를 따라 나가지 않았다.

주말이면 친구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이미 집에 나는 없었고,

공부하느라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따라 나가지 않았다.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한 이후로는 더더욱 그런 기회는 없었다.


아버지는 취미 대신에 술을 드셨다.

지난 40년도 넘게 드신 술, 그게 아버지에게는 취미가 되었다.

우리 형제와 함께 등산하고, 자전거를 탈 때는 술을 드실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자리를 비우고 난 그 자리에 아버지는 술로 채우신 듯하다.

가장 가까이 있던 술을 더 가까이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본가에 방문했다. 여전히 아버지는 술을 자주 드셨고

최근에는 어머니와 동생의 잔소리에 아버지는 술을 숨겨놓고 드셨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하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술 좀 그만 마시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버지가 술을 취미로 만든 것이 나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와 시간을 더 보냈다면...

아버지와 취미활동을 같이했었다면...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빈 공간을 술로 채웠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직까지도 일 하고 계시는 아버지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없이 하기 싫은 일을 반복해야만 하는 일생이 얼마나 힘든지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아버지에게 술 좀 줄이라는 말을 앞으로 하지 못할 것 같다.

지금까지 희생해온 아버지에게 즐거운 일 하나 찾아주지 못한 아들이,

즐겨하는 술까지 막을 염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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