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쳤습니다.
또다시 석 달이 지났고, 어느덧 학기말을 맞이했다. 한국의 교직을 마감하고 미국에서 바로 새로운 교직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정신은 온통 새로운 직장 생활에 있었다. 얼마 전 브런치 알림을 받고 나서야, 아차 싶어 더 늦기 전에 다시 브런치로 돌아왔다. 글을 전혀 쓰지 못한 석 달의 시간 동안에도 구독자가 8명 늘었다는 소식이었다. 너무 감사드릴 따름이다. 한 학기라는 시간 동안 미국의 한 주립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많은 것을 경험했고 또 배웠다.
미국은 가을 학기가 새 학년 시작이다. 어느덧 새 학교에서 한국어 반 학생들을 가르친 지도 석 달 정도가 훌쩍 지났고 종강을 맞이했다. 상반기, 나의 명예퇴직 절차와 더불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은 우리 동네의 대학교 강사로의 지원이었다. 명예퇴직이 될 수 있을까도 미지수였지만, 대학 강사로 채용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언어학과에서 강사를 모집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작년 하반기였다.
동네 초등학교와 대학교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자원봉사를 여러 번 하면서 대학 교수님 몇 분도 알게 되었고 언어학과에서 강사를 모집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우리 동네 주립 대학교. 그동안 유럽 언어들만 담당 교수를 둔 정규 과목으로 수 십 년째 운영을 해 오고 있다. 한국어를 포함한 소수의 언어들에 대해서 강사를 뽑는다는 광고가 벌써 몇 년 전부터 홈페이지 어디엔가 올라와 있었지만, 그간 지원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미국에서도 직장 경험을 싶었는데 그동안 자격이 안 되었었다. 휴직자는 일을 할 수 없었고,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비자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휴직 교사에서 퇴직 교사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고, 8월 말에 퇴직을 했다. 이후 바로 미국에서도 일을 해 보고자 도전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 대학교에서 정식으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 학과로 문의를 드린 후 학과장과 먼저 면담을 해야 했다. 그 후 학과 조교 선생님이 알려 준 사이트로 들어가서 강사 지원을 해야 했는데, 제출해야 할 것들이 그야말로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학석박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 이력서, 커버 레터, 3인의 추천 명단 등등. 한국에서 받아야 할 것들을 챙기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추천인 세 분을 찾는 것과 더불어 영어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한 번도 써 보지 않았던 커버 레터를 작성하면서 시간이 참 빨리도 갔다. 처음 해보는 모든 준비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한 달 이상 준비를 한 끝에 모든 서류를 제출했으나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큰 관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건 첫 학기에 단 한 강좌만을 개설해 줄 수 있는데 열 명 이상이 등록을 해야 수업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어 수업을 어떻게 홍보해야 하지? 우선 포스터를 만들었고, 교내를 돌아다니며 포스터를 붙이고 알고 지내는 대학생들과 교수님께 홍보를 부탁하며 또다시 한 두 달이 금방 지나갔다.
명예퇴직이 확정되고 난 그다음 주, 나의 새로운 한국어 101 과정 등록 학생도 열 명이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수업 개설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8월 말에 퇴직과 취직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마침내 한국어 첫 수업을 하러 간 날 나의 마음은 20대 초임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놀랍게도 스물 다섯 명이라는 정원이 꽉 찬 숫자의 학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