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tomorrow with today. -Elizabeth Barrett Browning-
한국어를 신청한 대학생들은 모두 스물다섯 명이었다. 제발 열 명을 넘어야 한다는 소망을 훌쩍 넘은 숫자, 정원을 꽉 채운 놀라운 숫자였다. 25명 수업 최대정원을 꽉 채우다니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간절한 마음이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강의실에는 서른 개의 의자가 있었는데 단 다섯 의자만을 빼고 꽉 채워졌다. 이 중에서 남자 학생은 단 두 명이었고, 모두 여학생들이었다. 언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대다수는 여학생들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우리 반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본, 베트남, 미얀마 등 다른 나라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도 열 명 가까이 됐다.
기나긴 과정을 끝으로 마침내 열 수 있었던 미국 대학교 한국어 수업의 첫날이 다가왔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국적이 골고루 섞인 우리 반의 첫 수업을 위해 내가 준비한 것은 나에 대한 소개와 호칭,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 그리고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였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모든 수업 중에서 첫 수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도입 부분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학생들을 위한 기초반이니 만큼, 무엇보다도 중요한 말은 한국어! 그때 번뜩 떠오른 생각은 한국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알려줘야겠다는 거였다.
드디어 첫 수업이 시작되었고, 교실로 들어서자 스물다섯 명, 오십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멋진 미소, 당당한 어깨와 발걸음으로 교실 앞으로 걸어가며 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내가 무작정 외친 단어는 "한국어! 한국어! 한국어!". 여러 번 한국어를 말하며 학생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하자는 신호를 보내니 학생들이 한 두 명 따라 하기 시작했다. 금세 반 전체가 한국어 소리로물들었다.
한국어! 스페니쉬? 아니요! 프렌치? 아니요! 코리안? 네! 혼자 자문자답을 하며 한국어의 뜻이 코리안 랭귀지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자연스레 '네, 아니요'도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한국어를 다 같이 외치다 보니 5분이 후딱 지나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통해 내 소개를 이어갔다. 한국에서사십 년을 살고 몬태나에서 살다가 이곳 앨라배마까지 오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니 학생들의 눈이 더 커지는 듯했다.
나에 대한 호칭은 선생님. 미국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학생들의 호칭은 대부분 닥터(박사님) 또는 교수님이지만, 나는 선생님이란 호칭이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말의 선생님이란 단어는 영어의 'teacher'와 대응되는 단어가 아니고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라는 말조차 생소할 우리 반 학생들을 위해 '선'에 의미를 부여하여 "I want to be your sun!"이라고 하며 단어를 조금은 더 쉽게 외울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을 통해 몇 가지 재미있는 질문에 대답을 하도록 했다. 가장 중요한 한국어 문장인 "안녕하세요?"를 가르쳐주며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 다섯 명과 함께 한국어로 인사를 하도록 하니 수업 분위기가 더 활기차졌다. 첫 수업의 후반부에서는 아마도 학생들이 가장 궁금해 할 수도 있는 강의 안내가 이루어졌다. 미국의 한 학기는 약 넉 달(16주간)로 구성되는데, 중간에 휴일과 브레이크 기간을 빼면 실질적인 수업은 13~14주간이다. 강의계획서를 통해 수업 교재, 주별 수업내용, 평가 방법 등을 안내했다.
수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출석을 체크했고 이름의 정확한 발음을 확인했다. 두 번째 시간에 학생들의 이름을 큼지막하게 한글로 써서 선사해 줄 계획이었다. 수업을 마칠 때 다시 "한국어! 한국어! 한국어!"를 외쳤다. 오늘 수업 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한국어와 선생님이라는 단어만큼은 습득할 수 있었기를 바랐다. 첫 수업이 끝난 후에도 이틀 후 다시 학생들을 만날 생각에 내 마음속 설렘은 가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