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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호 Jan 31. 2021

정원의 새 물그릇

내가 사랑한 것들 6

6.정원의 새 물그릇     


새들은 겨울을 어떻게 날까?    

 

2005년 영국 유학 시절. 작은 정원이 있는 집을 얻어 살았다. 그야말로 열 평 남짓한 자그마한 정원에는 새모양 조각이 돋을 새김된 작은 돌 그릇이 있었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영국인들의 정원에는 대부분 놓여 있는 새를 위한 물그릇이다. 비가 오면 저절로 물이 찬다. 어느 때고 새들이 들러 물을 마시고 간다. 속 깊은 영국인들의 작은 배려이다. 나는 그 물통에 먹고 남은 밥이나 빵 조각을 부수어서 놓아 주었다. 로빈이나 블랙버드 같은 작은 새들이 와서 먹고 갔다. 어떤 때는 심지어 초록의 앵무새도 날아 왔다. 작은 정원 한켠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이 좋았다.     


새로 얻은 작업실은 이층이라 거실 베란다 창 바로 앞에 나무들이 있다. 그래서 제법 숲 같은 느낌이 든다. 크리스마스 트리같은 전나무와 빨간 단풍나무 너머로 영국 풍의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꽃 피는 봄, 초록이 무성한 여름, 단풍 드는 가을, 눈 내리는 겨울 모두 아름다운 풍경이다. 창밖 구경을 즐기는 우리 고양이 크롱이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영국에서의 추억이 생각나 지난 여름부터 베란다 창문에 틀을 놓고 새 모이 그릇을 두었다. 새가 오면 크롱이도 심심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기대대로 새들은 자주 오지 않았다. 가을이 지나기까지는 거의 손님이 들지 않는 한산한 식당이었다. 불쌍한 크롱이만 베란다에 앉아 하염없이 오지 않는 새들을 기다렸다.  

        

겨울이 되자 안 팔리던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덩치 큰 직박구리, 산비둘기 뿐 아니라 작은 박새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먹이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은 괜찮겠지 하다가 겨울이라 물이 귀할까 혹시 놓아보았더니 대박이다. 물을 먼저 찾는다. 야생의 겨울은 물도 귀하다. 인간이 사는 지역 인근은 더욱 그러하리라.  


눈이 온 뒤의 오늘은 아침부터 식당에 불이 났다. 늘 오던 새들에 이어 새로운 새도 나타났다. 등이 초록색이고 눈에 하얀 테두리가 있는 동박새 커플. 새들은 보통 커플로 온다. 부부 사이인지, 연인인지, 그냥 친구들인지 나는 모른다. 좌우간 꼭 두 마리씩 짝을 지어 온다. 재미있는 건 순서를 지킨다는 거다. 먼저 온 순서대로 차례를 지킨다. 먼저 온 새가 앞 가지에 앉으면 뒤에 온 새는 그 뒷가지에 앉아서 기다린다. 더 뒤에 온 새는 옆 나무에서 기다린다. 가까운 단풍 나무 가지가 최종 교두보이다. 한 놈이 와서 물과 모이를 먹으면 다른 놈은 그 교두보에서 망을 본다. 그 놈까지 먹고 가면 또 다음 조가 온다. 자세히 보니 모이를 물고 간 놈들은 전나무 속으로 모여서 먹는다. 뷔페 접시를 들고 가 자리에 앉아 먹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한 시간을 넘게 그런 부산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크롱이가 몸을 부르르 떠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내면 나는 새가 온 것을 안다. 새들은 크롱이가 지키고 있어도 '개 무시' 아니 '고양이 무시'를 한다. 창문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아는 만큼은 똑똑하다. 안달이 난 크롱이만 '에에엥'하는 소리를 내며 발버둥친다.

     


단지 물과 빵부스러기들만 주었을 뿐인데 풍경이 풍요로워졌다. 고양이도 심심할 겨를이 없다. 게다가 새들이 겨울을 어떻게 날까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덜 하게 된다.  그야말로 일석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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