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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호 Feb 05. 2021

거대 로봇 로망

내가 사랑한 것들 7

7. 번개맨 - 거대 로봇에 대한 로망


나에게 유년의 내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걸 발견하고 종종 놀랄 때가 있다. 



바닷가 근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는 나고 자랐다. 쉽지 않은 형편인데도 어머니는 <새소년>과 <소년 중앙> 같은 어린이 잡지를 매달 사주셨다. 미스테리한 세계, 공룡, 이집트의 피라미드, 마야, 잉카 등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당콩당 뛰어오르는 매력적인 세계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언젠가는 그 미지의 세계들을 탐험하리라. 볼 거라곤 산과 들과 바다 밖에 없던 시골에서, 어린 나는 그런 꿈을 꾸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문명과 문자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공룡에 관한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이런 어린 시절의 무의식이 있지 않았을까?


또한, 나는 우리 시대의 여느 아이들 못지 않게 거대 로봇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스케치북에 되지 않는 거대 로봇의 설계도를 그리고 태권브이와 마징가 제트를 비교 분석했다. 당시의 나는 그림에 제법 소질(?)을 보였었는데, 옆집 동생이 내 그림의 애호가이자 컬렉터였다. 그때 우리 둘은 커서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나 거대 로봇을 조종하는 조종사가 될 꿈을 꾸면서 신나게 스케치북을 어지럽히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지만, 내 그림을 사랑했던 옆집 동생은 프랑스에 가서 재불 아티스트가 되었다. 운명은 소름끼치도록 놀라울 때가 있다. 



영화 <점박이 2>가 끝나고 어쩌다 보니, 번개맨을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나는 이왕 만드는 김에 새로운 번개맨을 만들고 싶었다. 유아용 번개맨에서 나아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히어로를 창조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마블의 히어로 무비와 같은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꿈을 꾼 거다. 수퍼바이저들과 나는 의기투합해 이 새로운 번개맨 영화에 거대 로봇을 등장시키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로봇을 좋아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들이었고, 지금도 거기서 더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서 그럴까? 번개맨은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저예산의 영화였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로봇의 비쥬얼, 액션 시퀀스, 연출 등에 우리의 깊은 애정과 땀이 녹아들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놀라운 속도로 빨리 만들어졌다. 전체 제작기간이 2년 남짓이었는데, 전작이 4년씩 걸린 걸 생각하면 나로서는 경이적일 정도이다. 픽사나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들도 보통 제작기간이 평균 5년씩은 걸린다. 게다가 만드는데 어떤 영화보다도 스트레스가 적었다. 각 스탭들이 자발적으로 해주어서, 나는 많은 걸 맡길 수 있었다. 전작들을 만들 때의 느낌이 무거운 짐을 지고 한 발 한 발 높은 산을 올라가는 거라면, 이번 작품에선 가벼운 차림으로 경쾌하게 숲길을 산책하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왕가위 감독의 회고가 생각났다. 그는 몇 년간 사막에서 영화 <동사서독>을 촬영하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영화가 진행이 안 되고 질척거리던 때에, 잠깐 틈을 내어 만든 영화가 <중경삼림>이라는 소품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만들어진 그 영화는 감독의 기분만큼이나 경쾌하고 유쾌하다. <번개맨 더 비기닝>을 만들 때의 느낌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잘 나왔다. 작년 10월 부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BIAF)에 장편 경쟁작으로 뽑힐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극장은 이미 암흑기에 접어 들어있었다. 우리는 다 만든 영화를 들고 언제일지 모르는 개봉을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전작 <점박이 2>가 작품은 좋았지만, 여러가지 내외적인 상황으로 흥행은 좋지 못해 마음이 아렸었다. 한 영화를 만드는데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명의 스탭들이 참가한다. 감독으로서는 그들의 노력에 합당한 결과로 보상받게 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결과가 나오면 상당히 낙담하게 된다. 우울감과 자책감에 휩싸인다. 번개맨까지 개봉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 연거푸 겹치자 이제는 나의 불운 탓인가 하는 씁쓸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럴 때 여러 곳에서 코로나로 고생하고 있을 사람들이 생각났다. 엄혹한 상황에서 하루 하루 버텨가는 수많은 영화인들. 극장과 공연에 종사하는 사람들. 수많은 자영업자들. 내가 아프니까 아픈 남들이 보인다. 연민은 역시 나로부터 시작하는 모양이다. 


아직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번개맨>이 극장에 걸리고 스크린에서 우리가 만든 거대 로봇이 움직이는 꿈을 꾼다. 역시 아직 나는 다 자라지 않은 아이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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