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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세기 소년 Feb 07. 2021

#모두의 4차 산업혁명 : 35교시

거대사를 통괄하는 산업혁명 클래스

#41. 너를 만났다           

                                  

 ‘아재’ 입장에서 조금 창피한 이야기입니다만, 벌써 작년 이맘때인가봐요. TV를 보다 펑펑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MBC에서 VR휴먼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방영된 '너를 만났다'를 본 것인데요. 4년 전,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강나연 양과(향년 7세) 어머니 장지성 씨가 가상현실 세계에서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러닝타임은 52분이지만 실제 촬영에는 6개월이 걸렸고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데 1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감기인 줄 알고 찾았던 병원에서 셋째 딸 나연이는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았고, 한 달 만에 눈을 감았다고 하지요. 이별 뒤에도 엄마는 나연이의 존재를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이 나옵니다. 블로그에 아이를 그리워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몸에는 나연이의 이름과 생일을 새겼더랬죠. 아이 뼛가루를 넣은 목걸이도 늘 착용하고 다녔습니다. '어떻게라도 한 번 보고 싶다'라는 엄마의 바람을 위해 제작진은 작업에 착수합니다.    


[너를 만났다 / ⓒ MBC]


 나연이의 생전 모습을 담기 위해 모션 캡처, AI음성인식, 딥 러닝 등 다양한 최신 기술을 사용해 나연이의 얼굴과 몸, 표정, 목소리를 구현해서 가상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갑니다. 남겨진 사진과 동영상 속의 나연이의 몸짓, 목소리, 말투 등이 재료로 활용됐습니다. 이후 비슷한 나이대의 대역 모델을 통해 VR 속 모델의 기본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나연이의 목소리는 몇 개 없는 동영상 속 나연이의 실제 목소리를 토대로 했습니다. 부족한 데이터는 5명의 또래 아이 목소리를 더빙하여 딥 러닝을 통해 채웠다고 합니다. 제작 과정은 자료 수집부터 완성까지 총 7개월이 넘게 걸렸다고 하죠.


 관련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유튜브 영상은 일 기준 조회 수 1,300만회를 넘길 정도로 관심을 모았고, 전 세계 시청자의 댓글 19,000여개가 올라왔습니다. “떠난 아이를 나도 만나고 싶다. 제발 VR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 “기술의 가능성에 놀랐다”, “대중화됐으면 좋겠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가상현실 속 만남에 우려를 표하는 글도 볼 수 있었는데요. “천국인지 지옥인지 모르겠다”라는 내용부터 “만남 이후 더 큰 슬픔과 허망함에 빠질까봐 걱정이 된다”며 후유증을 걱정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VR로 나연이를 구현한 비브스튜디오 제작팀 역시 이 부분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완성 이후에도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 역시 친구와 대화중 이런 기술이 새로운 애도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데에는 동의를 이뤘지만 어떤 맥락에서 이런 기술을 사용해 고인을 만나야 하는지, 그럴 필요가 없는지 합치에 이르지 못했는데요. 죽은 이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과 다시 봄으로 인해 계속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의 관점 차이는 상당히 크죠. 또 심리적 장애를 일으킬 문제도 있어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겠습니다. 2021년이 된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너를 만났다'가 시리즈 화 되어 계속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너를 만났다, 로망스' 등 방영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영국 ‘더 웨이백(The wayback)’은 시험판으로 치매환자들을 위해 1953년 6월 있었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재현했습니다. VR을 통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 머릿속 깊숙한 곳 기억을 떠올리는 식이지요.    


[ⓒ spot message]


 심리 치료 영역은 아니지만 떠난 고인과 남은 가족을 연결해주는 가상현실 기술도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일본 기업 양심석재는 ‘스팟메시지(Spot message)’라는 AR 기술을 통해 묘지 비석에 고인의 사진이 나타나게 하는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지요.


 결론적으로 ‘너를 만났다’의 시도는 참신했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용된 기술 라인업의 화려함에 비해 나연이의 실제감은 다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어색한 3D와 모션 그래픽, 햅틱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글러브 등은 개선해야 할 여지도 남겨주었지요. 방송국 제작비와 마감 시간 등 그 현장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닌 저로서는 참신한 시도만으로도 큰 박수를 주고 싶습니다. 또한 이 역시 저는 기술 발전이 해결해줄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인공지능 수준에 닿을 때까지 여러 기술적 요인이 맞아떨어지는 시기적 동시성이라는 행운이 작용했지요. AR·VR 기술 역시 다른 실감 기술이 함께 발전하면서 조만간 진짜 같은 가상 세계, 진짜 같은 가상 인물의 구현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020년 CES에서 삼성전자는 인공지능 프로젝트 ‘네온(Neon)’을 발표했는데요, 인공지능을 넘은 ‘인공인간’의 구현을 보여줬습니다. 누가 사람인지, 인공지능 구현물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한 사실성을 구현하며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앱 스토어에서 다양한 앱 다운로드 받는 것처럼 취향에 맞는 인공인간을 다운로드 받아 언제 어디서든 인간처럼 소통하고 배우고 하는 모습들이 구현될 것이고 그리 먼 미래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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