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을 계속해도 시차 적응은 전혀 안된다
어제 인천 비행을 다녀와 아침에 랜딩 해 크루 버스에서 너무 졸려 헤드뱅잉을 하다 숙소에 꼴까닥 도착했다. 정말 졸려 겨우 냉장고에 넣을 식품들만 넣고 샤워하고 바로 뻗었다. 다음 날 보니 두부는 깜빡하고 안 넣었다. 엄격한 사무장님 때문인지 한국인 크루들과 일하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유독 더 피곤한 인천 비행이었다.
심지어 신혼부부가 있었는데 특별히 추가로 챙겨 줄 여유도 없을 정도로 피곤하고 랜딩 전에 아침식사 때는 너무 바빠 수박주스를 5개월 임신한 미국인 아내에게 쏟았다. 깜짝 놀랐는데 오히려 괜찮다며 상쾌하고 향기 좋다고 심지어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 수박주스를 좋아할 것 같다며. 미안한 마음이 큰 나에게 오히려 따뜻한 농담까지 하며 더 스윗하게 하는 승객에 감동이었다. 일본 도쿄, 오사카, 교토를 여행했고 도하를 경유해 브루클린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수박주스 때문에 아이도 깜짝 놀랐겠지만 건강히 순산하시길 기원한다.
푹 자고 일어나 한국에서 부모님이 싸 주신 음식들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또 쉬었다. 다음 날 아침 카타르항공에서 제공하는 크루들이 진행하는 운동 수업들을 들었다. 댄스, 설큣, 스핀 세 수업들을 들었다. 최근 비행을 같이 했던 필리핀 크루를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분명 비행 중 내가 요가 동작들을 가르쳐 줬던 건 기억나는데. 우리 센프란 같이 했었지? 아니 마닐라 같이 했었잖아!
비행하며 기억력이 정말 감퇴된다. 큐록에서 아는 크루들을 만나면. 어디 다녀왔어? 하면 눈부터 돌아간다. 음 어디였지. 내가 어디 비행 다녀왔지. 하며 아! 하고 생각나 말한다. 바로 다녀온 비행도 가물가물하고 잊히지만 어떤 크루들의 얼굴과 느낌은 기억에 남는다. 같이 설큣을 듣고 짐에 가서 추가 운동을 하고 스핀까지 듣고 가라고 해서 같이 수업을 또 들었다. 오늘 운동은 이거로 충분했다. 그 필리핀 친구는 자쿠지에 사우나까지 추가로 간 후에 샤워를 한다고 했다. 난 바로 샤워와 빨래를 하고 늦은 점심이자 이른 저녁을 챙겨 먹었다.
3월 한 달간 요가와 인도에 집중하며 4월 비행 스케줄을 비딩하는 것을 완벽하게 잊었다. 4월에 카타르로 복귀 후 비행 트레이닝을 받았다. 트레이닝이 끝난 후 토론토, 샌프란시스코 비행으로 4월을 마무리하고 5월에 마닐라와 인천을 다녀왔다. 제네바와 카트만두 비행을 앞두고 있다.
YZZ
토론토 비행은 스탠바이에서 불렸는데 운이 좋게도 데이오프를 낀 긴 레이오버였다. 크루들과 차를 렌트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왔다. 월마트에서 장을 보고 이틀 연속 아침에 헬스장을 갔다.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 근처 공원에서 머리서기를 해 보았다. 인도 가기 전까지 요가를 십 년 수련했는데도 오래도록 못하던 자세이다.
SFO
샌프란시스코는 12년 만에 돌아갔다. 어떤 할머니 승객이 자기도 요가를 한다며 라스베이거스 집에 초대를 해 주셨지만 짧은 레이오버에 가기엔 너무 멀었다. 긴 비행에 비해 짧은 하루라는 레이오버라 쉬고만 와야지 했는데 랜딩하고 씻고 바로 혼자 나가 거닐며 추억을 회상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이버 시큐리티 행사가 열렸다. 지나가다 사이버 시큐리티 관련 일을 하는 승객을 우연히 만났다. 승객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사이버 시큐리티 네트워킹 중이었다. 저녁에 체인스모커가 오는 이벤트에 초대를 해 주셨지만 너무 피곤해 잠을 택했다.
다음 날 아침엔 헬스 후 대학교 친구를 만나 아침을 먹고 이탈리아 타운에서 젤라토를 먹고 트레이더조에서 장을 보고 돌아왔다. 자율 운전 차량인 웨이모도 타고 리프트로는 테슬라 사이버트럭도 타 보았다.(웨이모, 리프트는 카카오택시 같은 택시 앱) 베이 에리아에 살며 미국 교환학생을 보냈던 기억에 비행을 오니 참 마음이 이상했다. 샌프란 비행 후 카타르에 랜딩 하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바로 친구의 웨딩을 갔다. 꽤나 길게 세 시간을 춤을 추고 저녁 뷔페를 먹어 졸려 죽는 줄 알았다.
MNL
스탠바이에서 바뀐 마닐라 비행이다. 바로 팜에게 연락했다. 지난주에 한국에 학술회를 온다고 한국이면 보자고 했는데 카타르였다. 보고 싶었는데 못 봐 아쉬웠는데 이렇게 바로 비행이 나오다니.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와 유전공학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인데 10년 만에 만났다. 팜의 남편도 함께. 저녁으로 필리핀 온갖 음식들을 다 대접받는 바람에 인도 다녀온 후 이어가던 채식이 깨졌다. 심지어 스픽이지 바를 가서 맛있는 칵테일 한 잔을 하고 또 한 잔을 하며 금주도 깨졌다. 팜은 공부를 이어가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다. 의학 공부를 이어 갔다면 마찬가지로 갔을 길이지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의사가 아닌 항상 승무원이었다. 필리핀 돌아오는 비행 전통은 필리핀 크루들은 각자 나눠먹을 간식들을 싸 오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비행 필리핀 음식 파티였다.
비행하며 구름같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정말 많은데 많이 지나가고 없어지기도 한다. 지금 이 비행들도 이렇게 기록하지 않는다면 아마 가물가물해질 수도 있다. 항상 확실히 기억에 남는 건 자연과 연결되었을 때, 보고 싶었던 친구를 만났을 때이다.
다음 제네바 비행은 17시간의 짧은 레이오버이다. 게다가 어세스로 잡혔다. 3개월에 한 번씩 평가 비행이 있어 공부를 해야 한다. 아시아를 다녀오면 유독 시차가 뒤바뀌어 밤에 잠이 안 온다. 자려고 누웠다 잠이 안 와 깜깜한 카타르의 새벽에 한국의 아침 시간에 글을 적어 본다.
비행하며 심각하게 피로함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어떤 열악한 상황에도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인식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삶 자체가 엄청난 정신수련이다. 어떻게 이 불규칙한 삶 속에서 균형을 찾고 건강한 삶을 살지는 매 순간 하는 고민과 노력이다.
싯다르타 책을 읽고 작두콩 차를 마시며 다시 잠을 청해보도록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