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미 Jan 14. 2024

경찰관님을 죽여도 되나요?

경찰관들이 만나는 주요 고객들 2

경찰 부부는 퇴근 후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남편도 나도 자세한 사건 이야기는 잘하질 않는다.

여느 직장인처럼 강압적이고 불합리한 상사, 얄미운 동료 때문에 열받았던 이야기를 하든가

일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날은 맥주 한잔을 마시며 털어버리는 게 스트레스를 푸는 한 방법이다.     


우연히 남편의 첫 출근, 첫 112 신고를 나갔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경찰관이 꿈이었던 남편은 중앙경찰학교 교육을 마치고 지구대로 발령받아 온 근무 첫날,

의욕이 넘쳐 있었고 설레기까지 했다고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첫 112 신고를 기다렸고

드디어 112 상황실에서 지령이 내려왔다.


인체실험을 하는 병원이 있다는 112 신고가 있으니 출동해서 확인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신고 장소는 지역의 00 병원이었다. 남편은 병원에 도착하자마 신고자를 찾았고,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을 보자마자 신고자는 강시처럼 손을 앞으로 뻗은 채

재빠르게 남편이 있는 쪽으로 왔다고 했다.

얼굴에 까만 땟국물이 흐르고 머리는 사방으로 뻗쳐 있으며 구멍 난 옷을 입은 신고자는

초짜인 남편이 보기에도 노숙자임을 한눈에 알았다. 가까이 가자 술냄새도 진동했다.

남편: "인체실험을 당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신고자: "내가 인체실험 당했다니까!!

(자신의 손을 가리키며) 봐보라고 이게 인체실험을 했다는 증거라고!"

밴드로 감긴 손마디를 보여주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있었던 병원 관계자에게 남편은 물었다.

”이 분이 인체실험을 당했다는데 그게 사실이에요? “

유니폼을 입은 병원 간호사는 ”그게 맞겠어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신고자는 손가락 타박상 치료와 수액을 맞았으며 치료비를 내지 않아 병원에서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112 신고를 하였다고 했다.


남편은 이런 사람들이 다 있구나 싶어 신기해하며 지구대로 복귀하였는데 이어진 2번째 112 신고는

방금 전 다녀왔던 병원 옆에 위치한 정신병원이었다.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112 신고로 순찰차는 00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의 사수 주임님은 정신병원에서 가끔 접수되는 신고이긴 하나 혹시 모르니 긴장하자고 하셨다.

병원에 입원 중인 신고자는 병원 로비에 있는 한 모자를 가리켰다. 남편과 경위님은 60대 중년 여성과 30대 남성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청년: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요."

남편: "사람을 죽이면 안 되죠!"

청년: "사람을 왜 죽이면 안 되죠? 날 열받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죽이고 싶은데"

남편: "열받는다고 사람을 죽이면 안 되죠"

청년: "경찰관님을 죽여도 되나요?"
남편: "날 왜 죽여요~ 나 오늘 첫 출근했는데..."

청년: "그럼 오래 출근한 사람은 죽여도 되나요?"


옆에서 보면 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어이없을지도 모르겠다. 112 신고를 받으면 무조건 출동해서 확인을 해봐야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청년 옆에 계신 어머니와 대화해 보니 오늘 약을 먹지 않아서 그렇다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셨고

보호자분께 치료를 잘 받고 약을 잘 먹을 수 있게끔 부탁드린다고 하고 타인이 봤을 때는 이런 말들이

두려움을 느낄 수 있어 신고가 될 수 있음을 안내하고 지구대로 복귀하였다.   


남편은 교육을 받으면서 상상한 강하고 멋진 경찰관의 모습이 아니라 약간의 실망감도 들었다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경찰관이 나타나면 상대악역들은 두려워하고 경찰관의 멋진 액션으로 그들을 제압한다.

현실은 달랐다. 2건의 112 신고를 처리하고 나니 처음 보는 상황이고 신기하긴 했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겠구나 직감했고 실제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고객들은 자주 만나게 되었다.


내가 근무했던 곳에서도 누군가 자신을 감시한다  온갖 사이트에서  날 해킹한다 하지만 아무도 날 믿지

않으니 도움을 줄 수 있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하셨던 분께 혹시 성함이나 연락처를 알려주신다면

더 도움을 드릴 수 있겠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자신의 신상을 밝히는 것은 거절하셨다.


정신질환에 대해서 안 좋은 인식 대신 몸이 아픈 것과 마찬가지로 그분들도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본다. 이런 신고 중 일부는 치료를 바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안타까움이 컸다.


정신병원에 바로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고 경찰관도 동행하려 하는데 막상 지역 내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이 부족해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역사회 내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적극적 지속적 치료체계가 확립돼서 그들도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처음 누군가의 엉덩이를 닦아줬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