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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미 Feb 20. 2024

핸드폰 요금은 좀 주시겠어요!?

가연이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오랜 전 학교폭력 업무를 맡아서 일할 때였다.


어느 날 A중학교 학생부장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경찰관님 혹시 가연(가명)이를 아세요?

학교에서는 특별한 문제는 없는데 가출을 자주 해서 학교에 안 와요. 한번 만나 주실 수 있으세요? "


청소년 가출은 집을 나가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나쁜 어른들의 세계를 만나 범죄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 '관심'을 가지면 위험한 외나무다리 대신 안전한 길로 안내할 수 있다.

바쁘더라도 이런 학생들은 꼭 만나보려고 한다.


여청수사 팀에서 가출 7일 만에 가연이를 찾았다.

흔히 생각하는 가출 청소년의 모습이 아니다.

조용하고 얌전한 모습의 학생이었다. 조금 말이 어눌하다 싶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청각장애가 있다고 했다.


가출 기간에 어디 있었나?

가출을 했나?

물으니 들릴 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친구 집에 있었다고 했다. 계속 물어봐도 가출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답을 하지 않는다.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경찰관님이 지켜보겠다고 학교 잘 다니라는 말로

그날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그러고 한 3~4일쯤 지났을까? 

이번엔 가연이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경찰관님 저 지금 가연이 집 앞이에요. 가연이 할아버지가 문을 안 열어주셔서 아이가 집에 못 들어간다고 해서 는데 할아버지가 문을 안 열어주셔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연락드렸어요."


가연이가 문을 계속 두드리고 열어달라고 하는 소리에 빌라주민이 112 신고를 해서 지구대 직원들도 출동했다. 가연이 할아버지는 손녀의 늦은 귀가와 잦은 가출에 이골이 나서 집 열쇠는 줄 수 없으며 통금시간까지 들어오지 않았으니

절대 문을 열여주지 않으실 거라고 했다.


팀장님께 보고를 드렸다. 팀장님의 설득으로 문은 열렸고 가연이가 집에 들어가면서 일단락되었다.


그 이후 몇 번이나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문제로 다른 경찰관님과 함께 밤 11시 밤 12시에도 가연이가 사는 빌라에 갔다. 그 당시 자취했던 나는 본가보다 가연이 집에 더 자주 갔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작심을 하고 팀장님과 함께 가연이 집에 찾아갔다. 가연이에게 집 열쇠를 주실 것을 할아버지께 요청드렸다. 어쨌든 아이는 집에 들어갈 수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우리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으시곤 할아버지는 가연이의 방을 가리켰다.

경찰관님이라면 이런 애랑 같이 살 수 있겠냐며 소리를 치셨다. 전에 열쇠를 준 적 있는데 친구를 데려와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믿을 수 없다고 하셨다.


방문을 열자 그냥 쓰레기 더미였다. 널브러진 이불을 들쳐 올리니 라면 먹은 냄비와 과자봉지들이 섞여있었고 옷과 화장품이 방바닥에 마구 흩어져 있었다.


더러운 것도 더러운 것이나 낡은 옷들이 마음에 걸렸다. 

중학생이면 브래지어 속옷이 필요한데 겨우 두어 벌 보이는데 그마저도 브래지어 캡이 뒤틀려 있고 속옷끈이 꼬여서 망가져 있었다. 정말 화가 났다


도대체 가연이 부모는 뭐 하는 사람들일까?

아니 어떤 인간들일까?


가연이의 친부모는 10대 때 아이를 낳은 고딩엄빠였다.

가연이가 아기 때 이혼한 후 친모는 연락이 끊겼고

가연이 아빠도 재혼을 해서 다른 지역에서 산다고 했다.

친부모는 당연하게도(?) 어떠한 양육비도 주지 않고

가연이의 양육은 오로지 연로하신 할아버지의 몫이 돼버렸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가연이의 핸드폰 요금이 미납 것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길래 아이를 방치하는지 화가 나서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어떻게 아이 생활에 필요한 돈을 하나도 주지 않는지? 

아이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는 않은지?

그러고도 입으로는 먹을게 넘어가는지?

아차차! 그래 이런 인신공격적인 말을 하면 안 되지~

마음을 차분이 가라앉히고 당장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고민했다.


가연이의 용돈과 핸드폰요금 미납, 보청기 고장 등을 이야기했을 때 연이 친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으레 내가 경찰서에서 만나는 고객들의 반응은

"네가 뭔데 지랄이야?  해보려면 해보던가 씨xx(욕설)"

이런 식이라 상대의 예상하는 반응에 대응할 말을

여러 번 입으로 되뇌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가연이 아빠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00 경찰서 청소년 범죄 담당하는 경찰관입니다. 가연이 일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자주 가출하는 것 알고 계시나요? 어른들의 보호가 필요한데 1차적 보호인 가정의 보호를 못 받고 있어요.

여학생인데 속옷이 없고요. 핸드폰 요금 미납에 보청기도 고장 났어요.

일단 핸드폰 요금 좀 주시겠어요?

위급시 연락할 수단은 있어야 하잖아요?"


욕이 날아오거나 항의할 것을 예상했는데

오! 상대방은 가만히 듣는다. 가연이 아빠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생각보다 조용한 음성이었다.


 나중에 가연이에게 물어보니 아빠가 미납요금을 보내줬다고 했다. 용돈도 주었냐고 하니까 주지 않았다고 한다. 뭐 원래 그래본 적 없으니 괜찮다고 했다. 제일 급한 것은 보청기라서  학교선생님, 복지사 선생님 또 부서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논의해 보니 마침 선도심사위원회 지역위원이 보청기를 판매하는 사장님이셔서 가연이 보청기를 무료로 해주시로 했다.


낡은 속옷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속옷을 사주겠다고 하니 한사코 거절한다. 혹시나 민감한 여학생인데 마음이 상할까 싶어 다른 제안을 했다.

전에 만났을 때 더운 여름 날씨에 맞지 않게 두꺼운 옷을 은 모습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럼 경찰관님이 반팔티 하나 사주는 건 괜찮아?"

"네..."

대답이 시원치 않지만 이 정도면 암묵적 동의다.


내가 쉬는 날 시내에서 만나 가연이가 좋아하는

밀크버블티도 마시고 시내 옷가게를 쇼핑했다. 티셔츠를 사고 청바지도 하나 사주었다.

라포가 형성되었을 거라는 조그마한 기대도 있었는데

이 날 이후 일주일쯤 지났을까?


학생부장 선생님으로부터 가연이가 또 가출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일 뒤에 돌아오긴 했지만 어디에서 있었는지는 자세히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몇 번의 가출과 잦은 결석으로 학교 선생님들은 졸업여부와 고등학교 진학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정말 다행히도 지역의 OO 고를 진학했고 졸업식에서도 가연이를 만나 축하해 줬다.


겨울옷이 없는 가연이를 위해 팀장님은 사비를 털어 졸업선물로 패딩을 사주셨다.이제는 잘 다니려니 안심 했고 나도 다른 업무를 하게 되면서 가연이를 잠시 잊었다. 


결혼을 하고 다른 지역으로 발령 받아서 바쁘게 지내는데 갑자기 가연이가 생각이 났다.

A중학교 도움반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결국 할아버지와의 갈등이 커져서 다른 지역의 쉼터로 가게 되고 고등학교도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쉼터의 연락처를 받아 가연이와 몇 번의 안부 인사도 하고 내가 사는 지역으로 놀러 오라고도 했는데 결국 연락이 끊겼다.


지금 가연이는 어떻게 지낼까?


관심을 가진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결국은 어른들의 시각에서 다그치기만

한 건 아닐지 지금은 성인이 되었을 가연이가 야무지게 자신만의 미래를 잘 그려나가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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