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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퍼즐도사 Jun 20. 2023

부모님과 손절 그 후, 1년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작년 딱 이맘때쯤 부모님과의 정서적 연을 끊었다. 집안일에 관련된 필수적인 대화 말고는 일체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내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3년 넘게 지속된 부모님의 이혼 소송으로 피폐해진 나를 살리려는 몸부림이었다. 


작년 어버이날

날이 날이었던지라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더라. 연락을 끊기로 결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인데 그새 부모님이 잘 지내고 계신가 궁금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부모님을 손절한 건 나도 처음이었으니까.. 어버이날 핑계로 오랜만에 안부차 연락을 할까 했지만 당시 부모님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어서, 미운 마음에 이내 카톡 창을 닫았다. 


그렇게 작년 어버이날엔 그 흔한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오기를 부렸다. 어버이날에 자식한테 문자 한 통도 못 받는 부모님을 상상하며 통쾌함을 느끼려 했다. 그 뒤로도 부모님 생각이 날 때마다 나는 그 마음을 외면했다. 그냥 손절이 아니라 마음먹고 적극적으로 부모님을 미워하기로 결심한 듯이.  


엄마가 코로나에 걸려 몇 주를 앓아누웠을 때도.

아빠가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몇십 년 동안 충성을 다해 일해온 직원들을 내보낼 때도.


나는 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렇게라도 날 아프게 한만큼 부모님도 아프시길 바랐다. 지금 보면 참 못된 마음이었지. 


미운 마음을 꽉꽉 담아 부모님을 외면하면서 느낀 통쾌함은 얼마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애증의 관계를 이어온 연인과 이별했을 때의 과정과 흡사한 경험이었다. 처음은 자유롭고 속 시원했지만, 이내 그 관계 속에서 보였던 나의 추한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 조차도 여유가 없어 자기중심적인 상태였으면서 부모님께는 이혼 소송 중에도 주변을 살피는 여유롭고 성숙한 모습을 지나치게 기대했던 모습. 부모님이 내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과하게 분노를 했던 점. 부모님이 그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나를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이혼 소송의 일들로 그들의 노력을 깡그리 폄하했던 것. 굉장히 이기적이고 못된 마음이었음을 이젠 인정한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거리를 둬보니 비로소 보이던 나의 추한 모습이었다. 


이번 어버이날

거리 두기를 하는 동안 부모님도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생각을 하셨던 것인지, 얼굴과 말투만 봐도 부모님이 많은 것을 내려놓으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혼 소송으로 더 이상 나에게 자식 이상의 과분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조금씩 부모님과의 정서적 교류가 다시 시작됐다. 나도 부모님을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두고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자신을 돌아보셨던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 감사함에 이번 어버이날은 챙겨드리고 싶었다. 부모님과 미리 약속을 잡아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해 드리며 (당연히 엄마 따로, 아빠 따로) 작년엔 못 챙겨드려 죄송한 마음에 꽃과 선물도 드렸다. 부모님은 현재 백수인 나의 지갑 사정을 지레 걱정하며 뭐 이렇게까지 준비했냐고 하셨는데, 엄청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훤해 귀엽기까지 했다. 화기애애한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가서 1년 치 수다를 떠는 와중에 부모님이 연신 꽃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고맙다는 말을 하신다.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과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내가 부모님과 보낸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지 않나 싶다. 이제야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대화를 하는 느낌.  


사실 인간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60이 넘은 나이에도 자식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셨던 것 같다. 참으로 감사하고 부모님이 처음으로 멋있다고까지 생각했다. 내가 60대에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변화하려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한때 정말 미웠던 존재들이 이젠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1년 전만 해도 상상치도 못할 상황이다. 이래서 역시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나보다.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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