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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퍼즐도사 Jan 06. 2022

내 마음대로 기질&성격검사 (TCI) 결과 해석해보기

겁 없고 자유분방한 영혼, 게으른 ENTJ, 나야 나

5년 만에 종합심리검사*를 다시 받았다.

종합심리검사, 일명 풀배터리라고 불리는 이 검사는 정서적, 인지적, 심리적 등의 다양한 면에서의 상태를 임상적으로 검증된 도구이다. 검사 결과를 통해 우리의 성격과 기질, 그리고 정신적 상태를 확인해볼 수 있다. 풀배터리는 보통 7개 정도의 하위 검사들로 구성되며 3시간 정도 소요된다.


한국에 돌아와 4년 넘게 지내면서 난 잘 적응 중인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검사를 받았다. 심리학 전공자로서 대학원 때 과제로 동기들과 이 검사를 서로에게 해본 적만 있지 전문가가 해주는 검사를 받는 것은 사실 처음이다.  


전반적인 결과 내용은 5년 전 검사 결과와 비슷하다. 현재 임상적으로 우려될 만한 것은 없으며 안정적인 정서와 높은 자존감이 보이는 결과였다. 독립적이고 모험을 즐기는 성향, 지적 호기심이 많고 창의적이고 자기실현적인 면모가 강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다만 반사회적 경향이 좀 있고 반추하는 성향이 있어 스스로 부정적인 정서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보고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검사를 받아봤던 기질 및 성격검사 (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TCI) 결과이다. 이 TCI 검사는 말 그대로 타고난 기질과 성격적 특성을 확인한다. 검사 결과를 통해 그 특성들의 발달 수준과 이에 따른 보완점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내 TCI 결과는 모든 척도에서 표준 편차를 벗어난 수치로 전반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특징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질의 항목은 ‘자극추구(NS)', ‘위험회피(HA)', ‘사회적 민감성(RD)', ‘인내력 (PS)’ 4개로 구성되어 있다. 내 기질 검사 결과는 ‘자극추구’와 ‘사회적 민감성’이 높고 (high) ‘위험회피'에선 낮아 (low) HLH 기질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유형이 건강한 경우, 사람들과의 교류에 있어 재능과 흥미가 있는 ‘열정적’인 기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HLH 유형의 경우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연극성’ 기질을 띤다고 한다. 성격의 성숙도인 SC의 척도가 91점으로 높은 수준의 성숙도를 보이는 나는 건강한 HLH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유형을 이루는 하위 항목들의 결과가 개인적으로 참 흥미롭다. 결과들을 내 방식대로 해석해보자면 나는 ‘겁대가리 없는 자유분방한 영혼’ 그리고 ‘게으른 ENTJ'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겁대가리 없는 자유분방한 영혼 (feat. 절제력)

자극추구
- 탐색적 흥분: 아주 높은 편
- 조금 충동적
- 절제: 높은 편
- 자유분방: 높은 편

위험회피
- 낙천성: 높은 편
-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아주 낮은 편
- 낯선 사람에 대한 수줍음: 아주 낮은 편
- 활기 넘침: 높은 편


내 엄청난 호기심과 자유분방함, 그리고 어느 정도의 충동성이 결과에 잘 반영된 것 같다. 그나마 홀로 유학하는 동안 절제력이 발달돼서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난 진작에 사건/사고에 휘말려 머리 아픈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억제 능력과 사고력이 다 발달하지 않았을 때의 유난스러웠던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러하다.


호기심에 산에 있는 꽃들을  먹어보다가 배탈이 난다던가, 1층짜리 높이의 건물에서 우산을 펼쳐 뛰어내리면 정말 만화에서처럼 안전하게 착지하는지 확인해본다던가, 스테이플러가 손도 뚫고 들어갈  있는지 직접 확인해본다든지 등등. 항상 다치는  아니면 사고 쳤던 나였다. (사실  키우기 힘들어서 내가 유학 가고 싶다고   부모님이 순순히 보내주신  아닌가라는 장난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가장 아찔한 옛 기억은 부처님 오신 날에 줄지어 걷고 있는 무리에게 어디 가냐고 묻는 내 말에 ‘생일 파티하러 간다'라고 말한 아저씨를 따라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처음 보는 곳에서, 부모님 없이, 여러 사람들 속에서 혼자 저녁상을 받아먹고 야무지게 필기구 선물도 챙겼다. 그리고 난 그날 처음 경찰차를 타보며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와서 망정이지, 도대체 왜 그 아저씨를 따라갔는지 원.


유학을 하면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소수 집단에 소속되어 살아야 했던 삶은 나에게 조심성과 대비하는 능력을 가르쳐 주었다. 큰 사고가 나도 피해자가 외국인, 가해자가 내국인이라는 이유로 수사에 힘을 쏟지 않고 방치하는 경찰, 어린 유학생들을 무슨 ATM처럼 생각하며 이용해먹으려는 어른들, 소문 잘 못나면 유학 생활 굉장히 힘들어지는 좁디좁은 유학생 커뮤니티. 미성년자였던 내가 타국에서 홀로 내 안전을 지키며 목표한 학업을 이어나가는 길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각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니 절제력이 안 생기고 배겨? 절제력과 자유분방함을 열심히 저글링했기에 큰 탈 없이 재미있는 유학 생활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게으른 ENTJ (feat. 사회성)

사회적 민감성
- 정서적 감수성: 높은 편
- 정서적 개방성: 아주 높은 편
- 친밀감: 높은 편
- 독립적

인내력
- 근면: 낮은 편
- 끈기: 높은 편
- 성취에 대한 야망: 높은 편
- 완벽주의: 높은 편


호기심이 많으니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 하고 싶은 거 못하면 앓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아침잠도 많고 귀차니즘을 많이 느껴하는 편이기도 하다. 게으름 + 한정적인 시간을 가지고 최대한 많은 일들을 하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시간을 잘 관리하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데에 거의 집착하는 수준으로 관리한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 타면 닫기 버튼 먼저 누르고 내가 가고자 하는 층을 누르기 같은 아주 하찮은 것이라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려고 노력한다. 누가 ENTJ 아니랄까 봐 게으름을 극복하고자 철저한 계산을 기반으로 효율성을 따져 일정을 계획한다. 계산으로 도출된 ‘여유 부려도 될 시간’에 마음껏 게으름을 즐기면서 말이다.



ENTJ의 계획적이고 효율적인 것 이외로 사람들에게 유명한 특징은 불도저, 냉혈한의 이미지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공감 능력이 전무하고 너무 솔직해서 그렇다나. 하지만 나는 심리학을 전공해서 그런 것인지, 주변에 F들이 많아 그간 사회화가 많이 된 것인지 ENTJ 답지 않게 (?) 내 ‘사회적 민감성' 결과는 내 기질 검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로 나왔다. 표준편차 두배를 넘는 엄청난 수치이다. 이를 보고 결과를 보고해주시는 임상심리사님이 내가 평소에 눈치를 많이 보냐고 물었다.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대체로 눈치를 보지 않는다. 남에게 잘 맞춰주는 타입이긴 하지만 내가 하기 싫거나 마음이 불편한 것이 있다면 단호히 말하는 편이다. 이 내용과 내가 생각하는 이 결과의 이유에 대해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아마도 장애를 가진 막내 동생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잘 깎아 놓은 밤톨이 마냥 아주 올망졸망 귀엽게 생긴 막내 동생은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나도 동생을 위해서라면 어느 것이든 기꺼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으로부터 막내가 지적 장애를 판정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안 그래도 손이 많이 가던 동생이었는데, 장애 판정 소식 이후로는 동생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된 계기가 됐다. 동생이 필요한 건 없는지, 위험한 상황은 아닌지 등, 무언가 하고 있어도 내 집중의 일정 부분은 항상 막내에게 향해 있었다. 마치 안테나가 켜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동생이 먼저 표현하기도 전에 동생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먼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생활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집 안팎 할 것 없이 항상 이 안테나가 켜져 있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상대방이 필요할 것 같아서 신경 써준 것뿐인데, 어라, 사람들이 날 배려심 있고 센스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어떠한 의도가 있었던 행동들이 아닌데 사람들이 좋게 봐주니 혼자 머쓱할 때도 많았다.


사람들이 내 MBTI라도 물어보면 한껏 더 머쓱해진다. 사람들이 보는 내 ‘사회적 민감성'은 ENTJ 특징과 거리가 굉장히 멀기에. 어떤 사람은 ENTJ의 어떠한 전략 아래 행해지는 배려가 아니냐며 장난처럼 묻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 난 내 MBTI 유형을 말할 때 ‘사회능력이 학습 잘 된 ENTJ’라고 한다.






이번 글에선 종합배터리검사 중 기질 및 성격검사 TCI의 기질 결과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내 생각을 풀어보았다. 보통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내 삶을 돌아보니 꼭 그렇지마는 아닌 것 같다. 자라온 환경과 노력에 의해서도 충분히 발달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선 TCI 결과의 성격적 특성을 확인해보며 이 특성들 뒤에 어떤 히스토리가 있을지 고민하고 나만의 해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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