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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퍼즐도사 Apr 10. 2022

벚꽃 시즌에 나 홀로 데이트

오늘 데이트. 성공적.

벚꽃이 만개한 주말이라 그런지 이번 주말은 어딜 가나 사람 지옥이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출퇴근길에 집 앞에서 마주치는 벚꽃을 감상하는 걸로 올해의 벚꽃 마실을 퉁쳤다.



지난 몇 주간 나는 놀기 바쁜 주말을 보냈다. 지인의 퇴사 파티, 친구들과의 여행, 새로운 사람들과의 친목모임, 집들이 등등 사람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분명히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점점 간절해지기 시작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월요일을 맞이하기 앞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일요일.





원래 계획은 9-10시에 일어나서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려 했다. 하지만 어제까지 집들이한다고 친구들이랑 놀아제끼고, 어제 아침에 빡세게 운동한 게 있어서인지 오늘 아침, 내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오늘은 무리하지 말자-라며 다시 잠을 청했다. 점심 먹으라는 엄마의 호출에 일어날 땐 몸 상태가 그나마 괜찮아진 걸 느꼈다.


점심 먹고 여유 부리면서 문득 창 밖을 봤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집 앞 공원에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 보기 드문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날이 좋아 신났는지 꺄르륵거리며 자기들만의 세계에 심취해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재빨리 이만 닦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집 문을 열고 나왔다. 나올 때까지만 해도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아이들 노는 걸 구경하려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중에 그런 내 모습이 자칫 creepy 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집 앞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볕 좋은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바빠서 완독 하지 못한 책을 꺼내 들었다. 한 삼십 분 읽었을 때쯤인가, 공원에 벚꽃 구경간 사람들 모두 커피 마실 시간인지 카페로 밀려오는 사람들과 소음 때문에 이어폰을 꼈음에도 불구하고 산만해져 독서에 집중하지 못했다. 다 마시지 못한 커피가 담긴 텀블러와 내 짐을 챙겨 집 앞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햇빛 잘 드는 널찍한 창문에 나를 설레게 하는 책이 빼곡한 도서관 책장들을 보니, 진작부터 도서관에 올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을 책을 이미 가져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를 두근거리게 할 책이 있을지 설레며 신간도서가 있는 책장으로 갔다. 그때 내 눈에 꽂힌 책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 호스피스 의사가 수천번의 죽음과 '죽어감'을 통해 삶을 배우게 된 이야기가 실린 책이었다. 그가 전하는 생생한 죽음의 현장 이야기를 보며 몇 번이나 눈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눈물 러시가 있었지만 한 시간 반 동안 그 자리에서 마지막 장까지 정주행 했다.





다양한 임종 이야기를 선보이면서 저자는 그래도 대부분의 죽음의 모습은 비슷하다고 한다. 온갖 부정과 분노, 슬픔 과정 끝에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편안하며 남겨진 사람들은 후회를 경험한다고. 죽음은 결국 타인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라며 이를 잘 수용하고 잘 살려면 자신들만의 삶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와 내 삶의 의미는 뭘까라는 중대한 질문에 한껏 가라앉은 나의 상태는 의외로 그렇게 우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온전히 나 자신과 진솔한 생각을 하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 기세로 어제 잠들기 전에 먹고 싶었던 부추전을 즐기고자 내가 즐겨 찾는 동네 전집으로 이동했다.


'한 명이요'라는 말과 함께 부추전과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전은 자작자작하게 부탁해요-라는 요청과 함께. 오랜만에 마시는 막걸리여서 그런지 첫 잔이 굉장히 달콤하고 시원했다. 그래, 이거지~!

자작자작한 부추전도 내 감성에 기름을 부었다. 이 고요함, 온전히 내가 만든 이 소소한 즐거움이 딱 오늘 내가 원했던 것이었다.





막걸리 한 병에 기분 좋게 취한 나는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아쉬웠다. 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향하던 중,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가 눈에 띄었다. 주말이면 아이들로 항상 북적이던 놀이터였는데 오늘은 다들 벚꽃 구경을 갔는지 놀이터는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항상 출퇴근하면서 '아 저거 재밌는데'며 그냥 지나쳤던 그네.

애들 때문에 양보해야 할 일도 없겠다, 오늘은 나만을 위한 날이겠다, 신나는 마음으로 그네에 내 몸을 얹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우리 아파트 단지 내 만개한 벚꽃과 기분 좋은 바람을 온몸으로 즐기며 그네를 탔다. 얼마 만에 타는 그네인지. 그동안 바쁜 생활로 보지 못했던 하늘도 마음껏 바라보며 그네를 탔다. 오늘은 달마저 예쁘게 빛나고 있네. 한껏 감성에 젖은 채로 한 10분 탔나. 그네를 격렬히 탔는지 오른쪽 에어팟이 떨어졌다.


모래 범벅이 될까 걱정돼서 곧바로 그네에서 내려 떨어진 에어팟을 살폈다.

이내 나의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 혼자 킥킥거렸다.


에어팟은 비싸-라는 이성적인 생각에 한껏 올라온 내 감성이 순식간에 짜게 식어버린 그 장면이 코미디였다.

그리고 이마저 너무 즐거웠다. 나만의 소소하고 즐거운 에피소드. 이를 기록하고자 에어팟에모래를 털고 그네에 다시 앉아 핸드폰을 꺼내 오늘의 일기를 써본다.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을 읽으며 가졌던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 인생의 마지막은 어떻길 바라나-라는 진중한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처럼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은 나에게 행복이자 즐거움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소소한 행복을 꾸준히 모으며 살다 보면 내 삶의 의미도 조만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글을 마쳐본다.



도서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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