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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퍼즐도사 Jul 28. 2022

결국 부모님을 손절했다

아니다. 건강한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하자.

지난 두 달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모님 모두 손절하게 됐다.



손절의 사전적 의미



처음에 떠오른 단어가 손절이라 저 표현을 썼는데 다시 보니 정나미 없는 것 같다. 좀 더 부드럽게 풀어보자면, 부모님과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장 적절한 표현 같다. 지난 글 오만하기 짝이 없었던 자식에서의 다짐에서처럼 부모님을 더 이해해보려 노력하되 부모님이 나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여유를 되찾으실 때까지 기다리려고 내린 선택이다. 그게 나다운 삶을 살면서 부모님과의 관계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뭘 더 한다고 해서 부모님의 이혼 소송이 순조롭게 끝날 것도 아니고, 부모님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이런 거리두기 선언을 부모님께 직접 전했고, 모두 감정이 상하신 듯 하나 어쩔 수 없다. 나는 두 분의 깊어진 감정 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허덕이며 내 인생을 허비할 생각이 없다.







현재 부모님 모두 집에서 나가신 상태고, 방 4개짜리 아파트에는 나와 동생들만 남아 있다.

부모님과는 집 운영(?)에 필요한 일에 대해서만 가끔 대화하고 개인적인 연락은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관계가 생각지도 못할 만큼 너무 편했고, 심지어 자연스럽다고까지 느꼈다. 그동안 내가 부모님께 쏟아붓는 에너지가 얼마나 많았는지 비로소 체감했다. 딸이라면, 큰 자식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니 그 책임이 얼마나 무겁고 부담이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부모님의 갈등도 엄청난 스트레스였지만, 그동안 나를 뒤흔들었던 것은 나와 부모님과의 직접적인 충돌이었다. 이제는 최소한으로 필요한 대화만 하니 부모님과 부딪힐 일도 없다. 그래서 지금 내 삶은, 부모님께는 조금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평온하다.


부모님께 흘러갔던 에너지가 나에게 집중되니 내 삶에 생기가 돌았다. 어떤 노력을 딱히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이러한 상태로 내 에너지가 흐르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고, 나를 설레게 하는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 가며,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돈독하게 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부모님에게서 거리를 두니 새로운 것들로 내 삶이 채워나간 것이다. 거리두기 전까지 나 나름대로 집 밖에서 정신적 풍요를 즐기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을 뛰어넘는 풍요와 활력이라니! 이런 걸 보니 우리 인생도 에너지 보존 법칙을 따르는 것 같다.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에너지는 분명 한정적이고 그 에너지를 우리 삶 곳곳,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다르게 결정되는 것이다.





부모님과 정신적,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장애가 있는 막내 동생을 돌보는 것은 오로지 나의 일이 되었다. 하지만 불만은 없다. 누나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이고, 오랜 유학 생활로 누리지 못했던 동생과의 시간이 생겨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아침잠이 많았던 내가, 막내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강한 습관도 생겼다. 그동안 부모님과 한 집에 살면서 자주 발생하는 말다툼과 냉전이 이젠 없어졌으니 동생도 왠지 편안해진 느낌이다.




편안한 삶도 잠시, 요즘 들어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분명 나는 지금 거리두기로 인해 생기를 되찾고 제일 나답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자꾸 가슴 한구석에선 불효자식이 된 것 같은 마음에 괴로워하는 걸까. 지난 몇 년간 그렇게 부모님을 위해 노력을 했음에도 아직 미련이 남은 걸까?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부모의 바람이니까 내가 내린 선택은 결국 맞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엎치락뒤치락 내 머리를 시끄럽게 한다. 효도가 미덕이고 부모 말이 곧 법인 우리 사회에서 자식들, 특히 장녀들이 자주 겪는 부작용이다.



출처: tvN '알쓸범잡' 방송 화면



그래서 난 요즘 저 부작용을 잘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할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속앓이 하는 것은 부질없기 짝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나를 지배하려고 할 때 더욱 신경 써서 내 삶에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아낄 수 있다. 절약한 에너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투자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가꿔나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소송이 끝나고 부모님이 다시 예전에 내가 알던 부모님으로 돌아올 때, 다시 우리가 소통다운 소통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되찾으실 때, 두 팔 벌려 모두 고생 많았다고 부모님을 힘껏 안아주고 싶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 부모님의 이혼 소송 빨리 끝내기

- 부모님의 폭발적인 감정 잠재우기

- 나에 대한 부모님의 원망 없애기


내가 할 수 있는 것

- 막내 동생 챙기기

- 집안일 하기

- 나 자신과 내 인생 살뜰히 보살피고 가꾸기





부모님과의 관계로 괴로워하는 자식 모두에게 이 글을 통해 모두 고생 많았다고- 응원과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 모두 부모가 아닌 자신이 최우선 되는, 건강하고 주도적인 삶을 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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