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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단이 Feb 22. 2021

<예술하는 습관> - 책 리뷰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기행이 좋은 예술의 밑거름이다.

시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얼굴을 바꿔놓듯이 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적으로 바꿔놓는다. - 버지니아 울프



습관에 집착하는 편이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 이야기처럼 좋은 습관은 더 좋은 나를 만들고, 나쁜 습관은 시나브로 나는 무너뜨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다 하루 늦잠을 자도 혹시나 매일 늦잠을 자는 게 습관이 되진 않을까 불안해하는 편이다. 좋은 습관을 많이 들여서 더 발전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항상 고민한다.


그런 나에게 <예술하는 습관>이라는 책 제목은 참 매력적이었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은 영감이 떠오르고, 그것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퀄리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과 품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함이 참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예술하는 습관'이라는 단어는 참 멋진 표현이다.


책이 시작하기 전에 버지니아 울프의 명언이 적혀있었고, 내 생각과 같았다.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지만, 서서히 바꿔나갈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습관이다. 내가 존경하던 예술인들은 명작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했을까. 그들은 어떤 습관을 통해서 스스로의 삶에서 수많은 예술을 만들어냈을까?






하루의 마지막에는 일기를 쓴다, 엘리너 루스벨트

경제 대공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 미국의 32대 대통령, 플랭클린 D.루스벨트의 영부인이 엘리너 루스벨트이다. 그녀는 영부인으로 시간을 보내며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만의 시간 관리법으로 1936년부터 신문 칼럼 '나의 하루(My days)'를 한 주에 6일씩 쓰기 시작해 거의 26년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를 주6회 쓰는 것도 힘든데,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볼 만한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건 대단한 성과다. 이러한 글쓰기 습관을 위해 그녀가 지켰던 3가지 원칙이 있다.


1.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동요하지 않고 일하는 것

2.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

3.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활동을 할당하는 하루 일정을 정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사전에 계획해 두는 것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기치 못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두어야 한다.


1, 2번 원칙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영부인의 면모가 드러난다. 칼럼을 쓰는 것은 영부인이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엘리너 루스벨트라는 한 명의 작가가 되기 위해 꾸준히 했을 것이다. 당장 눈 앞에 있는 문제에 집중하고, 하나씩 쳐내는 것이 과중한 업무를 놓치지 않고 해나가는 방식이었으리라. 3번 원칙과 마지막 말에서 그녀의 현명함이 돋보인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는 게 가장 몸이 잘 적응한다. 어릴 때 학교에서 계획표 짜는 연습을 시켰던 게 이런 이유 아니었을까 싶다. 또한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니 여유를 조금 두어야 한다.


26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글을 연재하는 대단함 뒤에는 이런 원칙이 있었다. 스스로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켜가면서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주변에서 많은 말들이 있기도 하고, 스스로와 타협하고 싶을 때도 많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지킨 사람만이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다. 하나의 천재적인 작품으로 오랜 시간 사랑 받는 작가도 있지만, 세월을 담은 꾸준함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도 나는 사랑한다.






소설 쓰기가 제일 어려운 소설가, 마거릿 미첼

저는 글을 편하게 쓰지 않아요. 제가 쓴 글에 만족한 적도 없어요. 글쓰기는 힘든 작업이에요. 밤마다 글을 쓰고 또 써도 겨우 두 장을 완성해요. 다음 날 아침에 그 글을 일고 나서 깎아내고 또 깎아내고 나면 겨우 여섯 줄 남죠. 그럼 다시 시작해야 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유일한 작품인 소설가다. 누가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늘 이 책의 제목을 댔지만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게 이런 이유였나보다. 두꺼운 세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한 줄 한 줄의 글이 살아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뒤에 이런 고통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막연히 천재 소설가이고, 일필휘지로 쓴 소설이 아닐까 싶을 만큼 내용 전개와 속도감도 살아있었다.


가끔 이런 작가가 있다. 평생에 걸쳐 명작을 딱 하나 만들어낸 작가. 로마의 트레비 분수를 만든 니콜라 살비도 이런 부류다. 소설계에서는 마거릿 미첼도 그렇다. 창작 활동을 했던 지난 날들을 보면 내놓을 만한 작품이 있었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늘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고, 늘 나보다 빠른 속도로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낮에 만든 것들 밤에 다시 검토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아침까지 고치는 내가 너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세상엔 이런 창작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나보다. 사람의 타고난 성격과 성향을 바꿀 수 없듯이, 표현 방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기행

책을 읽으며 여러 작가들의 삶을 보니 참 다양했다. 연애도 결혼도 작품 활동에 방해된다고 모든 것을 거부한 작가, 결혼하여 아이까지 두었으나 작품 활동을 위해 엄마의 역할을 방임했다고 스스로 말하는 작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수행하면서 훌륭한 작품까지 만들어낸 슈퍼우먼 작가 등등이 있었다. 다들 제각기의 방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담아 작품을 만들었다. 


예술은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것이 아니다. 영감은 시간 맞춰 나타나지도 않고, 나타난 영감이 아무 노력 없이 작품이 되지도 않는다. 무언가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24시간 내내 그 생각만 하고, 항상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영감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예술가들이 지내는 삶의 방식을 보니 정답은 없었다. 누군가는 인생의 모든 시간을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 올인했고, 누군가는 직장인처럼 시간을 정해두고 작업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런 부담감 없이 하고 싶을 때만 하고 싶은 만큼 작업했다.


결국 좋은 작품이 나올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작품을 만들고 있는 예술가 자신조차. 그렇지만 중요한 건 꾸준히 하는 것이다. 하루에, 일주일에, 한 달에 얼만큼의 시간을 쏟았는지는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내려놓지는 않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이 책에 나오는 작가들처럼 대단한 예술가가 되는지에 대한 답은 얻지 못 했다. 그렇지만 꾸준히 예술하는 습관을 들여야 첫 걸음의 시작이다. 


무엇을 만들어도 늘 불안했다. 세상에 좋은 작품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쓸데없는 걸 만들고 있는 거 아닐가? 괜한 자원 낭비만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늘 나를 감쌌다. 책을 읽으며 누구도 같은 방식으로 예술을 만들어내지 않았으니, 그 누구도 같은 작품을 만들지 않았던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실패가 너무 많이 삽입되어버린 것 아닐까 할 때마다 내 인생이 단 하나뿐인 스토리임을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예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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