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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Dec 07. 2023

방콕에 잠시 온 사람

공항에 갈 때마다 마주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


굉장히 즉흥적으로 방콕 한달살이를 결정했다. 지겹고 길었던 이번 여름 내 이별 속에서, 지나간 인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날 가운데에 5개의 연차를 이미 써 놓은 상황에서 나는 뭐라도 해야 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손 놓고 있다가, 하루하루 또 월요일이네 화요일이네 타령을 하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근무하다가 왈칵 다가와버린 연말을 그저 어머나 하고 마주해 버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즈음에 여행을 갈까 했다. 방콕이나 아니면 발리. 발리는 워낙 넓은 탓에 한 곳에 오래 머물기 좋아하는 내 특성상 발리 어디에서 주로 시간을 보낼 것인가 끝끝내 결정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방콕이 될 것이었다. 한 달 살기는, 늘 바래왔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부터 짐을 싸야 하고 어디서부터 준비를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 한 달간 말 그대로 집을 텅 비워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강아지를 맡아 돌봐줄 사람 혹은 업체를 찾아야 하는 부담감들이 복합적으로 다가와 선뜻 결심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10월의 어느 날 동료 중 한 명이 치앙마이로 리모트 워크를 떠났고, 매시각 업데이트 되는 그녀의 sns를 보며 나는 다짜고짜 결심했던 것 같다. 나도 가야겠다고.


장소는 발리가 아니라면 당연히 방콕이었다. 25살, 태국과 베트남을 아울러 한 달 안팎을 여행하며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꼭 다시 방콕 한 달 살이를 하러 오겠다고 다짐했었다. 비록 서른 살까지는 회사에 매여, 그 이후에는 코로나가 발목을 잡아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지만 서른 살이 조금 지난 지금이라도 뭐 어떠냐 하는 것이었다. 마침 그즈음에 해외 거주 중인 여동생이 한국에 한동안 들어오기로 하면서 사실상 가장 큰 고민이었던 강아지의 거취까지 결정되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방콕 한달살이를 결정짓고 특별한 이유 없이 항공권 구매를 망설이다 업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던 어느 아침 홧김에 봐 두었던 항공권까지 충동구매 하면서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한달살이 계획에 마침내 현실적인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머물 숙소를 구하는 것도 꽤나 큰 골칫거리였다. 어떻게 보면 나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방콕 한달살이에 ‘골칫거리’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이 문제로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을 고민했기 때문에 사실상 골칫거리가 맞다.


유튜브에 방콕 한 달 살기를 검색했을 때 주로 나오는 '가성비'를 따지자면 일단 도심에서 벗어나야 했다. 방콕도 나름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어 지상철을 타고 얼마든지 도심까지 접근은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9번의 방콕 여행을 돌아봤을 때 방콕은, 도심을 벗어나면 도심까지 접근이야 용이하지만 대신 도심을 벗어나는 순간 주변에 편의시설이 꽤나 많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도심에 접근까지 시간도 상당히 소요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돈과 시간, 편리함을 맞바꾸는 셈.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스쿰빗 한복판에, 내가 원하는 모든 시설을 갖춘 숙소를 예약했다.


회사에는 리모트 워크를 신청했고, 굉장히 P인 인간이지만 이번만큼은 내 DNA속 모든 J 요소를 끌어모아 나름대로 차곡차곡 준비 끝에 드디어 방콕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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