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자연스레 생각을 할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더 자주 하게 된 것일 뿐,
별로 길지도 않은 내 인생은 항상 그랬다.
고 3때 담임 선생님과의 새학기 첫 상담을 기억한다.
첫 질문은 지망 대학이나 학과도, 성적 관련한 질문도 아니었다.
" 하연이는 힘들거나 고민 있을 때 누구한테 얘기하니? "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이 띵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였다.
힘든 일이나 고민은 애초에 남에게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티 내지 않고 숨겨야 하거나 혼자 해결할 일 아닌가?
그런걸 말해도 되는,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가족? 아니면 친구?"
어느 쪽도 아니었다.
아침에 집을 나가 새벽에 들어왔던 당시에는 엄마와 10분 이상 얼굴 보고 대화할 시간도 없었다.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상적인 대화나 잔소리, 그마저도 나의 짜증으로 끝나버리기 일쑤였다.
학교에서는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뿐.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같이 수업듣고 밥먹고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어울리는 친구들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다. 자연스레 요즘 관심사라던가 (주로 공부 관련한) 고민이나 푸념 등등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학교 밖에서 따로 만나서 놀거나 하는 정도는 아닌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3학년 때는 공부를 핑계로 애초부터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에게 그런 존재가 없었던 것이.
애초에 있었던 적이 있을까?
시작은 내 기억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간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나는 '단짝 친구'를 원했다.
7살때 같은 유치원을 다닌, 내 인생 처음으로 단짝이라 부를 만한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만큼은 아니었나보다.
같은 초등학교를 갔지만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고,그 친구에게는 나와 다른 반 친구, 다른 학원 친구들이 많았다.그래도 집이 가까워서 방과후에 곧잘 어울려 놀며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그 친구는 4학년이 되는 해에 휙 전학을 가버렸고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관계가 소원해졌다.
나는 그제서야 '단짝 친구'라는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였음을 알았다.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길 바랬을 뿐인데 그게 너무 많은 걸 바란거였나보다.
그리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친한 친구 라는 순위를 매기니까 실망하게 되는 거구나.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누구와 가장 친한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순위를 매기지 않으면 비교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3,4학년 때는 그래도 반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며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5학년, 6학년 때는 왜인지 여자애들 '무리'가 형성되면서 친구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다. 내가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은 이미 나보다 더 친한 친구가 있었고,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형성된 무리에 낄 수 없었다. 애초에 무리라는 것에 어떻게 소속되는 걸까? 다들 너무 자연스럽게 이미 소속된 무리가 있었다. 나한텐 그게 자연스러운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중학교 1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소속된 무리라는게 생겼다. 자연스럽게 그 무리의 구성원이 된다는게, 그 안에 내 자리가 있다는게, 내가 없으면 찾아주고 챙겨주는 친구들이 있다는게 그렇게 행복한 것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전학을 가 버렸다.
전학을 가면서 이전에 지내던 친구들과 계속 잘 지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붙어 있을 때는 모르던 것을 몸이 멀어지니까 알게 되더라. 그 마음의 크기를.
내가 먼저 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 연락,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지 않으면 성사되지 않는 만남,
단톡방은 점점 조용해지고, 가끔 만나자고 어렵게 날짜를 잡아도 막상 오랜만에 얼굴 보고 나면 얼마 못가 다들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그 뒤부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락이 끊어지고..
이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몇 번 겪고 나니 그제야 감이 오더라.
아, 다들 나만큼 이 관계에 진심이 아니구나.
여태까지 내가 좋아했던 친구들은 전부 내가 그랬던 만큼 날 좋아하지 않았구나.
불행하게도 나는 주는 걸 좋아했다.
받는거 보다 주는게 더 익숙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작게는 물질적인 것부터, 크게는 마음까지도.
초딩때 내 별명은 '아낌 없이 주는 나무'였다.
준비물 안 갖고 오는 친구들 맨날 빌려주고, 휴지도, 스티커도, 지우개도, 연필도..
내 연필은 거의 내 앞뒷자리 친구들 공동 연필이었다.
그렇지만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거절하는 걸 잘 못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는 주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매번 같은반이었던 친구들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좋은 애로 기억되고 싶었다.
연말마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초콜릿, 과자 같은걸 돌리는 걸 좋아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들까지 한명 한명 다 그림도 그려줬다. 그 착한 아이 증후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이후에도 반 친구들 그림은 거의 고1까지 매년 그렸던 것 같다. 정작 그 친구들은 나한테 별 관심도 없었을 텐데. 아무리 좋아서 했다지만 지금 봐도 참 미련스럽다.
내가 친해지고 싶거나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면 나는 그야말로 뭘 더 주지 못해 안달난 상태였다.
같은 반이었을 뿐 1년간 말도 몇마디 안 섞어 본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퍼줬는데 오죽할까,
먹을 것도 나눠주고, 숙제도 보여주고, 준비물도 빌려주고, 선물도 주고, 정도 주고, 마음도 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뭘 줄때는 준 만큼 돌려받으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고, 애초에 그런 걸 염두에 둔 적도 없었다. 그냥 나에게 고마워하고, 내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주고, 나를 조금은 더 특별하게 기억해주길 바랬다.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하지만 이제서야 감히 말해보건데,지금까지 준 것 만큼의, 아니 그 반만큼도 돌려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주기만 하고 받질 못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받는 법을 잘 모른다. 받는게 어색하고 때로는 불편하고 반드시 그 이상으로, 적어도 비슷한 크기의 것으로 갚아야 할것 같다. 누군가의 대가 없는 호의는 의심하게 되고, 뭔가 주려고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몰라 습관처럼 사양부터 하고 본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줄 줄도 안다는데, 일단은 받는 법 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받는것보다 주는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매번 주기만 하고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거였다.
누가 봐도 사랑받고 커서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은 티가 나더라. 사랑스러운 티가.
언젠가부터 그게 부러워졌다.
그래도 부모님한테는 사랑받지 않았나? 그마저도 못 받고 자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배부른 소리 하는걸까? 모르겠다. 우리 엄마 아빠는 그렇게 애정표현이나 칭찬에 관대한 분들이 아니었다. 애초에 당신이 나보다 더 부모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살가운 애정 표현법을 알겠는가. 부모님의 칭찬을 포기한지는 오래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칭찬 받으면 '아니에요~'라고 습관처럼 부정부터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건 분명 겸손이나 겸양과는 결이 다른, 그런 무언가이다.
물론 지금은 부모님을 이해한다. 부모님은 나를 저 잘난 맛에 사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나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해주시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최선을 다하셨지만 이걸 이해하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