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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연 Jan 21. 2022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

브런치 첫 글을 발행하며

글, 그리고 그림

매일 꾸준히 한다거나 특별히 많이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나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들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라거나 언제부터 시작했다거나 하고 특정 지을 수 없는 이유이다. 굳이 따지자면 연필을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초등학교 때는 매일 일기나 독서록을 썼고, (지금은 흑역사로 남은) 인터넷 소설을 끄적였고, 중학교 때는 (역시 흑역사로 남은) 노래 가사를 쓰고 시를 썼다. 고등학교 때는 너무 바빴다. 지금 생각하면 연필 잡고 공부 말고 다른 걸 할 여유가 없었다. 당연히 나를 들여다보지도 못했고 창작은 꿈도 못 꿨다. 그래도 드문드문 마음이 지치고 괴롭고 힘들 때면 일기장에 토해내듯 썼다.


성인이 된 지금은? 시간은 넘쳐나지만 생각만 많고 게으른 어른으로 자라서 쓰고 싶은 내용만 메모장에 잔뜩이다. 그래도 뭔가 꾸준히 쓰고는 있다.


사실 이 '기록'하고자 하는 욕구는 나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한 욕구가 아닐까, 그래서 인간은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벽에 그림을 그렸고,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여 남기는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겨왔다. 당연하지 않은가, 인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을 살다가 소멸한다. 내가 존재했음에 대한 어떠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간 인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그 자리는 꽃이 피고 지듯 새로 태어난 또 다른 인간들로 채워져 왔다. 나의 존재는 이 거대한 우주와 광활한 시간 속에서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는 걸 우리 모두는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깨닫기 마련이다.


불행히도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그러한 부조리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애를 쓴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기억되기를 바란다. 스쳐 지나가는 신경 작용과 지구를 순환하는 원자들의 찰나의 집합이 아닌, 유의미한 무언가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으려 했을 것이다. 내 기억보다, 어쩌면 내 생애보다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아무리 대단한 사건도, 아무리 심오한 생각도 기록하여 남겨놓지 않으면 곧바로 세월의 흐름에 씻겨 내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인간은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 것을 기록한다. 무언가를 쓰고 기록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음에 대한 증거이자 증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말고, 나에게는 글쓰기가 왜 그렇게 특별한가? 이렇게 되면 내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에 서툴다. 그래서 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순간이 오면 굉장히 난감하다. 자기소개를 해야 하거나, 말수가 적은 편인 나보다 더 말수가 적은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그런, 상상만 해도 불편한 상황 말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에게조차 내 이야기하는 것을 망설이게 되는데 오죽하겠는가. 나는 듣는 게 좋다. 말하는 게 싫어서다. 말을 재미있게 하거나 잘하는 편도 아닐뿐더러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다. 나는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는 게 두렵다. 누군가 나를 분석하고 판단하고 결론짓게 되는 것이 싫어서이다. 무엇보다 나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되면 그만큼 크게 실망할까 봐 두렵다. 그래서 나는 내 정보를 은닉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얘기할 때에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섞는 등 솔직하지 못하며, 누구에게든 마음속 깊은 이야기는 털어놓지 않으려 애를 쓴다. 나를 속속들이 아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질문을 받으면 늘 대충 둘러대거나 모호하고 애매한 대답으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다. 


이런 내가 가장 솔직할 수 있는 때는 오직 글을 쓸 때이다. 글을 쓰려면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떠한 계기에서 어떤 흐름으로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지 탐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생각들을 정돈된 언어로 표현해 내려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내 생각들을 잘 다듬고, 읽는 사람이 잘 받아들이고 납득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은 더 정교해지고, 내 세계는 놀랍도록 넓고 깊어진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글은 나를 기록하여 남기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나를 성찰하고 다듬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브런치가 대체 내가 어떤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해서 단번에 나의 작가 신청을 승인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해는 말라,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나는 이제부터 '내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다. 그토록 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던 내가 오롯이 내 주관, 내 가치관, 내 감성을 담은 글을 누구든 볼 수 있는 공간에 공개한다는 것이 나 자신도 놀랍다. 아마 이렇게 소심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도 '작가'라는 호칭을 내어주는 브런치라는 플랫폼과, '글'이라는 매체가 주는 안정감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도 내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모르겠다. 작년 한 해 동안 내 서랍에 쌓아놓은 몇 편 안 되는 글들은 그저 내가 하는 생각들을 끄적인 것에 불과해서, 남이 찾아와서 읽을 만큼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고 애초에 그만큼 관심을 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더도 덜도 아닌, 내가 하는 생각들일뿐이다. 글로 들여다보는 나 자신, 글로 바라보는 내 세상과 내가 속한 사회, 그에 대한 내 생각들을 써 내려가 보려 한다. 내 얘기만 할 것처럼 말하다가 왜 갑자기 사회 얘기가 나오냐면, 갓 성인이 되고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보니 내가 알던 좁은 세상이 아닌,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진짜 세상이 너무 거대하고 흐릿하고 복잡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을 보는 해상도를 높이는 것이 공부라길래, 열심히 보고 듣고 배우며 렌즈를 깎고 있다. 아마 평생을 갈고 다듬고 닦으며 살아가야 할 '세상 보는 렌즈'말이다.  렌즈로 세상을 좀 더 선명히 바라보고 이해하고 싶다. 물론 세상의 일부이자 세계 자체인 나 자신도.


사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 너머에 있다. 나는 세계를 관찰하고 분석하여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고 싶다. 물론 아직은 눈앞의 현상들만 이해하는 것도 벅차지만, 언젠가는 그런 넓은 시야와 깊은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써놓고 보니 마치 현자의 돌이라도 찾아 나서는 탐험가가 된 것 같다. 삶이란 건 항해이자 여정이니까, 어느 정도 맞는 말인 듯하다. 나는 이제 이 여정의 첫 발을 떼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은 고스란히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미숙하기 짝이 없는 어린애가 어떻게 사고하고 성찰하며 어떤 어른이 되어 가는지를 말이다. 멋진 성장 만화와는 거리가 먼,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엉망진창에 난항이 예상되는 이 여정을 기꺼이 지켜보고 싶다면 온 마음을 다해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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