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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희 Apr 23. 2024

제 4장. 나쁜사람 0명, 외로운 사람 1명

원래 퇴근 후 만나려던 날이지만 내 몸이 안좋아서 쉬겠다고 했다. “갈까?”라는 말에,
 “바쁘면 안와도 되구.”라고 말했는데,
그럼 오늘은 좀 바쁘니 집으로 가겠단다.


요즘 우리 사이에 감돌던 냉랭함을 녹여볼 기회인데 '눈치가 없는건가' 아니면 '마음이 없는건가' 싶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진짜 바쁜가보다' 고 생각했다.


좀 일찍 퇴근하고 집 가는 중!」

늘 나보다 늦게 퇴근하는 그의 이른 퇴근소식에 내심 나에게 잠시라도 들릴건가 기대를 또 걸었다.


집 거의 도착! 마저 일 해야해ㅜㅜ」

어느새 본인의 집 근처로 접어들었다는 메세지에 망설임 없는 그의 행선지가 못내 서운했지만, 퇴근아닌 퇴근 후 재택근무를 이어가는 그가 안쓰럽기도했다.


가 후 침대로 쓰러지자, 참았던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몽롱한 상태로 그와 연락을했다. 나도 잘 아는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겠다고 다.  아파서인지 서운함이 두배로 몰려오다 이내 짜증이되었다. '그 친구 만나서 밥만 먹고 올거 아니잖아' 따지기도 입이 아파 차라리 잠을 택했다. 기분이 안좋은 채 잠들어서인지, 아파서인지 한참 끙끙 앓다가 깨서 휴대폰을 봤더니 3시간이 지나있다.


생각보다 많이 잤네. 이젠 집이겠거니 하고 휴대폰을 열었으나 그에게선 집에갔다는 연락이없다.


「어디야?」

카톡을 보낸지 얼마 안있어 전화가 온다. 친구와 친구의 여자친구까지 와서 맥주를 마시고 있단다.


기침이 나서 말을 못 이어가자 그가 안쓰러워하며 걱정한다. 그러나 여전히 친구와 함께있는 그 걱정은 나에게 닿지 못했다.


 “바쁘다며. 일이 많다며. 그래서 오늘 나 안만나고 집에 가서도 계속 일한다며.”


“진짜 바빠, 집와서 계속 일하다가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이야기가 길어졌어.. 저녁은 먹어야할거 아니야. 이제 곧 들어가서 또 새벽까지 일 할거야.”


“어차피 새벽까지 일할거였으면, 저녁 먹는데에 3시간도 넘게 쓸 여유되는거면, 나한테 들러 볼 수도 있는거잖아.”


“일하다 저녁먹으러 동네 나갔다가 좀 길어진거야. 다시 들어가서 집중할 수 있는거랑 아예 너네 동네로 가는거랑은 다르잖아..”


“그럼 오지도 않을거면서 자꾸 진짜 아프면 말해 갈게라는 둥 간보지 말라고. 열받으니까.”


“아.. 솔직히 지금 심각하게 아픈거 아니잖아, 몸살기운이잖아. 가서 뭐해, 그냥 너 아픈거 지켜보고있어?”


“야. 죽을만큼 아픈거면 니 아니라도 와줄 사람 많아. 너 필요없으니까 연락하지마."


'야', '니' 이런 호칭은 내가 정말 화났을때 튀어나오는 좋지못한 습관이다.

그도 이때부터는 감정적으로 받아치기 시작했다.


"이럴거면 처음부터 그냥 오라고 해. 바쁘면 안와도 되니 하는 둥 선택지를 주지를 말라고."


"바쁘면 안와도 된다했지, 친구만나 맥주마실 시간은 3시간 넘게 있는데 안오는건 그냥 니가 오기 싫은거잖아."


"안만나기로 했으면,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는 내 권한이야."


우리가 이미 며칠 째 결혼 문제로 응어리가 있었고, 정말 간만에 내가 열이 나며 아팠고, 마침 얼마 전에 나는 아플 때 혼자있기보단 너의 간호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좀 아픈 나를 지켜보러 가기 위해 그가 감내해야하는 불편함, 견뎌야하는 피곤함을 핑계로 치부하는 나를 이기적이라 말했다. 자기는 오히려 아플 때 누가 옆에 있는게 신경쓰이고 불편하기 때문에 혼자 두면 좋겠다고 했다.


본인이 아플 때 내가 곁에 있는 것도 귀찮고, 내가 아플 때 본인이 내 곁에 있는 것도 귀찮다면 우리는 왜 연인인걸까?


"됐어. 어차피 같이 살면 늘 붙어있으니까 아플때 오네마네로 싸울 일도 없어. 그만 싸우자."

그는 결혼하면 해결될 문제라며 싸움을 종결하려했다.


그 같이 산다는 날은 언제 오는걸까.

곁에있어주고 간호해주는 법을 모르는데, 한 집에 있으면서 아픈게 더 외롭지는 않을까?
누가 맞고 틀린게 아 성향의 차이지만, 나쁜 사람은 없는데 나만 외롭다.


“네가 좀 더 강하고 단단해졌으면 좋겠어...난 하루를 너의 걱정으로만 보내고싶지 않아.”


그래, 온실 속 화초처럼 약하고 보호해줘야할 것 같은, 너와는 너무 다른 나에게 평생을 거는 것이 너에게도 쉬운일은 아니겠다.


그런데 나도 살던대로 온실 속 온도를 유지해 줄 사람을 찾아 떠나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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