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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희 Apr 17. 2024

제 2장. 넌 '나랑'이 아니라 '결혼'이 하고싶은거네

우리의 싸움을 구글이 도청하기라도 했는지,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결혼을 꿈꾸는 타이밍이 맞지않은 커플들의 사연에 대해 조언해주는 동영상들이 줄을 이었다.


남자들은 돈을 벌기  시작하면, 내 가정을 이룰 목표가 생긴다고. 이건 본능이예요. 돈 없어서 결혼 못하겠다고 미룬다? 아무리 없어도 이 여자다 싶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거라고 해서라도 결혼하지. 그냥 당신과 결혼할 마음이 없는거예요.


연애 조언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가 떠들어댔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세요. 남자는 자기가 결혼할 확신 든 여자 안놓쳐요. 남자들이 평소에 바보같아도, 자기가 결혼할 여자 판단하는건 냉정해요."


남자 유튜버가 하는 말이라 그랬나, 내가 오해하고 싶은대로 떠들어 대는 말이라 그랬나. 정답 같았다. 결혼할 수 없는 현실은 핑계고, 그저 결혼할만한 여자가 아니라서 뭉그적대는 것 같았다.


나는 모든 조건이 결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도, 너라서, 너니까, 너와 결혼하고싶은데.


결혼에 대한 우리의 입장차이는 매번 좁혀지지 않았지만, 어느날은 누그러진 대화를 했고 어느날은 고성이 오갔다. 그날은, 누그러진 분위기 속 대화였다.


분주하고 웅성대는 꼬치집의 2인석에서, 주황빛 조명 아래 약간 알딸딸한 그 기분이 싫지 않았다.


서로를 마주 본 채 진지한 대화를 이어갔다.


“넌 왜 빨리 결혼하고싶은거야?”

그가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다정하게 물었다.


내 기준에선 이미 '빨리'는 아니었기에 나도 모르게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으나, 그의 말마따나 이제서야 둘다 직장에 겨우 적응한 정도이니, 결혼을 이야기해볼만한 가장 빠른시기인 것도 같다.


“말했잖아. 인생을 길게 놓고 봤을 때, 출산도 걱정되고..”


“또 다른 이유들도 있어?”


“연애 너무 오래하고 결혼하고싶지 않아. 우리는 이미 너무 오래 연애했고.. 더 나이 들기 전에 웨딩드레스 입고 너랑 풋풋하게 예쁘게 결혼식 하고싶어. 나중에 시간나이에 쫓겨서 아니라."


그가 별다른 반박없이 듣고있는게 오랜만이라 나도 더 솔직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좀 결혼식에 물리적으로 덜 투자해도 우리가 젊으니 예쁠테고, 하객 대접에 어설퍼도 양해 받을 수 있는 나이 같기도해. 여기서 2-3년 더 지난다고 해도 지금과 상황이 크게 달라질거 같지도 않아. 물가는 오르고, 나이는 차는만큼 챙겨야할 것들은 오히려 더 많아지겠지.”


그가 너털 웃는다.


귀엽다는 듯한 웃음이지만, 사랑스러움이 아니라 철없는 아이를 보는 웃음이다.


“왜 웃어?”


“아니, 예쁠 때 웨딩드레스 입고싶다는거잖아 결국.”


아. 내가 말한 많은 문장 중에 그거 하나만 들렸니.

나의 공기가 싸늘하게 바뀐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이어 말했다.


“넌 '나랑' 결혼이 하고싶은게 아니라, 그냥 '결혼'이 하고싶은거네.”


내가 가장 듣고싶지 않던 말을.

아니, 들을거라 생각조차 못했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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