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연희 Apr 16. 2024

제 1장.  먼저 결혼하고 싶다 말하면 이기는 거야?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되었을 뿐인데,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 소식에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지만, 10년의 연애가 주는 무게가 부담스러웠다.


장기연애의 말로가 이별이 되고, 결국 각자 다른 짝을 찾아 결혼하거나 아예 시기를 놓쳐버린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봤다


이제 와이별하더라도 20대를 순수하게 최선을 다해 애틋하게 사랑했으니 그것으로 의미 있는 사랑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그를 추억에 묻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오래 사귄 만큼 그의 친구 커플들과도 친했는데,

그중 두 커플의 결혼식이 차례로 예정되어 있었다. 다들 서로를 결혼 상대로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커플 모임인만큼, 세 번째 유부커플은 누가 될 것인가로 대화가 흘렀다.


“너네는 결혼 언제 하게?”


“할 거면 얼른해 빨리하는 게 좋아”


두 달 뒤 식장 입장만 기다리고 있는 커플이 입을 모아 우리의 결혼을 부추겼다.


“우리는 더 있다가. 나중에.”


“언제 하게? 서로 이야기된 거야?”


“아이, 지금은 못하지.”
물음은 우리 둘에게 향했지만 그가 일방적으로 입장표명을 해버렸다.


“근데 너희도 동갑이고, 아기 낳을 거면 빨리 하는 게 좋아”


“아, 내 말이!”
다른 커플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자, 그를 원망하는 마음이 한가득 차올랐다.


여럿 모인 자리에서 누가 결정지어줄 대화 주제도 아니었지만, 내 말이 맞지 않느냐고 보여줄 수 있는 기회처럼 느껴졌다.


봐. 다들 나랑 의견이 같잖아.
내가 철없는 게 아니라, 네가 안일한 거잖아.


그의 친구들이 나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데도 쩍않능 모습에 답답한 기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더 오래는 못 기다리겠어.”

그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잠시만, 뭘 기다려?"

내가 비장하게 말한 것에 비해 그는 어림도 없다는 듯 의문을 제기했다.

"언제부터 기다렸는데? 우리가 결혼 이야기를 진지하게 한 적이 있어?”


“난 대학 졸업하고도, 대학원 다닐 때도 너랑 결혼하고 싶었고, 너한테 얘기했었어.”


“그건 진지하게 한 대화가 아니잖아, 넌 대학원생에 난 취준생일땐데. 아예 결혼할 상황도 아니었다고!”


그렇다고 장난도 아니었어. 난 너와의 결혼을 계속 꿈꾸고 기다렸. 안 그래?”


매일 그와의 결혼을 꿈꾸기만 한 순정파도 아니면서 이 말을 하는데 괜히 서럽다.

연애의 해피엔딩은 결혼이잖아.


“결혼을 못하는 상황에서  기다렸다는거야.."


“연애를 하면 당연히 결혼이라는 미래를 기대하는 거 아니야? 우리 10년 연애했어.”


“10년 연애가 뭐가 중요해... 10년 동안 결혼할 상황이 안 됐는데”


“넌 그게 아깝고 아쉽지 않아?"

 하루라도 빨리 나랑 가정을 이루고 싶지 않아?


나 이제 취직한지 1년 됐어. 이제 벌기 시작해서 내 돈 내가 마음대로 쓰고 즐기고 싶어.”


“그러니까. 너는 너의 자유가 나와의 미래보다 먼저인 거잖아. 나를 기다리게 하겠다는 거잖아.”


왜 내가 그 시간 동안 니 옆에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그는 '기다린다'는 표현 자체를 납득하지 못했다.


“뭘 기다리는데, 결혼하고 싶다는 말 먼저 하면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야?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인 건 서로가 마찬가지인데? “


이때쯤부터는 나는 핀트가 나갔. 더 이상 결혼을 지금 하느냐 5년 후에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더 나은 여자였다면, 본인의 자유를 좇는 게 아니라 나부터 잡고 싶었을 텐데. 나를 미룰생각은 못했을 텐데. 자존심의 문제가 되었다.


"아이~ 미안하다고 기다려달라고 좋게 말하면 되잖아. 너도 시간을 좀 줘~ "

점점 나의 표정이 심각해지니 친구들이 중재했다.


아니 뭐가 미안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먼저 결혼하고 싶다 한 사람 장단에 못  사람은 죄인이 되는 거야? 먼저 말하는 사람이 이기는거야?

그는 답답해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가 지금 억지 부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기가 막혔다.

마음이 같지 않음에 미안해 할 수도 있는 거지 이걸 자존심을 부려?


"기서 이기고 지는 게 왜 나와?"


"아 그렇잖아, 의견이 안 맞는 건 피차 마찬가진데 왜 나만 미안해야 하는데?"


"그래 됐어. 미안해하지 말고, 대신 내가 너 못 기다려도 원망하지 말고."


"그게 협박이잖아, 지금 네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헤어지겠다는 거잖아. 이럴 일이야?"


“결혼 타이밍이 안 맞아서 헤어지는 사람들이  등신이라서 헤어지겠니?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결단을 내리는 거지”


간간히 친구들이 “싸우지 마 -” , “둘 다 이해 간다.”하며 중재했다. 더 이상 대화가 길어지면 분위기를 망칠 것이기에 다른 주제로 화두를 돌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10년을 만났는데, 5년을 더 연애하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