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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보우 Jul 22. 2023

채택된 시안, 폐기된 시안

그림책 일러스트 제작기 3편 -상상에는 날개를 달지 마라


콘셉트 시안은 총 3가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1번 시안이 '그림책 일러스트 제작기 2편'에 소개된 병원핑구 시안으로

재미있는 표현의 극대화를 위해 제작된 장면이었고  


2번 시안은 아래의 목욕핑구는 귀여움 표현을 실현해 보기 위해 제작되었다.


목욕 핑구


목욕 장면이라고 해서 욕조와 비누, 샴푸, 오리 인형 이런 것을 그리고 싶진 않았다.

게의 특징을 살려 알록달록한 거품을 내뿜어주면 핑구가 거품에 휩싸여서 목욕을 하는 장면으로 연출하고

욕조 등 소품 대신 뒤에 타일 배경을 그려 목욕 시간이라는 걸 표현했다.

2번 시안은 엄마 캐릭터만 변경하고 깨끗하게 다시 그려서 완성작으로 사용했다.


3번 시안은 할아버지 물고기를 만나는 핑구였다.

동화 중 가장 어두운 장면을 어떻게 소화할 건지를 표현해 본 것이었다.

어린이 동화인만큼 어두운 장면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았다.

가끔 동화에서 어두운 장면이 징그럽게 표현되는 게 내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있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영혼이 맑기 때문에 조그만 자극도 크게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점점 흑화 핑구



오염된 물로 들어가는 핑구는 표현하기 위해 두 면으로 나눠 밝음과 어두움을 표현했다.

(작가님께 보내 드릴 때는 핑구가 제대로 있었는데 그 후 이리저리 수정해 보면서 핑구가 이상해졌다.)

하지만 할아버지 물고기가 너무 무난해서 엑스트라 같아 보이는 점

물의 그라데이션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

생각보다 재미도 없고 임팩트도 없는 장면이라 이후 자체 폐기했다.


세 개의 시안 작업에 약 10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림의 완성도는 떨어졌지만 핑구를 탄생시켜야 했고, 전체 콘셉트까지 한꺼번에 생각하는 단계여서 좀 오래 걸렸다.  


처음에 일러스트 콘셉트에 대해서 상의할 때 작가님은 나에게 결정권을 전적으로 맡겨주셨다.

본인의 작품인 만큼 이래저래 조바심도 나고 관심 어린 걱정이 많으셨을 텐데도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나의 소신껏 작업을 하게 해 주신 것에 감사했다.


그래도 막상 시안을 송부할 때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서기선 작가님은 나의 따뜻한 느낌의 일러스트를 좋아해 주셨는데

이런 웃기거나 귀여운 콘셉트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알 수가 없었다.

작가님의 동화를 읽었을 때 시각적으로 캐릭터를 살리고 재미를 가미해야 독자들에게 더 손이 가는 작품이 될 거라는 판단으로 한 작업이었지만 선택은 작가님의 몫이었다.


다행히 작가님은 '맘에 든다, 요구르트 병에서 한 번 더 웃었다, 1번 시안의 재미있는 콘셉트로 가자' 등으로 긍정적으로 피드백해 주셨다.




상상은 나에게 설렘을 주지만 그 상상이 시각화시키는 과정은 부담 80에 기쁨이 20 정도이다.

상상 속에선 날 것 같았던 내가 실제로는 걷고 있는 간극의 차이랄까.

그래서 웬만하면 상상에는 날개를 붙이지 않으려 한다.


마음껏 즐거운 상상을 하는 건  좋지만 '누구나 좋아할 거야, 정말 재밌을 거야'등 착각을 승객으로 태우고 하와이까지 날아가 버리면 왜곡이 생긴다.

혼자 즐거우려면 그림을 방 안에서 혼자 보면 되지만 누군가의 작품에 그림을 그리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공개한다는 건 나의 주관적 시선보다는 독자의 시선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이 아니라 공개될 그림에 날개를 붙여야 하고, 그 날개로 독자와 함께 날아가야 한다.


즐겁지 않더라도 작가는 의자를 닦고 날개를 정비해야 한다.

그게 부담이든 지루함이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즐거울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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