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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근차근 May 02. 2022

손님 없는 첫 비행

이만하면 인생에서 잊지 못할 날

승무원으로서 첫 비행을 맞아 유니폼을 입고, 전 날 밤, 칼각으로 다림질 한 스카프를 목에 이리저리 15분 동안 고군분투하며 맸다. 돌돌이(Flight Bag)를 한 손에 끌고, 마치 10년 차 시니어 크루인 것처럼 인천공항의 큰 복도를 가로지를 때였다.  



'첫 비행에서 *이레가 생기면, 은퇴할 때까지 이레 요정이 된다는 말이 있어. 첫 비행을 진짜 조심해라!'

[이레] _  Irregular의 줄임말, 비행 중 안전, 승객 등에 관해 발생하는 돌발적 상황을 칭함.



이미 타 항공사에서 N년차 승무원이 된 친구의 말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몇 달 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그 한마디가 떠오르자, 나는 돌돌이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래! 이레 요정이 될 순 없지. 오늘은 하루 종일 투명인간 모드 발동이다!' 그런 다짐을 하며 브리핑실을 향했다. 사무실에서 만난 팀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차근님 인생 첫 크루 비행인데, 손님이 없어서 너무 아쉽겠어요!”



그래 맞다. 코시국 주니어 크루의 첫 비행은 손님 하나 없는, 승무원만 꽉 찬 비행이었다. 그동안 상상해 온 첫 비행에 딱 맞는 단어가 있다. '장거리 노선', '만석 손님'이 그 예이다. 하지만 나의 현실 첫 비행은 'ICN-ICN 구간'(출발지: 인천공항, 도착지: 인천공항 구간) 그리고 '텅 빈 좌석', 이 두 단어로 정확하게 요약할 수 있다. 상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아쉽지 않냐는 선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그리곤 비행을 어떻게 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 듯하다. 오븐에 20명 분량의 크루 밀(CREW MEAL; 승무원 기내식)이 탑재되었는데, 손을 빛의 속도로 움직이며 식사를 준비했던 선배들 옆에서 '엇! 선배님! 제가 하겠..! 엇..!... 엇!' 하다가 눈 떠보니 좌석에 앉아 크루 밀을 먹고 있던 나, 객실 보안점검을 할 때 선배님의 빠른 속도를 보며 입이 턱까지 벌어졌던 나... 그런 모습이 기억날 뿐이다. 첫 비행에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 '엇'과 '넵'이라고 대답할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장님이 비행 중 내 양 어깨를 토닥이며 했던 한마디는 아마 평생에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금은 텅 빈 이 객실을 마음껏 만져보세요. 너는 이렇게 생겼구나. 앞으로 잘 부탁해. 이런 마음으로!"



손님 있는 비행에선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으니 지금 객실 설비, 기물을 많이 만져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무장님의 의도와 달리 나는 말 그대로 첫 비행 부스트 샷을 맞아버렸다. 그 말을 듣고 나니 309개의 좌석, 오븐, 컴파트먼트 심지어는 Jump seat(승무원 전용 좌석)까지, 시야에 들어차는 객실의 모든 것들에 애정이 생겼다. 인천 공항에 착륙을 할 때쯤 나는 내가 앉아 있던 점프 싯을 한번 쓰다듬었다. 사무장님의 말대로. 앞으로 잘 부탁해. 오늘 나를 지켜주어 고마워. 그런 마음을 가득 담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매 비행마다, 이륙 직전과 착륙 직후 내가 앉은 점프싯을 한 번씩 토닥인다. 그날 비행이 어떻게 흘러가든, 내 마음을 안정시키는 하나의 루틴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플라잇 백을 끌고 항공기를 나서며, 우리 비행기 사진을 하나 찍어뒀다.  녀석 앞으로 여기저기 많이 날아다녀, 꼬질꼬질해지기 전에... 뽀오-  찍어두란 기장님의 말은  사진을  때마다 떠오른다.    비행을 채운 것은 비록 손님은 아니었다. 대신 사무장님,  선배, 동기들이 건네  선물과 편지 그리고 애정 하는 우리 팔칠이(우리 비행기 별명, 기종이 B787-9이라 팔칠이라고 칭함)  자식처럼 바라보는 시선. 돈으로는 절대 채울  없는 것들로  마음을 터지게 채웠다. 나의  비행, 손님 없는 그날을 나는 이만하면 인생에서 잊지 못할 로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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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나는 친구의 말처럼, 이레 요정도 될 일이 없다.

첫 비행에 손님이 없었고, 평온해도 너무나 평온했기 때문이다.



그럼 팔칠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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