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건물과 우리는 가든을 마주대고 있는 독특한 구조다. 나무 몇 그루로 구역을 나눠놓긴 했지만, 결국은 계속 얼굴을 맞대야 하는 구조다. 그래서 어떤 이웃이 오게 될지 매우 궁금했다. 이상한 이웃이 오면, 그만큼 삶이 고단해질 게 뻔했다. 그래서 제발 좋은 이웃이 오게 해 달라고 기도도 했다.
그리고 어제, 처음으로 가든에서 마주친 새 이웃과 인사를 나눴다. 3 살배기 여자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였다. 남편분은 멕시코인, 아내분은 독일인인 국제커플이었다.
어쩌다 대화가 이어졌고, 아내분이 싱가포르에서만 10년을 거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도, 일본도 여러 번 여행했다며 ‘광화문’ 사진을 사진첩에서 찾아 보여주셨다. 나는 내 회사가 있던 공간을 낯선 땅에서 만난 낯선이가 내밀며 보여주는 이 상황이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더 정이 갔다. 그냥 그 상황은 나를 그 낯선 서양인과 친근한 무언가로 묶이게 해 줬다.
잠시 후, 이웃 가족은 조그마한 튜브 물놀이장을 꺼내더니 얕게 물을 담아놓고 우리 아이들을 초대했다. 가든에서 그냥 뛰어놀던 아이들은 옆집 초대에 곧장 응했고, 그렇게 갑작스러운 물놀이가 가든에서 펼쳐졌다.
옆집 3살 꼬맹이는 독일어도, 영어도, 스페인어도 자유롭게 구사하는 ‘언어 천재’였고, 우리 아이들과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아이들은 사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금방 친구가 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니 더 금방 친해지는 듯했다. 그렇게 작은 ‘워터파크 파티’는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나는 틈틈이 밖을 내다보며 저녁 준비를 했다. 삼겹살을 구워 김치를 얹어 볶다가 물을 넣고 끓여 맛난 김치찌개를 완성했다. 손질된 고등어도 오븐에 구워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갓 한 밥도 입맛을 돋웠다. 이제 남편이 도착하면 저녁식사를 하면 되었다.
아이들은 그 사이 정원을 활보하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물장구도 치고, 집에 있던 온갖 자동차를 끌고 나가 정원을 주차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숨바꼭질을 하며 옆집 정원을 뛰어다니기도 했고, 그러던 중 간간히 음료수를 마시러 주방을 들르기도 했다.
그 사이 우리 찐 옆집에 사는(같은 건물 옆집에 사는) 레온이 합류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레온은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스위스에 오래 살아 독일어를 잘한다. 3살 꼬맹이와는 독일어로, 우리 아이들과는 영어로 소통하며 4명의 꼬맹이들은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한참 뛰어놀고 있으니 앞 건물(또 다른 건물이다)에 사시는 어르신들이 손을 흔드셨나 보다. 아이들이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며 답인사를 건넸다. 그냥 그림 같은 풍경들이 펼쳐졌다.
공동육아가 이런 걸까. 옛날 골목골목 아이들이 몰려나와 동네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면 그동안 집에서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그 시절. 목이 마르면 옆집에 들어가 물을 마시고, 온 김에 저녁 먹고 가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눌러앉아 밥을 먹던 그 시절.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나 봤을 그 옛날 추억이 여기선 현실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층간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간간히 “조용히 해”라는 소리를 질러야 했을 것이고, 엉덩이가 들썩이며 결국 소파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틈틈이 단속을 해야 했을 것이다. 불과 6개월 전, 그렇게 살았던 우리가 이렇게 몇 시간씩 밖에서 이웃들과 뛰어놀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스위스에 와서 힘든 점도 많다. 매번 한식을 준비하려 고군분투해야 하고, 일요일이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다 보니 미리미리 장을 봐야 한다. 아마존은 느려터져서 뭔가 필요하면 미리미리 주문해야 하고, 워낙 외식물가가 비싼 데다 맛도 별로 없어서 배달음식은 주례 행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이웃들, 아이친화적인 환경에서 상쇄된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환경은 정말... 한국과는 비교조차 불가하다. 20년 전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는 게 아이러니하달까.
나도 어릴 적에는 저렇게 자랐던 것 같다. 친구네 집에서 신나게 놀다가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시는 감자전 먹고, 놀이터에서 또 놀다가 우리 집으로 가서 엄마가 끓여주신 짜파게티 먹고. 그렇게 자랐는데. 지금의 한국은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무엇이 우리에게서 ‘공동체’라는 주요한 가치를 뺏어가 버린 걸까.
이웃집 가족이 나에게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을 건넸다. 그러더니 연어 샐러드에 멕시코식 타코, 빵, 치즈를 주섬주섬 계속 꺼내 오신다. 나보고 앉아서 저녁을 먹고 가란다.
나도 가만있자니, 뭔가 섭섭하다. 김치찌개를 아냐고 물으니, 찌개는 모르는데 김치는 좋아한단다! 그래서 냅다 돼지고기김치찌개와 밥 한 그릇을 퍼서 가지고 나갔다. 그러자 숟가락과 젓가락을 신나게 갖고 나오는 남편분. 에라 모르겠다, 이번엔 고등어구이와 애들용 밥도 한 그릇 더 퍼서 나왔다. 남편도 퇴근해서 합류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멕독 한상차림’을 완성해 다 함께 식사를 했다.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아이들은 뛰어놀고, 우리는 소소한 담소를 나눴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되었는지, 이곳 생활은 어떤지와 같은 소소한 일상들을 공유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웃사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