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첫째가 밥을 먹다 울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던 중이었다. 메뉴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었고, 식사 직전까지 가든에서 열심히 뛰어놀았는데. 갑자기 아이가 왜 우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첫째를 진정시키고, 밥을 마저 먹고, 책 한 권을 읽고 치카를 한 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왜 울었는지 물어봤고, 아이는 나에게 조근조근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요즘 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나쁜 생각을 하게 돼"
"응? 무슨 나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자꾸 가족이, 친구가 죽는 상상을 해"
"아...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떠올려. 그건 너뿐만 아니고 엄마 아빠도 해. 나쁜 생각이 아니야."
"아니, 그런 거랑 좀 달라.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도 한단 말이야."
"죽었으면 좋겠다? 죽을지도 모른다가 아니고?"
"응. 나도 그런 생각을 하기 싫은데 하게 돼. 그리고 가끔은 나도 죽을 거 같아."
아이는 죽음의 상황을 수도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다다음날도, 나에게 같은 고통을 호소했다.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하게 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 죄책감과 공포.
원인은 '책'이었다. 최근 내가 읽던 책을 가져다 읽은 게 화근이었다. 미국 의사가 암에 걸려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써 내려간 에세이집이었는데, 그 책 속에 묘사된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이에게는 많이 충격적이었나 보다.
그 책이 이렇게까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에 책을 제지할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어른들 책도 이제 곧잘 읽네'라며 대견해했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절대 그런 일은 너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야. 책 속 상황은 정말 드문 상황이라 책으로도 만들어지는 거야. 정말 소수의 어른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이야."
"하지만 어쨌든 소수라도 벌어지긴 하는 거잖아?"
"그렇지만 그게 네가 될 가능성은 정말 희박해."
"알아. 근데 자꾸 생각이 나는 걸 어떻게 해"
이런 대화가 1주일, 2주일 이어지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냥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게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이곳은 스위스고, 한국처럼 심리상담을 예약해 다녀오기도 쉽지 않고. 그러던 중 한 학부모로부터 학교 내에 있는 'Primary counseller'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카운셀링 해주시는 심리상담사가 학교 내에 상주한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추가로 돈을 낼 필요도 없고, 서로 상담 시간만 정하면 상담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상담을 요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곧장 상담 선생님이 상주한다는 사무실을 찾아갔다. 아담한 사무실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잔잔한 음악과 조명 아래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신은, 괜찮나요?"
상담 선생님이 물어본 첫마디. 아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나에 대한 것이었다.
너는 괜찮냐고.
그때, 이유도 모를 눈물이 마구 흐르기 시작했다.
왜 울었는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난 스위스에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첫 해외 생활 치고는 금방 적응했고, 감사하게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넘쳤다. 많은 도움을 받고, 또 관계를 형성하며 그렇게 나는 잘 적응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마냥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너는 괜찮냐고 물어봐 준 사람이 처음이었다. 다들 스위스에 산다고 하면 '좋겠다, 부럽다, 좋은 기회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게 새로웠다. 아이들을 온전히 내가 돌봐야 했다. 어딜 가도 긴장해야 했고, 아이들의 일상은 곧 나의 일상과 같아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나는 배로 힘들어야 했다. 주재원인 남편은 바빴고, 나의 커리어는 멈췄고. 즐기는 만큼 미래는 불투명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게 복합적으로 나의 가슴 한편에 켜켜이 쌓여 있었나 보다.
10분 정도를 펑펑 울었다.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계속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은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며, 마음껏 울라고 해주셨다. 휴지를 갖다 주시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내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