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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Aug 30. 2022

내일의 사탕은 내일의 사탕

삼척에 다녀왔다. 내가 아는 가장 나이 많은 친구 차를 얻어 타고. 가서 물회랑 소라랑 곰치국이랑 광어회랑 생선구이를 먹었다. 바다를 조금 보고, 커피를 마시고 다시 돌아왔다. 짧은 여정이었다. 내 친구는 연애 해프닝을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외에도 내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한 여러 말들을 전해 왔다.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게 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 친구는 예순넷, 우리 아빠와 동갑이다. 해파랑 길을 지나면서 나는 어지러움과 안정감을 동시에 느꼈다. 옆으로 보이는 비오는 바다는 평온히 젖어가고, 길은 구불구불 정신이 없다. 옆에서 빗길 운전을 하는 친구는 계속해서 내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 잠은 잘 자고? 딸은 어때? 사소한 걱정들, 다정하다고 느꼈다. 나는 실제로 괜찮아지고 있다. 더 이상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바깥을 싸돌아다니지도 않는다. 내가 위대한 각본가가 되거나, 모텔 창업주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약으로 조증은 잡혀가고 있는 중이다.


아주 오랜만에 티비를 끄고 아이와 놀아주었다. 책을 연달아 네 권을 보고, 교구를 가져와서 같이 해보고, 같이 달리기도 했다. 내 몸은 이미 축적된 피로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오랜만에 아이가 책을 보면서 "고양이! 표범! 원숭이! 부엉이!" 하는 말들을 들으니 정말 미안하기도 했다. 아이는 어제 잠들기 직전 말했다. "아빠는 아빠, 엄마는 엄마. 아빠는 아빠, 엄마는 엄마!" 내가 "OO아,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물었다. 되돌아오는 말은 뜬금없이 "사탕 먹고 싶어"였다. 내가 "조금만 참아." 했다. 그러자 아이가 "참는 게 뭐야?" 하고 묻는다. 나는 "참는 건 기다린다는 거야."라고 했다. 아이가 "기다리는 게 뭐야?"라고 물었다. 나는 곰곰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기다리는 건 가만히 있는 거야." 하고.


나는 참는 걸 못한다. 기다리는 걸 못한다. 가만히 있는 걸 못한다. 극조증일 때 내 상태가 딱 그렇다. 바로 뭔갈 해치워야 하고, 바로 만나야 하고, 바로 먹어야 한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면 그걸 바로 On버튼을 눌러서 실행시켜야 하는 컴퓨터처럼 변한다. 극조증일 때 나는 돈을 마치 게임머니처럼 쓴다. 세상의 모든 퀘스트들을 깨기 위한 게임머니. 그래서 돈이 술술 나간다. 문제는 총알이 얼마 남았는지 확인도 안 하고 막 쓴다는 데 있다. 새로운 사람이 있으면 당장 만나 봐야 한다.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얼마가 드는지 따위는 생각도 안 든다. 커피와 밥과 술, 2차, 3차, 4차까지 연이어지는 자리들, 나는 참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가만히 있지 못한다.


다리를 발발 떨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요즘 나는 잘 참는다. 밥을 먹기 싫어도 먹고, 잠을 자기 싫어도 잔다. 약은 먹기 싫은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먹어야 한다. 산책도 조금씩 나가야 하는데, 이건 좀 보류하고(웃음). 그리고 달라진 점은, 1분 거리에 있는 엄마 집으로 자주 놀러를 가게 되었다. 어제 집에서 읽기 싫은 책을 뒤엎고 뒹굴거리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깻잎 김치 담그는데 놀러 올 거면 오고" 나는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굉장히 귀엽다고 생각되었다. 딸래미라고 하나 있는 게 1분 거리에 사는데, 김치 혼자 담그고 있으니까 옆에 와서 노가리나 까다가 가라는 말씀 같았는데, 퍽 다정하고 생그럽다. 나는 "응" 하고 대답하고는 슬리퍼를 찍찍 끌고 엄마 김치 담그는 데 가서 주절거리다 왔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서 깻잎을 펴고 장을 바르고, 나는 그 앞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엄마랑 같이 이모가 어쩌니 숙모가 어쩌니 이야기를 하다가, 소파에 뒹굴며 티비를 켜보고, 티비에 나오는 진주 세트가 예쁘다며 엄마랑 같이 구경하고, 그러다 엄마가 깎아 놓은 복숭아를 한 입 물고 먹다가 왔다. 대단할 거 없는 일상이지만 나는 그 와중에 어딘가 내 깊숙한 곳의 상처가 나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멍자국이 시퍼렇게 들었던 게 서서히 옅어져가고 있다고 느꼈다.


부모란 건 어쩌면 견뎌내야 하는 존재다, 가끔. 극조증일 때 나는 가족들을 외면했었고, 도움조차 구하지 않았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엄마는 나를 또 건져냈다. 상담선생님의 도움도 컸고, 약의 도움도 컸지만,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기어이 30kg대의 몸무게를 찍고 또 바깥을 싸돌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을 것이다. 딸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내 생각에 빠져 무언가 대단한 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망상증이 도졌을 것이다. 부모란 건, 다시 말하지만 어쩌면 견뎌내야 하는 존재, 나는 몇 년에 걸쳐 반복되는 조울증 때문에 생긴 엄마 아빠와의 불화 때문에 정말로 많이 싸우고 울었다. 그 과정들을 나는 온몸으로 뚫고 나왔고, 이제는 꽤 잘 참고, 기다리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이제 조울증 책을 읽고 있고, 아빠는 병원에 데려다 주신다. 더 이상 "네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다"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 아빠 역시 변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일상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 말대로 이제 뭔가 대단한 게 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하루하루를 바라볼 것이다. 하루하루를 돌보고 보살펴 주어야 할 것이다. 하루하루의 내 아이처럼, 하루하루의 내 매 끼니처럼, 그렇게, 알뜰살뜰하게, 가끔은 대충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당장 사탕을 먹고 싶다고 떼 쓰는 아이처럼 굴진 않으리라. 내일의 사탕은 내일의 사탕. 참고, 기다리고, 가만히 있어 보리라. 끈기있게, 조금은 땀을 흘리면서라도 꿋꿋하게. 그렇게 내일의 사탕을 기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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