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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Dec 21. 2023

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했다.

아주 어려운 결정이었다. 12월 8일 날 엄마와 나는 같이 심리상담을 받으러 갔었다. 치료사 쌤은 단호하게 내가 당장 부모님의 케어를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마 아빠도 같은 뜻이었다. 내가 조울증이 심각한 상태에 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모두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난 아직도 병식이 뚜렷하지 않다. 내가 그렇게 심한 상태인지 모른다는 의미다. 일단 조증약을 먹으면서 성충동이나 식욕 감소 같은 것들은 나아졌지만 살은 점점 더 쪄가고 하루 하루 무의미하게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냥 누워만 있고 싶고, 먹는 건 조절이 안 되어서 밤마다 편의점에 가서 뭘 사와 먹기 바빴다. 우울증으로 가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참 지랄 맞은 병이다, 조울증. 오늘 제주도 10박 11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엄마가 하시는 말씀은 나를 더 처참히 만들었다. "넌 지금 혼자 살면 절대로 안 된다, 미야야." 그 말이 내겐 사형선고처럼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혼자 사는 게 좋은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같이 합치자니, 말도 안 되었다. 절망이었다. 하지만 10박 11일 동안의 피 터지는 대화를 한 결론은 어쩔 수 없이 하나였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


부모님이라고 나와 함께 사는 게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일을 할 수도, 혼자 약과 밥을 챙겨 먹을 수도 없다고 하셨다. 나는 담배에 완전 중독이 되어서 하루 종일 엄마 눈치를 보며 돌아다녀야 했다.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본 결과 나는 최악의 상태에 주저 앉아 있고, 나는 병식이 반도 돌아오지 않은 채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나는 아주 심한 조증 상태였고 몇 번의 사고를 쳤다. 남의 인생을 아주 조져 버려 놓을 수도 있을 짓까지 했다. 돈은 물쓰듯 쓰고, 밥은 챙겨 먹지 않았고, 잠도 별로 자지 않고 생활을 하다보니 몸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아침 저녁으로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긴 하지만 조증 상태에서 제정신으로 40프로도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고 엄마는 자꾸 말씀하신다. 당장 일할 수도 없고 혼자 살 수도 없는 상태에서 최선의 방법은 내 집을 월세를 주고 그 월세를 받아 생활하면서 병 치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몇 번을 울고 짜고 소리 지르며 엄마랑 대화를 했다. 나는 수없이 엄마 아빠 마음을 멍들게 만들었으며, 또 다른 사람의 인생도 힘들게 만들었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하고 돌아보니 나는 그동안 병증이라는 화마에 휩싸여 내 인생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나는 내가 일할 수 있고 병증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일 뿐, 전혀 사회로 복귀해 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견해들투성이였다. 어찌해야 하나. 이 조울증이라는 지긋지긋한 병증에서 벗어나려면 대체 어떡해야 하나. 대체 나는 언제쯤 내 딸 앞에 떳떳한 엄마로 기능할 수가 있나. 차는 팔아서 없고 운전도 못해서 부모님을 대동해 면접교섭을 하러 가는 주제에, 당장 내게 돈이 있어도 쓰지를 못하니. 왜냐하면 내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물쓰듯 다 써버릴 게 뻔해서 엄마가 꼭 쥐어틀고 안 주시는 거다. 이게 서른아홉 살의 생이 맞는 건가, 싶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 되었나.


푸념뿐이다, 푸념. 일단은 내 집 월세를 주고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빠듯하게나마 생활할 거고, 하루하루 정상인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약을 챙겨먹고 씻고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무언가 취미 생활을 하고 미래에 할 일을 위해 조금씩 뭔가 준비하다가 약 먹고 잘 자는 것. 아주 단순한 것들인데도 나는 그 중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는 지경에 와 있다. 조증이 조금 잡히면서 우울 삽화로 들어가는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까. 일어나서 돌아다니며 움직여도 도통 삶의 재미라는 걸 못 느끼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까. 서른아홉 살의 생이 이 지경이면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담배, 간식, 밖에서 사먹는 커피 같은 것들 다 끊고 빠듯하게 정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돈을 써야 한다. 내 돈이 내 돈이 아니다. 그 돈은 내가 갑자기 병증이 심해졌을 때 입원해야 할 돈이라 건드리면 안 된다고 엄마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도 내가 쓴 일일 통장 내역서를 캡쳐해서 엄마에게 보여드린다. 혹시나 담배 샀을까 봐, 간식 사 먹었을까 봐.


조울증은 단번에 잡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병이다. 1월 12일에 상담받으러 엄마와 같이 또 심리치료사님을 만난다. 그때는 내 병에 대한 경과와 부모님과 집을 합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주로 할 것 같다. 사실 약 먹는 게 너무 지겹고 싫다. 왜 이렇게 매뉴얼대로 살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 이야기에 엄마 왈, 너 그러다가 평생 정신병원 전전하면서 살래?라고 하셨다. 나중에는 돈도 없어서 그냥 집에 처박혀 연금이나 받으면서 살 수도 있다고 하셨다. 너 그렇게 살래? 정말 그렇게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라고도 하셨다. 나도 안다, 조울증 가진 자녀를 둔 부모가 이렇게까지 집을 합치며 가까이에서 케어해 주는 것도 드문 일이라고. 솔직히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을 것 같다고. 세상에,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는 어디 갔나. 난 또 갇혀 있어야 한다. 사회로 복귀하고 싶으면 빨리 이 병을 잡아서 세상으로 나가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난 여기 주저앉아 있다. 살만 뒤룩뒤룩 찐 채로, 식욕만 남은 아귀처럼, 삶을 흑백으로밖에 못 보는 바보천치처럼 이렇게 주저앉아 있다.


하지만, 하지만, 오늘부터 시작해 본다. 그래도 일어나 본다. 하나 참아 보고, 둘을 견뎌 보고, 셋을 배워 본다. 마치 처음 걸음마를 내디디는 아이처럼, 그렇게 해 본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이혼인의, 전남편에게 아이를 보낸 이 형편없는 엄마도 인간이다. 나도 인간이다. 그러니까 해본다. 엄마라서, 조울증을 앓고 있어서, 이혼하고 아이를 전남편에게 보내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한번 해 보겠다는 말이다. 내가 사는 이 지방에는 출판사가 아예 없어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일을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에 따른 준비도 해야 한다.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는 포기하는 법을 모른다. 이렇게 비를 맞고 처량하게 주저앉아서 눈만 껌뻑이고 있지만, 심장이 아직 뛰고 있지 않은가. 아직 내 몸에 열기를 전달하는 그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언제나 지금 여기 이곳에 살아 있고 싶은 내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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