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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미아 Mar 14. 2024

딸이 너무 보고 싶어.

딴생각에 한참을 몰두해 있다가 갑자기 발작적으로 딸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영상 통화를 걸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거나 할 때면 더욱더 그립다. 다행히 방금 전남편이 전화를 걸어줘서 얼굴을 보았다. 딸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랑하고 점토로 만든 작은 딸기를 보여줬다. 이상하게 나는 딸과 영상 통화를 할 때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냥 우리 딸 사랑해, 라는 말밖에 못한다. 살갑게 "오늘 어린이집 어땠어"나 "우리 만나면 뭐 먹을까"와 같은 말들이 잘 안 나온다. 딸은 조그만 화면에 비춰진 나를 엄마로 인식하고 인사했다. 날 알아봐주는 것만으로도 왜 이렇게 찡하고 고마운지... 딸은 거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떨어져 있지만 항상 그리워한다. 부천에 일을 하러 갔을 때, 격주마다 집에 내려왔었는데 그때마다 딸은 이렇게 말했었다. "엄마가 없어서 제가 애를 먹었어요" 하고. 얼마나 기특하고 애잔하고 안쓰러운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 딸... 사랑하는 내 딸. 그렇지. 나는 딸이 있었지.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그런 딸이 있었지, 하고.


전남편은 일하랴 육아하랴 바쁜 것 같았다. 9시 반이 되었는데도 뛰노는 아이를 케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은 아니겠지. 7시에 퇴근해서 7시 20분쯤 아이를 픽업해 집에 오면 8시. 밥먹고 씻으면 9시다. 놀이를 하거나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잠들면 거의 10시가 다 되어 갈 거다. 아이를 재우고 한숨 돌리면 그 시간이니 얼마나 힘들까. 나는 이곳에서 친정 엄마와 함께 돌봤는데도 그렇게 힘이 들었었는데, 전남편은 만날 때마다 힘드냐고 물어도 괜찮다는 말만 한다. 어떤 날 메시지를 하면 아이 훈육 중이라는 말을 해오기도 하는데, 나는 전남편이 나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훈육하리라 기대한다. 나는 감정적이고 욱하는 기질이 있어서 훈육과는 거리가 좀 멀다. 다행인지 딸과 헤어져 있으면서 육아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것 때문인지 나는 딸을 만나면 절대로 화를 내거나 인상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저 사랑으로, 사랑으로 보듬어 줄 뿐. 나도 내가 이렇게 될지 몰랐다. 떨어져 있기에 아쉽고 애달프고 안타까워서, 만났을 때 아이가 생떼를 부리거나 해도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참 희한한 일이지. 딸이 세살배기 때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자 가방을 내던지면서 화를 냈던 게 엊그제같은데. 이젠 어화둥둥 금지옥엽 내 딸이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립다. 방금 통화했는데도 보고 싶다.


딸의 영상을 보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울음과 웃음이 동시에 터진다. 너무 행복해 보여서, 너무 귀여워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러면서 내 지금의 처지를 생각해 본다. 딸에게 양육비도 못 주고 있는 내 형편을. 직업훈련을 받고는 있지만 언제 취업이 될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내 미래를. 딸은 자꾸만 커가고 나는 제자리에 고여 있는 것만 같아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고민을 해봐도 나오는 답은 알 수 없고. 그저 딸 사진을 고이 어루만져 보는 것으로 끝낸다. 또 전남편을 생각한다. 혼자 고생하고 있을 그 사람이 혹여나 육아에 치여 아이를 방치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본다. 혹시나 여자친구와 함께 딸을 만나는 건 아닌지도 의심해 본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내 불안함이 그런 의심을 들게 한다. 웃기지, 나는 아무것도 딸에게 제대로 해 주는 게 없는데. 오늘은 양치를 잘 시켰을지, 제대로 먹이긴 하는 건지 그런 자잘하고 사소한 걱정거리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하는 딸 걱정. 끝도 없다.


오늘은 딸이 너무 너무 보고 싶었다. 딸기를 좋아하는 내 딸에게 설향 딸기를 사다주고 다는 생각을 했다. 과즙이 입 주변으로 줄줄 흘러도 연신 커다란 딸기 하나를 다 먹고야 마는 그 애를 나는 너무나도 사랑한다. 키즈노트 앱에 식단표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매일마다 체크한다. 오늘은 내 딸이 좋아하는 반찬이 나왔는지, 잘 먹어주었을지 등을 생각하면서. 혹여나 어린이집 선생님께 꾸지람은 안 들었을지,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는지도 너무 너무 궁금하다. 이전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내 딸은 리더십이 있고 쾌활하며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라고 하셨다. 절반 정도는 나와 비슷하지만 리더십은 나와 정반대되는 성향이다. 딸은 전남편과 내 기질의 반반을 섞어 닮았나보다. 얼굴도 그렇다. 어찌보면 나랑 똑같이 생겼는데 또 어찌 보면 전남편을 닮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딸이 나와 닮았다는 말을 매우 좋아한다) 어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애가 내 배 속에서 나왔을까, 오늘도 감탄하면서 사진을 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는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지역인데, 웃기게도 딸은 어릴 때부터 표준어를 사용했다. 아마도 미디어의 영향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수도권으로 이사를 가고 그곳의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완전 표준어를 구사한다. 쫑알쫑알대며 서울말씨를 쓰는 내 딸이 귀여워서 나도 사투리와 서울말이 짬뽕된 말로 대답을 한다. 너무 귀여운 내 딸. 사랑스러운 내 딸. 너무 보고 싶다.


발작적으로 딸이 보고 싶을 때, 나는 조금 더 따뜻한 인간의 모습으로 향하는 것 같다. 딸을 생각할 때,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어떤 실수를 저지르기 직전에, 딸을 생각하면 나는 그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최근까지도 골머리를 앓던 인연을 하나 정리했는데, 딸 생각이 거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 자신을 보호하며, 스스로 인간답게 살려는 의지를 불태워주는 데 한몫하는 내 딸의 존재는 너무나도 소중하다. OO아, 너는 알고 있니? 엄마는 네가 있어서 너무 좋아. 네가 있어서 이상한 행동들도 안 하게 돼. 네가 있어서 조울증 약을 먹고 있어도 괜찮아. 네가 있어서 나는 한 마리의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가 되어. 사랑해, 내 딸. 너무 사랑해. 달콤한 잠에 빠져들길 바라. 내일도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랑 어린이집 잘 가야 해. 엄마랑은 이번 달 말에 보기로 했지. 너가 그랬잖아, 여덟만 자면 온다고. 그래, 여덟밤만 자면 엄마 보는 거야. 우리 딸 너무 너무 보고 싶어. 너는 나를 살게 해. 사랑하는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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