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꺼지면 재가 되어 사라지는 불처럼 그렇게 한번 타오르다가 죽고 싶다. 생은 생각보다 길고 나른하다. 내가 잉태해 놓은 새생명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고 나는 여전히 환자로 살고 있다. 한 번 사는 인생 불처럼 화끈한 글 한 편 쓰는 것도 좋은데, 요즘은 시들시들 죽어가는 풀처럼 축 처진 글만 써대는 것 같다. 어제는 또 친구를 만났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인연을 붙잡고 나는 울었다. 그러다가 또 생생해졌다. 도무지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내 성정이 원래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점점 변해가는 것인지 항상 나는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이랬다 저랬다 기분 좋았다 나빴다 완전히 고점을 찍었다가 바닥을 찍었다가 제멋대로다. 아마 나를 죽도록 사랑할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감싸 주겠지만 그 사랑도 도를 넘는다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딸도 마찬가지다. 내가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면 날 떠나갈 게 분명하다. 엄마는 항상 아파. 불안해.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안 만들어 줘. 난 엄마가 해준 음식 맛을 몰라. 이러면 어쩌지? 갑자기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난 불안하다. 불안정하다. 날 감싸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남자들이 염불 외는 것처럼 나도 엄마 자궁 안으로 들어가서 안온하게 뒹굴고 싶다. 찰랑거리는 양수 안에서 나도 발차기를 하고 오줌을 누고 딸꾹질을 하며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릴 때가 있었다. 기분이 좋고 싶다. 단 하루라도.
불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읽기만 해도 데일 것 같은 그런 글. 뜨거운 글. 타올라 살아 숨쉬는 그런, 불 같은 글을. 그러려면 우선 내가 불처럼 살아야 한다. 내 몸은 불, 내 인생도 불, 내 삶은 불. 태양같은 항성이 되고 싶다. 항상 온기를 뿜어내며 주위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대신 너무 가까이 가면 타서 죽어 버리는. 아마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일까. 너무 가까이 다가 오진 마. 타 죽으니까. 난 집착이 심해. 조금만 네 마음을 내어 줘도 난 내 삶 전체를 너한테 갖다바칠 거야. 난 네 거야. 그러니까 조심해. 나를 사랑하지 않도록 조심해. 이 무슨 오글거리는 감상에 젖은 말인지. (웃음) 개인적으로 오글거린다는 표현은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만큼은 써야겠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감성 표출을 하는 데 있어 소위 쿨병에 걸려 애로 사항이 많은 것을 본다. 그냥 자기가 느낀 그대로를 설명하고 표현하면 되는데, 너무 솔직하거나 너무 진지해져 버리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자기 생각을 축소하거나 요약해서 휙 던져 버리는 것이다. 난 그게 너무 안타깝다. 조금 서툴더라도, 조금은 버벅거리더라도 천천히 표현하는 사람이 좋다.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서 배운 최대한의 예쁜 언어들로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 좋다.
엊그제 딸을 재우는데 엄청 울었다. 하루종일 종알종알 떠들고 툭하면 엄마, 사랑해요~ 하고 말해 오는 딸애가 너무 기특하고 대견해서. 미안하고 미안해서. 너무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울었다. 눈물이 툭 터져 나와서 혼자 딸 옆에서 엉엉 입을 막고 울었다.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서 혼났다. 어쩜 이렇게 잘 자라고 있니. 엄마 아빠는 헤어졌는데, 넌 왜 묻지도 않니. 엄마 아빠는 왜 따로 살아? 왜 같이 안 살아? 하고 한 번 묻는 법이 없니. 너무 장하고 기특한 내 딸. 며칠 전에 친구 아들과 함께 카페를 갔는데 내 딸이 친구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아? 하고. 난 그때 또 눈물이 나와서 친구 차 뒷좌석에서 울음을 참아야만 했다. 아, 대놓고 묻지는 않는데 얘도 알고는 있구나. 엄마 아빠가 헤어졌다는 걸. 따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그 조그만 머리로 대강 이해는 하고 있구나, 하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지금 쓰면서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겨우 참는다. 조금 있다가 딸과 키즈카페를 갈 예정인데 울면 안 되지. 암. 딸에게 맛난 과자를 사주어야지. 딸과 함께 신나게 놀아야지. 그러다 보내야지... 그래, 보내야지. 사랑하는 우리 딸의 아빠에게로.
2년 동안 생리를 안 하다가 이제야 생리를 시작했다. 약을 바꾸고 나서부터 그렇다. 간만에 생리통 때문에 진통제를 엄청 먹었다. 머리도 아프고 어지러워서 힘들었다. 그래도 약만 바꾼 게 어딘지. 입원을 안 한 게 어딘지 모른다. 입원했으면 딸도 못 보고 또 병원에 갇혀서 담배도 못 피우고 시체처럼 누워만 있어야 하는데. 입원은 정말 싫다. 피 뽑는 것도 싫고 삼시세끼 억지로 밥 먹어야 하는 것도 싫고 병실에 갇혀 있는 것도 싫다. 딸을 못 보는 게 가장 싫다. 친자식이라 면회는 되겠지만 내 딸을 정신병동으로 면회오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영원히 내가 앓는 병을 내 딸은 몰랐으면 한다. 엄마는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밝고, 자기를 사랑만 해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병증은 많이 완화되었고 충동 사고나 공황증세 같은 것도 없어졌지만 여전히 밤에 혼자 자는 건 외롭고 싫다. 그래서 자꾸 사람들을 만나는 걸 원하는지도 모른다. 외로움. 외로움... 너무 싫다. 그냥 좀 강하고 싶다. 강하게 밝게 타오르는 불처럼 뜨겁고 선선하고 무섭고 싶다. 무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도 날 감히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싶다. 앗 뜨거! 하고 날 만지는 사람마다 놀라게 하고 싶다. 그러기엔 난 지금 너무 축축하다.
축축하다... 젖어 있다. 가라앉았다. 불처럼 타오르고 싶은데 내 몸은 축축. 딸을 안아주는데 팔에 힘이 없어서 잘 들지도 못한다. 그래도, 또, 그래도, 나는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이므로 (웃음) 일어난다. 아끼는 반지를 돌돌 돌려보며, 가끔 오는 딸의 머리를 가만히 만지며. 오늘도 쓴다. 날벌레를 잡아 가며, 빨래를 개며,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그렇게. 내일은 어디서 누구와 잠들지 고민하면서. 조금은 어둡게, 조금은 밝게, 조금은 우울하게. 불 같은 글을 꿈꾸며 죽음처럼 잠드는 나. 특별한 나. 누가 뭐래도 특별한 나. 평범하게 생겼지만 사실 예쁜 나. 매력적인 나. 하지만 성이 나면 황소처럼 변하는 나. 들이받는 나. 나를 고양이 다루듯 키워줄 집사같은 남자가 필요하다. 전남편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난 배고프면 밥 주고 심심하면 놀아주고 가만히 내버려두고 귀여워해줄 남자가 필요하다. 난 그러면 세상 온갖 귀여움을 다 떨어줄 텐데. 나를 기꺼이 내어줄 텐데. 난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데. 다만 내 사랑의 대부분은 내 딸이 가졌지만. 아주 조금은 마음을 내어줄 순 있는데. 아쉽다. 난 아직 그런 인연을 만날 시기가 아닌가 봐.
불 같은 글.
불 같은 사랑.
불 같은 삶.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