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며, 그렇게 글을 써. 안녕, 당신, 고된 주중을 보내고 꿀 같은 주말은 끝나가. 난 생각해, 딸에게 가는 길이 너무나 길다고. 난 언제 딸의 곁으로 갈 수 있을까 생각해. 바보 같아. 난 요즘 간호조무사 실습을 나가고 있는데, 이게 참 지랄맞단 말이지. 선생님들은 전부 다 예민해서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 같고, 동료들 중 한 명은 울었어. 이직률이 높대. 나도 잘 모르겠어, 시험을 치고 취업을 했을 때 내가 어찌 이 일을 받아들일지. 뚝심 있게 버틸지, 아니면 또 다른 직종을 알아볼지. 분명한 건 이 직업을 택했을 때 딸에게 가기가 더 쉽다는 거야. 그래서 난 결정 내리고 하는 중이야. 난 어제도 누군가와 함께 잠들었지만 오늘도 외로웠어. 당신은 외롭지 않았어? 빌어먹을, 난 왜 이렇게 쉽게 외로움에 빠지는 걸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진짜 지겹고 벗어나고 싶은 건 남들의 시선이나 판단 같은 게 아니라 나 자신 안에서 생겨나는 외로움 같다는 걸.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난 글을 써.
난 취업을 하고 경력을 조금 쌓은 다음 딸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려 해. 갈 수 있을까? 집을 구할 수나 있을까? 아니, 일이나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야. 약을 먹는 몸으로, 엄마 말로는 '사회성이 부족한' 이 내가 사회생활을 잘할 수나 있을까 걱정이라고. 일터는 차갑고 적막해.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돌아다녀도 그렇다니까. 온기란 게 전혀 없어. 며칠 전에는 사람 허벅다리에 구멍이 나서 안의 근육 조직과 핏자국이 드러난 걸 봤어. 의사는 두 손으로 그 부분을 꽉 죄면서 붙이려고 하더라구. 난 속으로 생각했지. 소용없어, 저 정도로 떨어진 살은. 난 의외로 비위가 좋은가 봐. 한 남자의 발목에서 피가 철철 나는 걸 봤는데도, 욕창 환자의 엉덩이에서 심한 악취가 나는데도,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똥지린내가 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더라고. 볼품없이 마른 환자, 당장 내일 죽어도 안 이상한 환자들을 봐도 난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못했어. 연민의 감정 따위 하나도 없더라고. 그저 얼른 밥이나 먹고 싶다, 아까 듣던 노래를 들으며 담배나 피우고 싶다 하고 생각했지. 이번 주는 날씨가 참 지랄맞았어. 춥고 비가 왔어. 예전에는 비를 좋아했었는데, 어느샌가 싫어졌더라고. 난 간호 실습복을 내던져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병원 흡연 구역에서 당당히 담배를 연거푸 피웠어. 노래를 듣고 있던 병원 직원에게 말을 몇 마디 건네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지. '노래 취향이 좋으시네요.' 따위의 말을. 그 사람은 그저 웃더라. 이상하다는 듯이. 사실 난 외로워서 말을 건넨 건데.
제기랄, 실습은 왜 이렇게 긴 건지, 5개월이나 해야 한다니까. 채워야 하는 시간이 있나 봐. 차라리 엉덩이를 붙이고 공부하는 게 나을 정도야. 그런데 이것도 못 견디면 일할 때는 더 지옥이겠지. 젠장, 삶은 왜 이렇게 견딤의 연속인 건지. 이거 좀 견뎌 냈다 싶으면 다른 게 또 생겨난다니까. 지겨워, 가끔. 근데 뭐, 딸에게 가는 머나먼 길 중 한 단계라고 생각하면 조금 견딜 수 있어. 이건 그냥 한순간일뿐이다, 하고 생각해 버리지, 뭐. 털어 내는 거야, 그날의 꿀꿀한 기분을. 아침에는 사진을 옮기다가 실수로 딸과 축제에 다녀온 사진을 다 날려버린 거 있지. 아까웠어, 딸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아까 담배를 피우다가 근처에 야생 국화가 피어있는 걸 봤어. 딸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지. 걔는 꽃에서 향기가 나지 않아도 음~ 향기 좋다! 이러면서 좋아하거든. 너무 귀엽지, 내 딸. 사진까지 찍어뒀어. 전남편에게 보내면서 딸한테 보여주세요, 하고 메시지를 할까 하다가 참았어. 그건 너무 '개인적'인 일처럼 느껴졌거든. 마치 부부 사이의 일 같아서 낯간지럽더라구. 그래서 그만뒀어. 그래, 난 오늘도 딸이 보고 싶어. 춥고 비오는 날에 내 딸은 뭘 하고 있을까, 옷은 따뜻하게 입고 있을까 걱정되더라고. 거지 같은 8월에 걸린 감기가 난 아직도 안 떨어져서 기침을 하고 있어. 내가 기침한다고 실습 병원 간호 팀장이 싫어하더라구. 기침을 어떻게 숨겨. 어쩌라고.
응, 외로워서 쓰는 글 맞아. 난 감상에 젖어 음악에 젖어 외로워 마음에 구멍이 난 것 같을 때 그렇게 발작적으로 글이 쓰고 싶어지더라고. 커피는 무려 네 잔째 마시고 있고, 점심으로는 게살콜드파스타를 먹었어. 같은 집의 카보나타 파스타가 낫더라. 그건 토마토 베이스인데 게살콜드파스타에는 내가 싫어하는 바질 페스토가 들어갔더라고.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였지만 그래도 배가 고파서 다 먹긴 했어. 다행히 몸무게는 몇 달째 유지하고 있어.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안 그래도 기분 별로일 때 살까지 출렁거렸으면 짜증날 뻔했어. 여전히 날 손절한 그 친구에게서는 연락이 없고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바쁘고... 모르겠어, 그냥 날씨 때문인지 무지성으로 외롭다고 느껴. 그렇다고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다거나 하는 기분은 아니고, 좀 나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웃기지? 대체 몇 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면서 또 쉬고 싶다니.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주말 내내 다 읽고 덮었어. 몇몇 문장은 꽤나 울림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역사 기록서 같은 느낌이라 난 별로였어. 읽은 것 중에서는 <채식주의자>가 제일 좋았어. 난 글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작가가 좋아. 문장이 묵직하고 아름다운 것도 좋지만 책장을 덮었을 때 한 장의 그림이 그려지는, 그런 책이 좋더라고. (내 감상평과는 별개로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탄 게 너무 기뻐.)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 있네. 담배를 피우는데 날이 너무 추운 거야. 내일은 좀 덜 추웠으면 좋겠어. 내일부턴 또 지겨운 실습이 시작되겠지. 다음 주 주말에 딸을 봐. 다행히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좋아. 딸에게 패딩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또 감기 달고 살면 고생하니까. 전남편도 고생이고. 애도 고생이고. 당신, 일요일 주말 어떻게 보내고 있어? 내 책상 위에 두 달 치 조울증 약이 턱 놓여져 있는 걸 보니 숨이 막히네. 실습 때 결석할까 봐 두 달 치 약을 받아왔는데 괜히 그랬나 봐, 병원 간다는 핑계로라도 결석할 것을. 있잖아, 사람이 외롭고 슬플 때 진짜로 버티게 해주는 힘이 뭐일 것 같아? 나름 이것저것 해보지만 난 잘 모르겠어, 아직도. 날 달래는 방법도 잘 모르는 어른이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조차도 어르고 달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컴퓨터 앞으로 와서 글을 쓰는 거야. 웃기지? 피난처인가 봐, 여기가. 당신, 내 말을 듣고 있어? 고마워, 봐 줘서. 나 지금 무지 외롭거든. 딸과 영상 통화를 하고 싶은데 전남편이 자주 연락하는 거 싫어할까 봐 참고 있어. 사실 영상 통화를 하고 나면 더 외로워져. 그 애의 부드러운 머릿결과 피부, 따뜻한 팔다리를 내 손으로 만져야 직성이 풀리거든. 볼에 뽀뽀를 하고, 그 애의 이름을 부르고, 날 돌아다 보는 그 애의 눈망울을 쳐다봐야 난 살 것 같거든.
당신, 누군가를 안아 줬어? 누군가의 손을 잡았어? 누군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내가 지금 그러고 싶거든. 너무 너무 외로워서, 지나가는 그 누구가 되었건 꽉 껴안아 주고 이름을 불러주며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어. 다들 괜찮냐고. 사는 거 어떠냐고. 미친 사람으로 보겠지만 진짜 난 그러고 싶다니까. 난 아직 완전히 미치진 않았으니까 그런 짓은 안 하겠지만 대신 글로 이렇게 전해.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 주라고, 누군가의 손을 잡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 주라고. 누가 그러더라, 내 손 따뜻하다고. 따뜻해서 기분 좋대. 나도 좋았어. 내 온기가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기분 좋은 느낌을 줬으리라고 생각하니까. 그래, 사람들은 작은 불덩어리야. 어떤 사람은 활활 타오르고, 어떤 사람은 조용하게 은은히 타오르지. 우리는 스스로 증명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들이야. 애쓰지 않아도 돼. 그래, 이만 하면 딸에게 가는 길 치곤 괜찮다, 하고 생각하려고. 그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올 테니까. 죽기 전엔 올 테니까. 다리를 호달달 떨면서 쓰는 주제에, 중간중간 담배를 태우고 오는 주제에, 이런 시건방진 글을 써대는 주제에 내가 감히 인간에 대해서 논할 수나 있는지 모르겠어.
당신, 좋은 하루 마무리하길 바랄게.
외로운 이의 신소리 좀 들어줘서 고마워.
또 만나. 죽지 않을 테니 다시 올게.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