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혼을 하고 딸을 키우다가 사정이 있어 전남편에게 보냈다. 달마다 양육비를 주고 있는 입장이다. 대한민국에 나같은 케이스가 분명 있을 테지만 내 주변에는 일단 내가 유일하다. 다들 물어본다. 왜 딸을 본인이 안 키워요? 나중에 딸을 다시 데려오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나는 말한다. 그러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알고 있다. 다시는 딸을 내 곁으로 데려와 키울 일은 없다는 것을. 솔직히 그렇다. 전남편은 내 건강이 완전히 나아지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딸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내 상황이 일단락되면 딸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이사를 갈 생각을 하고 있다. 딸과 같이 살지는 못해도 가까이서 자주 보면서 보살피면 더 낫지 싶어서. 더, 솔직히 말해볼까. 나는 혼자서 딸을 키울 자신이 없다. 내 병이 언제 도질지 모르고, 경제적으로도 전남편보다 풍족하지 못해서 그렇다. 왜 전남편에게 딸을 보내고 혼자 사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구구절절 말이 늘어지기 때문에 난 항상 '그러면 좋겠어요, 저도' 하고 말아 버린다.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사실 그 질문이 싫다. 왜 딸이랑 같이 안 살고... 어쩌구 저쩌구. 듣기 싫다.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수십 수백 번은 더 들어야 할 그 질문. 아, 제가요, 조울증이란 병을 앓고 있는데요, 1년에 몇 번이나 정신병동 입원 퇴원을 반복하고 조증이 수시로 재발해서 제정신으로 아이를 돌볼 능력이 안 되거든요. 그리고 돈도 안 벌고 있어서 애를 키울 사정도 안 돼요. 돈도 돈이지만 멘탈이 불안정해서 애랑 같이 있으면 제가 좀 미쳐버리거든요. 그래서 전남편한테 보낸 거예요, 라고 어떻게 말하나.
집에서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하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 어김없이 딸 생각이 난다. 그러다가 문득 전남편이 궁금해졌다. 그 사람의 하루가. 요즘 어린이집 등원을 8시에 하던데, 아침에는 얼마나 전쟁일까.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30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태워다 주고 힘겹게 출근해서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다가 7시에 태권도 학원에서 애를 픽업해 와서 거의 8시, 9시에 아이 저녁을 차리면서 급하게 자신도 저녁을 먹겠지. 씻기고 재우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다음 날 어린이집에 가져갈 물품들과 입을 옷들을 준비해놓고 노곤한 몸을 침대에 뉘이며 생각하겠지. 아, 내일도 오늘 같은 하루의 반복이겠구나, 하고. 그 사람은 돌싱인 여자(남자 아이 두 명을 키우고 있는)와 연애까지 하고 있다. 쉬는 날 아마 그 여자네 집으로 놀러를 가거나 바깥에서 만나는 것 같다. 아이들을 다 데리고 말이다. 내 딸이 가끔 그 여자의 아들들 이야기를 해서 알고 있다. 누구 누구 오빠는 팽이를 잘 돌려. 누구 누구 오빠는 나한테 잘해 줘. 이모는 내가 가면 맛있는 음식도 해줘. 어떤 여자인지는 감도 안 오지만 거의 2년 이상 만난 걸 보면 전남편과 잘 맞나 보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육아하랴 일하랴 연애하랴 집안 대소사 챙기랴. 한때 전남편과 연애를 하고 결혼생활도 했던 나로서는 그가 충분히 감당해내리라고 생각은 한다. 책임감 하나는 정말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말 노답이던 나를 무려 8년 이상이나 견디며 살아왔으니 말 다 했지. 보통 인내심 없고 이기적인 남자였으면 진작에 날 버렸을 거다. 그래, 그 사람은 그런 남자였지. 그런, 아빠였지. 세상에서 자기 딸이 최고고, 자기 딸이라면 뭐든지 다 할 사람. 그래, 그 사람은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함을 지녔지... 하고.
난 결혼 생활을 떠올리면 항상 집사와 고양이가 생각난다. 집사는 전남편, 나는 고양이. 정말 그렇게 살았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었고 집에서 계속 프리랜서로 살았는데, 그마저도 나 일하기 싫으면 안 했다. 전남편이 주는 돈으로 먹고 마시며 놀았고, 내가 조금이라도 따분하거나 심심해하면 게임기를 사주거나 같이 놀아주었다. 그 사람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게 해주었다. 하루종일 방도 안 치우고 드라마만 보면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어도 불평 불만 한 소리를 안 했다. 출산하고 나서 내가 산후우울증과 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자 닌텐도 스위치를 사주면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을 하라고 권하기까지 했다.(나는 살면서 그때 처음으로 닌텐도 게임을 해봤다) 솔직히 동등한 관계는 아니었다. 경제권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고 집이나 대출, 그 외의 큰 일들은 전부 전남편이 도맡아 해줬다. 난 전기세 한 번 내 본 적이 없었다. 그치만 난 그런 데에 불만이 없었다. 전남편이 다 알아서 해줬기 때문에 나는 그냥 집에서 존재만 하면 되는 인간이었다. '부인'으로 그냥 집에 있기만 하면 되는 존재. 안타깝게도 사랑의 힘이 다하고 우린 헤어졌지만 나는 우리의 결혼 생활이 결코 불행했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키우는 고양이 취급을 받았을지언정 나는 그의 보살핌 아래에서 안온하고 행복했다. 그는 아마 내가 이혼하자고 하지 않았으면 계속 그렇게 나를 사육하듯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딸을 키우면서 부인으로, 엄마로 존재하기만 해도 그 사람은 만족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의문이 들었다. 당신은, 이혼을 후회해요? 하고.
오늘은 딸의 어린이집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는데, 옷을 좀 예쁘게 입고 오라는 말을 들었나 보다. 전남편은 내가 작년에 딸에게 사준 핑크색 원피스와 귀여운 폼폼이 달려 있는 연한 아이보릿빛 털조끼를 입혔다. 아침에 바쁜 와중에 딸을 예쁜 공주님처럼 입히느라 낑낑댔을 전남편이 떠올라 마음이 이상했다. 머리도 직접 땋아 묶어 준 건지 정말 예뻤다. 그냥... 요즘 전남편을 생각하면 경외심이 든다. 당신, 정말 잘하고 있어요.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나는 혼자 공부도 하고 잘 지내고 있어요, 하고. 엄마로서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다 하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그래도 힘들다 소리 한번 안 한다. 항상 우리 엄마가 '강 서방, 힘들지' 하며 전화하면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만약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전남편이 딸을 키우다가 힘들다고 나한테 맡기며 부탁합니다, 라고 했을 때,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자신없다. 양육비를 넉넉히 받으며 엄마 도움까지 받으며 키웠는데도 힘들었는데 나는. 그 사람은 혼자서, 전 시가 도움도 별로 없이 그걸 다 해내고 있으니. 그냥... 너무 고맙다. 아이 아빠로서는 최고인 그 사람. 부부의 인연은 끝맺지 못했지만 자식의 양육자로서는 평생을 갈 사람. 고마운 사람. 정말, 정말, 고마운 그 사람. 내 전남편.
이혼하고 몇 번이나 남자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해도 전남편 같은 남자는 만나지 못했다. 사실 만날 때마다 전남편과 비교를 했다. 전남편은 안 이랬는데. 전남편은 날 이렇게 대해 줬는데, 하고 말이다. 안 좋은 버릇이라는 걸 알지만 오랜 기간 같은 시간, 공간을 공유한 그 사람의 존재가 내 인생에는 아주 큰 족적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어떤 남자를 다시 만난다고 해도. 전남편을 다시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난 그 사람을 존경하고 있다, 애 아빠로서. 존경스럽다. 그런 남자가 내 자식의 아버지라는 것에 큰 자부심과 기쁨이 있다. 그래, 내가 남편 복은 없지만 애 아빠 복은 있지, 하고. 앞으로 어떤 역경이 다가와도 그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굳고 강한 믿음을 준 그 사람. 연애했을 때도, 결혼했을 때도, 심지어 이혼 후에도, 단 한 번도 신의를 깨트린 적이 없는 그 사람. 그렇게 강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를 나는 또 만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내 딸을 낳은 거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의 딸을 낳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남편을 존경한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태권도 학원을 갈 시간이 되었겠지, 딸은. 며칠 전 통화했을 때 딸은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고기와 파프리카, 김과 밥을 준 것 같았다. 딱 한 번 이혼 후에 가본 적 있다, 딸과 전남편이 사는 그 집에. 그러니까, '우리 셋'이 살던 그 집에. 그 집의 냉장고에는 생선과 고기와 과일과 각종 반찬들이 즐비해 있었다. 딸을 위해 매일마다 등하원을 시키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전남편의 하루가 그렇게 고되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 항상 즐겁지만은 않겠지. 딸이 떼를 쓰기도 하겠고, 일을 하고 돌아와서도 딸을 챙기며 놀아주고 해야 하는 그 일상이 마냥 좋지만은 않겠지. 힘겨울 때도 있겠지. 내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겠지. 하필 애 엄마라는 인간이 아파서, 남들처럼 평범하지 못해서, 자기가 애를 '떠맡았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겠지. 그럴까. 하지만 그 사람은 다시 일어설 거다. 딸을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남들은 이해가 잘 안 될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부모형제 제외하면 전남편이라는 사실 말이다. 사랑했고, 헤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을 믿고 의지한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함께다. 아마, 죽을 때까지.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당신, 고마워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요.
우리 딸 잘 부탁해요.
정말, 고맙습니다.